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정지인 옮김 / 심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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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제목을 보자마자, '읽어야 해' 신호로 받아들였다. 꼭 '트라우마'라 할만한 강력하게 지속되는 "불행"이 아니더라도, 언어적 폭력이나 우울한 감정에 몸으로 바로 반응해본 누구라도 궁금해봤을 질문이다. 4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으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신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부제의 답을 얻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저자 Dr. 네이딘 버크 헤리스Nadine Burke Harris가 이끌어준 덕분에 그 답 근처에 가보았다. 저자가, 얼핏 뻔해 보이는 위 질문을 뽑아내기 까지 얼마나 집요하게 탐색하고 애썼는지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캘리포니아 공중보건국장(Surgeon General)이자 소아과의사인 저자에게 반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의 참고문헌 마지막장까지 꼼꼼히 다 읽고 난 후, 그녀의 인터뷰 동영상을 샅샅이 훑어냈을 정도로 반했다. (이 분, 한마디로 강골 엄친아! 어려서부터 오로지 의사를 꿈꿔왔다던 소신파. TED강연에서의 카리스마틱한 몸짓 언어, 그리고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억양과 톤을 달리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면 동물적 예민함도 대단한 듯 하다.)


https://www.ted.com/talks/nadine_burke_harris_how_childhood_trauma_affects_health_across_a_lifetime?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Christopher Michel / CC BY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0)



나딘 버크 해리스 박사는 UC버클리에서는 생물학, UC Davis에서는 의학, 다시 하버드에서 공중보건학을 공부했다. 이런 학문적 이력은 책 제목에도 반영되었다.원제 [The Deepest Well]은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유명한 "우물"에서 따왔다. 하지만, 독자 시선 끌기에 능숙한 한국의 출판사는 제목을 보다 직설적([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으로 옮겨놨다.

원제 [The Deepest Well]에서 "well"이 1854년 영국 런던에서 John Snow가 콜레라 차단을 위해 손잡이를 제거하자고 제안했던 그 우물인지 예측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궁금한 분께는 [감염 도시]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저자 네이딘 버크 해리스 박사는 존 스노가 공동 우물의 펌프 손잡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한 조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같은 우물물을 마신 100명 중 98명이 설사를 한다면, 계속 항생제 처방을 하는 대신 잠시 멈추고 '이 우물에 대체 뭐가 있는거지?'를 질문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44쪽) 좀 풀어 말하자면 이런 내용이다. 아동기에 부정적 경험을 하면 몸과 마음 모두 상처를 입는 데다가, 그 경험이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되는데도 왜 이를 적극적으로 예방, 치료하지 않는 걸까? 박사가 소아과 전문의로 있었던 베이뷰 헌터스 포인트에는 유독 ADHD 아이가 많았는데, 이를 단순히 레탈린 등 약물 처방만 하고 방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그래서 박사는 거진 10년의 세월을 투자하여 '부정적 아동기 경험'을 검사하는 프로토콜을 만들었고 건강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이제 치열하게 쏟아부은 거진 10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듯, '부정적 아동기 경험 Adverse Childhood Experiences study)'를 토대로 한 그녀의 주장을 지지를 크게 받고 있다.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는 네 아들의 엄마이자 캘리포니아 주를 위해 일하는 고위공무원 그리고 자메이카 출신 이민자 2세대로인 저자의 삶이 녹아 있는데다가 적절한 시점마다 공중보건, 심리학, 의학, 뇌과학, 사회복지 등 여러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독자에게 쉬운 말로 설명해준다. 400페이지의 글을 단문 몇개로 요약해본다.


18세 이전에 불행(단순히 물질적 빈곤으로 인한 불행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 등 포괄적 의미에서)을 겪은 이들의 기대수명이 짧고 더 건강하지 못한 것은 그저 사회불평등 개선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의학적 개입만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대중이 오해하는 것처럼, 피부색이 검거나 갈색이면서 가난한 그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쉬쉬하며 외면할 뿐, 많은 어른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부정적 경험이 성인기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데이터로, 즉 과학적으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이를 바로 잡을 것인가?인데..... 저자는 그 중 하나로서 ACE선별검사를 통한 '빠른 진단'을 제안한다. 혹자는 이런 접근법을 사회 주변인들을 두 번 낙인찍는 것이라거나, 고통의 의료화라며 맹비난하지만 저자는 이미 이 문제는 생물/문화(사회), 문제있는 그들/괜찮은 나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문제라고 확신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안고(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주장하면서도 저자는 정작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문제를 조망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한 마디로, 저자 자신의 경험이나 왜 이 분야에 헌신하게 되었는지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겐 도움이 필요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397쪽부터가 반전이다. 저자의 강렬한 개인사가 등장한다. 저자 스스로 자신이 "타인과 내면에 주파수를 잘 맞추는 자신만의 작은 초능력(404쪽)"을 가지고 있다 했는데, 나도 저자와 내면의 주파수를 맞췄는지 책 읽다 울었다. '이분은 그런 이유로 이토록 헌신할 수 있는 거였구나. 공중보건에서의 문헌들을 읽다가 종종 마주치는 극도의 소명의식 가진 의사들, 그 공통점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장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친다.

"나는 모든 동네의 모든 우물들을 조사하고, 그 우물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다는 사실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실, 바로 그 우물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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