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흠 찾기는 쉬운데, 제 흠은 안 보였나 보다. 

[아키시]라는 그래픽 노블을 집에 들여와서, 휘리릭 맛 보기를 하면서 '아프리카의 가난, 인권 그런 얘기겠구나' 속단했다.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아키시는 밝디 밝고 귀여운 아이이며, 주인공의 이름을 그대로 딴 이 그래픽 노블은 자연스러운 일상, 어린이다운 상상, 독특한 아프리카식 유머가 가득했다. 한 마디로, 유쾌한 작품이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삶에 지친,' '소외된'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는데!

"아프리카"를 뭉뚱그려 '검은 대륙,' '고통, 가난, 지체,' 등의 이미지로 타자화시켜온 그 숱한 시선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안의 통제 안된 편견이 그냥 치고 올라왔을 때, 나는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도 고개 숙여 사과하는 한 방식이다. 



아키시의 저자, 마르그리트 아브에는 서아프리카 코르디부아르 태생이다. 열두 살에 파리로 와서 유학 생활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요푸공의 아야>로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했고, <아키시>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야기의 배경은 서아프리카이며, 주인공 역시 아프리카 소녀인데 보통 깜찍하지가 않다.

족히 천 권 이상 그림책을 보아왔다고 자부하는데도 <아키시>처럼 독특한 개성의 책은 처음 만나본다. 어쩌면 내가 무지해서 미처 상상 못 해본 세계의 이야기인지라 새로운 것인데, 마치 작품 자체가 무척 개성적인 것처럼 돌려 말하는지도 모른다. 아키시는 그냥 귀여운 소녀, 친구 욕심 많고 칭찬받고 싶고 대장 되고 싶은 아이인데, 나는 자꾸 '아프리카 소녀'를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유난히도 '주술'로서 불임을 치료하는 장면이나, 말라리아를 앓다가 꾼 꿈을 판타지 영화처럼 풀어낸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것을 보면 나는 <아키시>에서 이국적인 것, 내 경험 세계에서 흔히 보지 못한 것들만 보려 하고 또 찾아낸지도 모르겠다. 반성한 척하면서 일도 반성하지 않은 것이다. 

그나저나 이런 사랑스러운 아이의 이야기는 혼자 보기 아깝다. 나 같은 어른보다도 아키시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많이 찾아주었으면 한다. 작가 마르그리트 아부에가 어린 시절 대륙을 건너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면서도 작가의 꿈을 꾸고 또 실현한 점도 진심 응원한다. 아키시의 다른 시리즈를 찾아 읽는 것으로 응원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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