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새로운 엘리트 만들기
셰이머스 라만 칸 지음, 강예은 옮김 / 후마니타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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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서를 읽는 중간에  "역자후기"를 일부러 찾아 읽기는 처음이다. 그 정도로 [특권]의 번역은 충실하다는 칭송으로 모자랄 만큼 헌신적 책임감과 체화된 경험이 반영되어 있었다.번역자 "강예은?" 도대체 어떤 이? 현재 영화 관련 일을 한다는데 사회학 책에 이토록 멋들어진 역자주석을 더하며 독자의 이해를 친절히 돕는가? 




아니나 다를까, 촉이 맞았다. 번역자 "강예은" 역시,  [특권]의 저자인 셰이머스 라마 칸과 적어도 반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 2세대로서 의사인 아버지 덕택에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률이 높은 세인트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모르겠으나 피부색이 더 밝은 동문들이 많이 가는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일부러 가지 않았다. 강예은은 한국, 미국, 영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았고 영국 캠브리지 시의 명문 고등학교의 거의 유일한 동양인 "여자애"로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 섬, 전용비행기, 별장, 극도로 부유한 친구들 사이에서 홈스테이를 하던 동양 "여자애"로서 강예은은 [특권]을 빠져들 듯 읽어내렸나보다. 이후, 고맙게도 2년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쏟아준 덕분에   한국의 독자들도 매끈한 문장의 한국어로 사회학책을 읽는다. 



저자는 사회학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모교인 세인트 폴에 교사 자격으로 1년간 머무르며 그곳의 교직원, 학생 등과 밀접 접촉을 하며 자료를 모았다. Waquant이 [Body and Soul]에서 시도한 "carnal Sociology'인 셈이다. 후기에서 저자가 고백하는 데 처음에는 거리두기를 하며 '객관(?)'적 시야를 확보하려 했단다. 당연, 안 먹히지!  전략 수정. 소위 Ice Breaking하고 나중에는 이왕 내부자였던 거 더 확실하게 그 안으로 들어가본다.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해 "발꼬랑내 나니 신발 벗지 말라"고 농담도 해가면서. 그러나 나는 저자에게서 본인 스스로 자기규율에 엄격하고 학문에 대한 드높은 이상이 분명한 "세인트폴 졸업생"을 보기도 한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스피노자의 원서 대신 위키피디아 등 구글링을 새로운 공부기법으로 활용했다는 게 격분했다는 고백에서 이는 더 두드러졌다. 


대중적 글쓰기와 학문적 성취 두 토끼 다 잡은 듯 보이는, 에릭 클라이넨버그나 수디르 벤카테시의 저작에 비하면 셰이머스 라마 칸은 글은 도리어 쉽게 읽힌다. 1장을 두 번 정도 정독하기 권한다. 이후 2장부터는 세인트 폴에서의 일화들을 드라마 씬처럼 묘사하고 분석을 더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이어진다. 다시 말하지만, 1장이 이 책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1993년-1995년 본인이 고등학생 때 세인트폴에서 경험했던 것은 구엘리트의 오만한 특권의식(배타성, 구별짓기)였다. 이에 비해, 10년 뒤 같은 교육기관에서 저자가 만난 아이들은 신엘리트, 특권을 편안하게 여기며 "능력주의" 패러다임아래, 자신의 특권이 성취라고 믿는 아이들이었다. 저자의 관심은 "정형화된 불평등이 어떻게 능력주의 안에서 유지되고 은폐되는지(80)," 즉 미국 사회에서 개방성과 불평등이 같이 높아지는 이중적 변화이다. 그럼으로써, 결집하여 맞싸울 대상은 녹는 눈처럼 불평등의 지면 아래로 스며들어 버린다. 결집의 유인이 없어지고, 능력주의 패러임에 뼈속까지 세뇌된 사람들은 노력해도 두 발 딛고 설 수 없는게 자기 근육이 물러서라고 자책한다. 눈처럼 녹아 스며든 문제는 땅을 축축하게 만들어, 어떤 이들에게는 늪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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