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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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들어오자마자, 동네 도서관에 대출 예약을 걸어 놓았는데 히야! 3달을 기다려서야 내 손에 들어오다니! 불과 석 달 만에 책표지가 누덕해졌다. 얼굴 뾰루지 솟는 데는 무심해도 책 너덜거리는 데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로서는 일단 촉이 솟지만, 꾹꾹 누른다. 그만큼 김훈 작가님을 알아 모시는 애독자들이 세상에 참 많다는 생각으로.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다. 

[연필로 쓰기] 첫 페이지



故 올리버 색스, 故 이윤기, 故 장영희, 내촌목공소 김민식, 그리고 김훈, 내가 책 읽다가 흠뻑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들은 우연일까? 세상 살아오신 날들이 많거나 이미 세상을 뜨신 분들이다. 곰곰 생각해봤는데 이들이 연륜에서 나온 사색의 힘을 보여주는 나이여서가 아니라 참으로 겸손하여 이분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릇"이라는 작은 단어에 담을 수 없도록 정신은 높게 활공하는 데도 참으로 스스로 낮추시니 그 겸손함을 흠모하는 것 같다.


정작, 김 훈 선생님 소설을 안 읽었다. 『공터에서』가 유일하고 산문집도 『라면을 끓이며』만 읽었다, 어쩌다 온라인 신문 기사에 기고하신 글들은 찬찬히 읽었다. 그런데도 이 분을 감히 알 것 같다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나는 김훈 작가가 무척 좋아진다. 좋아지는 이 마음을 어쩌기 어렵다. 1948년에 태어나 역사의 질곡을 보고 겪고 살아오신 어르신으로서도 좋고, 소설가라는 직업인으로서도 존경스럽다. 감기 걸려 소아과 병원을 찾는 어린애를 살뜰히 살피는 젊은 엄마를 어여삐 보는 그 마음, '날 잡아봐라' 하듯 21세기형 춘향몽룡 놀이하는 젊은이들의 연애놀음에 흐뭇해하시는 그 마음도 고맙다.


『연필로 쓰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 울컥, 눈물이 솟구쳤는데

이건 김 훈 작가님만이 부릴 수 있는 요술이다. 작가가 걸었던 남한산성, 일산 호수공원, 멀찌감치서 바라본 건져올려진 세월호,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를 수집했던 할매들, 상갓집의 친구들, 함께 만나고 본 것 같은 시간감이 느껴진다.


지난주 최대 수확이었던 올리버 색스 교수의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에서도 느꼈지만, 겸손하고 큰 분들이 어느 선에 오르면 다음 세대의 정신적 안녕을 걱정하시나 보다. 임종으로 향해 가던 병상에서도 올리버 색스 교수는 스마트폰 좀비가 되는 요즘 사람들을 가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김훈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페이지 곳곳에서 동물성을 잃어가는 전자회로 부품이 되어가는 젊은 사람들, 어린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일흔이 넘으셨으니 이제 '할아버지' 소리가 자연스럽게 들리는 이분은 대신 살아 있는 순간순간 감각을 최대한 누리고 감사해한다. 오이지의 씹히는 맛, 자전거 라이드 길가에서 들이키는 냉면육수의 숭고함, 우륵과 황병기 선생님이 올려다보았을 별 밭 아래서의 겸허함, 감각으로 넘친다.

삶의 방향을 조금이나마 덕분에 보는 것 같다.

고마운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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