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얼라이브 - 남자를 살아내다
토머스 페이지 맥비 지음,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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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번 후회해 봤다. 일기장 구석구석을 오려낸 듯한 내밀한 문장들을 묶어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공개한 작가들을 은근히 비아냥거리고는 후회했다. '작가를 질투했니? 정작 책 한 권 쓸 깜냥 없으면서?' 비아냥을 자책하다 보면, 그 작가에게서 내 성향을 본다. '자기성찰성'으로 포장한 예민함, 사소한 순간에서 의미를 증폭시켜내고 주위 사람들도 같이 같은 방향 봐주기 종용하는 중심성. 그래서인지, 비슷한 성향 작가의 책을 읽으면 푹 빠지는 만큼 읽고 나서 그 책 표지를 유난히 매몰차게 덮는다. 


       


<Man Alive> 역시 비슷하다. 일단 시작했으니 100m 결승점을 찍겠다는 듯 내달려 읽었다. 독자 역시 엄청난 정신력 소모를 하게 하는 지독한 자기탐색의 책이다. 


토머스 페이지 맥비Thomas Page McBee가 썼다. 이름이 긴 데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Page"라는 여자로 살아왔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Thomas라는 이름을 쓴다. "Twin"을 의미하기에 일부러 고른 이름이란다. 몸과 정체성이 쪼개지는 듯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과거의 자신, 자신을 쪼갠 아버지와의 관계, 예전의 자신과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는 수술 이후의 자신을 연속선에서 같이 품어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 같기도 하다. 


https://youtu.be/-i_30LFk5bc



<Man Alive>의 한국어판 부제는 "남자를 살아내다"인데, 원서 부제는 "A True Story of Violence, Forgiveness and Becoming a Man"이다. 그 삶을 살아보지 못한 독자로서 책을 다 읽고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 역시 "용서"였다. 맥피는 자신의 삶을 다르게 만들어버린 어떤 이를 이해하려고 무진 노력한다. '왜 그랬을까? 그에게 다른 면이 있지?'를 확인하고 싶어 친척집을 찾아 가문의 역사를 뒤질 정도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DNA검사를 통해 친부(biological paternity) 아님이 밝혀졌을 때도 여전히 연결성을 찾는다. 용서를 비는 아버지 앞에서 아무 말 않는 대신 속으로 말을 삼켰다. "나는 나보다 작은 것에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가 아니다." 이제는 늙고 초라해진 가해자(?), 아버지를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맥피가 다른 경지의 화해, 용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트라우마가 그의 삶을 참 많이도 바꿔놨구나를 다시 상기시키기에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다. 




"나는 나보다 작은 것에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가 아니다."만큼이나 울림 준 문장이 있었는데 맥피의 파트너가 한 말이다. 법적 이름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급변하는 파트너, 다리털이 무성해지고 체취도 달라지고 이두박근 삼두박근 근육이 솟아나는 파트너에게 딱 지킬 수 있는만큼 약속한다. 


"난, 네가 너로 살아가는 데 결코 방해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다른 건 전혀 약속할 수 없어."


So Cool! 그대들, 멋져 버렸어! 


그 어떤 보증수표 남발하는 약속보다 "약속 할 수 없어"라는 이 말이 든든하게 들린다. 

이 책은 진정 부제, "A True Story of Violence, Forgiveness and Becoming a Man," 용서와 변화,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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