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자들 - 한 난민 소년의 희망 대장정 미래그래픽노블 3
오언 콜퍼.앤드류 던킨 지음, 조반니 리가노 그림, 민지현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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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성당의 한 미사에서 신부님께서 "멕시코 이민자들이 얼마나 어렵게 불쌍하게 사는지를 보세요, 그걸 보면, 나는 참 행복하구나."감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발언에 실망했지만, 사실 비교급 행복, 타인의 고통과 불행에서 상대적 안전감을 얻는 이가 많지 않을까? 나 역시 그렇고.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의 참사를 스냅샷 이미지로 파악하고 안타까워하는 이들의 마음 기저에는 상대적 안도감이 있을 테다.



그래픽 노블, [불법자들]을 읽었다. 숲속 산책하다가 의자에서 천천히 읽으려 [불법자들]을 들고 나갔다가 산책로 한 중간에 서서 읽었다. 몇 번이나 울컥거리며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 1시간이 흘렀더라. 나는 더운 날씨에, 길 한가운데 서서 책을 읽었던 것이다. 이후, 지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전체공개 리뷰도 쓴다.



[불법자들]의 첫장에는 노벨상 수상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엘리 위젤의 목소리가 인용되어 있다. "소위 불법)체류, 이민)자고 불리는 사람들이여.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법자가 될 수 없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한 존재를 그저 "불법자"라는 용어로 축소해버림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공통분모를 놓치게 한다.

사람을 가르는 범주명이 얼마나 무서운 효과를 지니는지, 요새 그 생각을 한다. 마치 "성소수자"라는 단어 하나로, 결이 풍부한 한 직물에서 오로지 날실 한줄이 내는 단색 하나로 옷감 전체의 이름을 정해버리듯, 성적 정체성 나타내는 용어 하나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덮어 버린다. 코로나 시대의 언어는 또 어떠한가? "확진자," "밀접접촉자," "자가격리자," "무증상 감염자," 인간이 바이러스의 포로(숙주)가 된 정도 혹은 가능성에 따라 층화된 범주명으로 나타낸다. 물론 이는 "질본"에서 전염병 관리, 통제 차원에서 유용한 범주이기에, 나는 그 실용성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단지, 이런 범주화가 일상에서 사람보는 시선에 반영돌 때의 암울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쩌면 나의 컴플렉스와 닿아 있다. 나는 완결점 찍지 못한 자에게 내려지는 '중도 이탈자'라는 명명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덜 된 존재로 인식한다. 미생이군. 여기서 헤어나기 어렵다. 설령 손가락 한 마디가 끊겨 나간 상태라 해도, 다른 부위가 온건한데도 나는 사지가 다 잘려나간 비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옷으로 갈아 입거나, 과감히 겉껍질을 벗어내고 흉터 없는 속껍질 몸으로 살지도 못한 채, '중도 이탈자'라는 이름에 짓눌려 흉터입은 삶을 산다. 이 상태의 지속은 안 되겠다.



다시 [불법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가나에 살다가 지중해를 건너는 12살 소년 '이보;의 이야기이다. 이보는 저자 '오언 콜퍼'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만나 인터뷰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세포로 이뤄졌다. 살아 있는 소년으로 느껴진다. 이보는 삼 남매였으나, 누나가 먼저 떠났다. 사람들은 그녀가 유럽으로 갔을 거라 짐작했다. 이보의 형도 어느 날 자취를 감추었다. 역시 사람들은 이보의 형이 누나를 찾아 유럽으로 떠났으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이보도 형을 찾아 무작정 떠난다.

이후 아프리카 가나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이르기까지 이보의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 없다. 약자가 더 약한자의 피를 빨며 고통을 이중삼중 가중시키는 먹이사슬, 망망대해에서는 유럽에 도착할 희망으로 기다리다가 막상 유럽에 도착하고 나서도 난민 쉼터에서 그저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 이름도 개개의 개성도 지워진채 뭉뚱그려 불법 난민들의 범주로 일원화된 사람들.

[불법자들]의 부제는 "한 난민 소년의 희망의 대장정"인데, 부제에서처럼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던가? 찾았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하나는 이보네 삼남매의 강한 우애, 생명 나누기를 아까워하지않을만큼의 우애이다. 우애란, 결국 핏줄 차원을 떠나 확장시키면 인간애이기도 하기에 희망적이다. 둘째, 이보는 자신을 보호해줄 어른이나 돈 한푼, 쉼터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선의를 전략삼아 상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능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이보는 트럭에서 떨어진 물티슈 한 상자를 들고 다니다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요긴한게 나눠 쓴다. 덕분에 죽 한 그릇, 일자리 하나라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전략적 계산에 따른 생존방편일지라도 '친절'과 '선의'가 생존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설정은 희망적이긴 하다.

[불법자들]은 성인 뿐 아니라, 초등 중등 어린이에게도 유익 하다. 요즘 대한민국 어린이들 코로나 19로 반 자가격리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일상을 답답해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답답함은 희망이라는 막연한 끈 하나 붙잡고 지중해를 건너는 숱한 어린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그저 사치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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