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글쓰기 -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이고은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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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초록색 책표지에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선정작" 엠블렘도 선명하다. 그런데 막상 [여성의 글쓰기: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를 읽는데, 초록색의 선명함과 달리 내용과 문체가 혼색이자 탁색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의아했다. 경향신문 정치부와 사회부 전직기자로서 "글쓰기 근육을 키웠(21쪽)"으며 3권이나 책을 펴낸 저자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여성의 글쓰기]가 작가지망자를 위한 글쓰기 방법론을 가르치려는 책인지, 한국사회 저널리즘과 사회 병폐를 고발하려는 글인지, 육아의 고단함 속에서도 글쓰기로 자아 찾는 과정을 드러내려는 고백서인지 모를만큼 집필 동기만큼이나 문체도 섞여 있었다. 


그러다가, 작가가 쓴 "나가는 말"에서 이유를 찾았다. 


"이른 아침, 늦은 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 있는 짧은 오전. 나에게는 귀하디 귀한 황금 시간대다. 쪼개고 쪼개어도 모두 합쳐 하루 평균 서너 시간이 채 못 된다. 짧고 불연속적인 이 금쪽같은 자투리 시간을 다시 자르고 이어 붙여 쓴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227쪽)"


교만을 토핑한 속단을 저자 이고은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10년을 상대 가정의 숟가락 수까지 셀 정도로 가까이 지냈더라도 정작 이체하려다보면 친구의 이름을 몰랐음에 자괴감 든다는 엄마여성들의 우정 이야기가 떠올랐다. 경력 단절, 사회적 관계망에서의 고립감, 소위 말하는 "독바 육아"의 고독함을 수 년간 감내하다 보면 그저 '출구가 없다'고 포기해버리기 쉬운데, 이고은은 새벽잠과 밤잠을 포기하면서, 글을 쓰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며 목소리를 묶어냈다. 독자로서 가벼운 속단을 제대로 다시 사과한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책 중간 중간 별책부록처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쪽글 네 편을 끼워 넣은 선택에 공감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저자 스스로도 "솔직히 '이렇게 쓰라'든가 '잘 쓰는 법'에 대해 논하는 것은 어색해서 미루고 미뤄서 썼다(230쪽)"면서 굳이 책에 끼워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먼저 각성한 자가 '아직' 미몽 상태의 이들을 가르치려는 뉘앙스도 담았기 때문이다. 자격지심이라고 보아도 좋다.  


"나의 목소리가 거센 파도 소리에 묻혀 의미 없이 흩어지는 것만 같은 공포에 짓눌렸다(200쪽)" "

글 생각을 하다 놓쳐버린 가사와 육아의 공백에 스며드는 죄책감은 내 몫이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나의 글쓰기는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누리는 고고한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되곤 했다(123쪽)."


청와대를 출입하며 박근혜 前대통령과 면대면 인사를 나눴다는 일화를 소개하는 이고은 (전)기자가 사직 후, 오로지 육아에만 올인하며 느꼈을 당혹감과 고립감, 아니 더 자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존재의 무너짐에서 어떻게든 탈피해보려 선택한 출구가 글쓰기 였다. 흥미롭게도 기자생활 하며 단련된 "글쓰기 근육"은 책의 1장에서는 무채색의 배경화면으로 작동하지만, 3장과 4장으로 갈수록 정서적 호소와 절박함을 담아 천연색으로 선명한 교차된다. 저자가 그만큼 "공포에 짓눌려(200쪽)" "죄책감은 내 몫" 삼아 절박하게 썼기에.....


솔직히 나는 후자의 글이 훨씬 좋다. [82년생 김지영]의 초대박 히트는 문학적 완성도에 있다기 보다, 독자 개개의 이름과 '김지영'이란 이름을 치환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공감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성의 글쓰기: 혐오와 소외의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찾는 일에 관하여] 역시, 꼭 글을 쓰려는 욕구나 의지가 없더라도, 읽으며 주어를 살짝 자기 이름으로 바꾸어 보기만 해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책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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