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현대무용가 김보람과 대한민국 대표 발레리노 김용걸의 "Bolero"에 온통 사심을 두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사람 굼벵이 만드는 일요일 오후 5시, '심히 아니올시다'의 편두통까지 겹쳤건만 "Bolero"를 현장에서 볼 수 있다면야 본전은 건지는 셈이기에 "서강대메리홀" 왕복 여행을 한다.

이 공연장은 뭐랄까, 공연장으로서는 70점짜리. 암전 되니 EXIT 형광 안내판 전혀 눈에 안 들어오지, 비상시 대피로에 대한 안내가 공연 직전에 없으니 공연 내내 불안했다. 관객들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오래된 의자 삐거덕 소리가 추임새처럼 생생히 울려 퍼지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잡음의 투덜거림에도 불구, 공연 레퍼토리가 기대 이상이었고 출연 무용수들의 에너지와 관객의 열띤 호응은 최고였으므로, "서강대메리홀" '어쩌고저쩌고'는 여기까지.



한국 대표하는 간판 발레리노였다가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 현재 한예종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인 김용걸의 화려한 인맥을 자랑하듯 이번 "김용걸 댄스시어터 창단 9주년 기념 공연"에는 쟁쟁한 무용수들이 대거 출연하였다.

독일 아우구스부르크 발레단의 안세원, 부르노 국립 발레단 드미솔리스트 윤별, 헝가리 국립발레단 드미솔리스트 이유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 종신당원 강호현, 폴란드 국립발레단 정재은, 유니버설 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이동탁, 그중에서도 내 눈에 콕 박힌 멋진 별은 최원준(Choi, Wonjune). 2014 프랑스 그라스 국제발레콩쿠르 1위, 2015년 뉴욕 발렌티나 코즐로바 국제발레콩쿠르 1위, 그리고 현재는 폴란드 브로츠와프 오페라 발레단 소속https://www.opera.wroclaw.pl/1/balet.php 이라 한다.

https://www.opera.wroclaw.pl


그는 김용걸 안무의 모던발레 "의식 Conscience"와 2019년 신작 "Silence Wasn't Empty?"에 출연했는데, 우울한 듯 내성적인 듯 무용수의 개성이 전해지는 몰입의 춤어휘가 참 인상적이었다.

2010년부터 안무를 해왔다는 김용걸은

루돌프 누레예프

지리 킬리안

피나 바우쉬

윌리엄 포사이드


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한다.

"의식 Conscience"은 확실히 지리 킬리안 스타일! 착착 감기고 돌고 채우고 빠지는 이인무!

유니버셜 발레단 시니어 솔리스트 손유희와 호흡을 맞춘 "산책 (Une Promenade)"는 무용수이자 무대 위 비주얼 카리스마 뿜어대는 김용걸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 작품. 발랄하면서도 귀엽고 연극적인 안무도 너무도 잘 소화해내는 김용걸의 또 다른 재능을 엿보았다.

2014년 세월호의 아픈 비극을 기억하고 사라진 아이들을 추모하는 작품 "빛, 침묵 그리고..."는 짧고도 강렬한 안세원의 춤도 압권이었지만 이희상 카운터테너의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 도대체 이렇게 사람 홀리는 미성이라니, 무용 공연인데 춤이 안 보일 만큼 소리의 에너지가 어마했다.


Silence Wasn't Empty?(2019, 김용걸 안무)

와! 장담하건대 김용걸 안무가는 곡에서 먼저 영감을 얻어서, 이 30분짜리 안무를 하였으리라! 그 정도로 기계음에 가까운 인공의 소음과 음악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느낌을 주는 기괴한 곡이었다. 그런데, 공연 팸플릿과 웹 페이지 어디에서도 이 안무작의 음악에 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아쉽다. 곡으로 이미 점수 반은 따고 들어간 경기! 김용걸이 추구하는 춤 어휘, 발레 스타일을 엿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앞으로 더 다듬어지거나 축약(?) 해서 소품처럼 많이 무대 위에 올려질 것 같은 예감!




Bolero"

 

김보람 안무가, 김용걸 안무가 2인 동시 출연이라 하기에 예측했다. 양복으로 시작하여, 점점 탈의하리라. 오호! 13분짜리 안무의 클라이맥스에 오르며 '예측 맞았구려!'의 쾌감. 두 쟁쟁한 춤꾼은 처음에는 댄스배틀의 점잖은 출연자로 등장해서 막판에는 땀이 번들거리는 상체를 드러낸다.

현대무용가로서 요즘 최고 주가의 김보람 특유의 껄렁껄렁한 야수성에 유머감각, 안무가로서 한껏 스타일이 유연해진 김용걸의 예능감 연기와 춤! 이미 여러 번 "Bolero" 무대(예술의 전당, LG아트센터)에 올랐던 그들이라 서로의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댄스배틀을 벌이리라 짐작했는데 역시나! 최고수끼리의 만남은 이런 시너지를 내는구나! 이번 정기공연을 보면서 느꼈는데 무용수로서의 김용걸은 물찬제비, 민첩하고 깃털같이 가벼운 풋워크가 타의 추종 불허.


김보람이야 요새 워낙 핫해서 곧 열리는 창무국제무용제에서도, 31일 용인포은아트센터 무대에도 오른다. 김용걸 안무작에 출연한다.



김용걸 댄스씨어터 창단 9주년 축하드립니다. 멋진 정기공연무대 선사해주신 안무가와 무용수 전원의 투혼에 감사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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