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탐구생활 - 술에 관한 깊고 넓은 인문학 강의
허원 지음 / 더숲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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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씹고, 넘기는 이야기야 언제나 사람 혹하게 한다. 이번에는 술 이야기이다. 자그마치 20년 넘게 대학에서 양조 공학을 강의한 특수분야(?) 전문가가 강의노트를 일반에게 공개했단다. 바로 『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 탐구 생활』이라는 타이틀로. 그렇다. 실제 이 책을 읽어보니, 영양학, 생물학, 화학, 농학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전문적 자료 때문에 메모지를 부지런히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 표지처럼 '엄지척' 쉽게 올리기에는 책을 꼭꼭 씹어 먹는데 시간이 걸린다. 


저자 허원 교수는, 음주야말로 진화의 유산이자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인간과 술의 관계 탐색이 의미있는 작업임을 일반에게 알리고 싶었다 한다. 한 마디로, 지식의 미뢰로 술의 맛을 음미해보자는 거다. 1부에서는 Robert Dudley교수의 The Drunken Monkey가설을 빌어와 "태초에 술이 있었으며, 음주가 진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알코올 의존성은 유인원을 적극적으로 채집 활동에 나서게 하고, 인간으로 진화하게 하는 여정으로 이끌었다. 지능을 가진 인간으로 진화하면서 술을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고 마시게 된 것은 필연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유전자 때문이고, 음주는 진화의 유산이다. (22쪽)



 총 4강 구성의 본문의 1강은 와인으로 시작한다. 단순히 와인 맛의 원리나 포도 재배 환경과 발효 과정뿐 아니라 일종의 문화로서 "와인"에 접근하는 점이 참신했다. 예를 들어, 전세계 와인 소비량 중 60%가 레드와인이며, 40%가 화이트 와인인데는 단순히 소비자로서의 와인애호가의 취향뿐 아니라, 적포도주의 문화사적 종교적 상징성 등이 반영되어 있다는 해석이다. 


와인 비즈니스 세계에는 포도 재배자와 업체를 통칭하는 네고시앙, 와인 제조자, 소믈리에, 와인 작가, 평론가들이 모인 자생적 마케팅 조직이 활동한다. 다른 주류 산업계에서는 볼 수 없는 환경이다. 이들이 거대한 와인 생태계를 형성하고, 동시에 와인 산업을 이끈다. 경영학이나 마케팅에서 말하는 완벽한 공급 사슬 관리 시스템이다. (45)


 2장 제목 역시 "비즈니스"가 포함된다. "맥주가 없었으면 이집트 피라미드가 완성되지 못했으리라"는 말을 빌어, 맥주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며 다양성을 매력으로 하는 술임을 강조한다. 동시에 저자는 점차 맥주가 식품산업의 독과점 품목화되어가면서 그 야생적 맛과 다양성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표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맑은 맥주'가 실은 맥주회사의 마케팅 전략에 세뇌당한 이미지라는 지적이다.


장에서 만드는 라거는 헤이즈(haze)를 완벽하게 제거해야 한다. 맥주는 맑고 투명하다는 편견 때문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시대에 대중 매체가 씌운 광고의 굴레이다. 114쪽

 


3장 "예술적인 누룩의 발효시간"에서는 동양의 누룩, 서양의 몰트를 비교하며 그 유명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까지 빌어온다. 동서양의 기후 차이가 발효 방법의 차이를 가져왔으리라는, 즉 일종의 환경결정론적 해석이다. 허원 교수는 고려 문인 이규보의 소설 <국선생>과 임춘의 <국순전> 등 문학작품을 통해서 누룩곰팡이가 우리 선조들의 전통문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발견한다. 누룩곰팡이야말로 "발효 음식의 맛을 지키는 집안신의 실체(153)"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집집마다 "가양주"라는 이름으로 직접 담궈먹던 누룩발효 술의 전통을 일제식민지를 거치며 쇠락시켰고, 일본인의 입맛에 최적화된 '청주'가 '우리 전통술'을 대신해 그 자리를 꽤찼다. 현대화된 막걸리 역시 전통누룩이 아닌, 일본식 낱알 쌀누룩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허원교수는 탁한 술로서의 막걸리 등 전통주의 매력을 살려 우리 술 문화를 부흥시켰으면 하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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