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프랑스 안무가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를 통해서 국립무용단을 재발견했다고 할까요? 한국 전통춤 무용수가 소화하는 현대무용 안무는 색다른 맛이 있더군요. "넥스트 스텝 Next Step"이라는 이름을 듣고도 감이 왔습니다. 국립무용단이 변신하고 있구나. 말 그대로, next wave/generation, 국립무용단의 젊은 버전 미래형 무대를 보여주려나 싶었는데, 그렇습니다.



. "넥스트 스텝 Next Step Ⅱ"의 공연장,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을 찾았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방문하는 극장인데, 묘하게도 올 때마다 비가 내리네요. 이번 공연의 두 안무가, 박기량과 황태인의 전신이 담긴 야외홍보물이 비 오는 저녁 하늘빛과 잘 어울립니다.



사진: 국립무용단

황태인 안무가의 "무무"는 "한 편의 그림처럼 그려낸 한국무용 고유의 움직임"이라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검은 의상, 푸르른 무대 조명, 심플한 무대 디자인, 현의 소리, 오직 네 명의 무용수(김미애, 조용진, 조승열, 황태인)이 '헉' 소리 절로 나올 기량의 춤으로 채워갑니다. 15분 내내 진지하고,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정중동, 점선면, 무용수들의 부드러운 손 움직임으로 얼마나 큰 에너지가 전해지는지, 한국춤의 본질을 안무가가 깊이 고민했구나 감동받았습니다.

https://youtu.be/O9CD9E35ruQ


상대적으로 "쁘랭땅 printemps"은 공연 시간이 깁니다. 무려 30분. 그런데 조명, 무대 의상과 소품, 음악 등을 어찌나 골고루 썼는지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박기량 안무가는 "여성들만의" 봄을 그리고 싶었을까요? 여성 무용수들만 등장하는데, 아마존 여전사가 절로 연상됩다. 남자는 가라. 우리끼리 쾌락, 우리끼리 놀고, 탈출하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심지어 재생산으로 사회 존속시킬 수 있다! 너무 멀리 간 해석인가요? 아무튼 오늘 이 공연 관객 중에 축제(특히 페미니스트의) 기획자가 있다면 "Printemps"섭외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했습니다.




황태인 안무가가 안전하게 다져지고 고르게 평편한 길을 간다면, 박기량 안무가는 일부러 울퉁불퉁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외발자전거 같다는 인상을 주네요. 적어도 제게는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보다 훨씬 "Primtemps"이 독창적이고 매혹적인 작품이었어요. 앞으로, 박기량 안무가가 만든 작품이라면 앞뒤 재지 않고 티켓 예매할 듯합니다. 




공연 보고 나온 후에 "next step"문구가 더 확 와닿네요. 국립 무용단이 이렇게까지 참신하게 우리 춤에 새 옷을 입힐 수 있구나.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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