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과 고래뼈 - 이집트로부터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끝나는 옷 이야기 푸른들녘 인문교양 21
이민정 지음 / 푸른들녘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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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번대, 그중에서도 590번대라면 도서관에서 좀체 기웃거리지 않는 서가 쪽 책일 텐데 제목에 혹해서 『고래뼈와 코르셋』을 뽑아들었습니다. '득템!'하며 재밌게 읽고, 기억이 가물거릴만해지자 6개월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저자 이민정은 독특하게도 "의류직물"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입니다.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인 『옷장에서 나온 인문학』의 저자이면서 고등 국어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다지요. 전문용어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논문 스타일 글쓰기가 아니라, 초중고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문체는 그가 패션잡지 에디터로 활약했다는 경력과 연결 짓게 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은 여러 면에서 설혜심 교수의 『소비의 역사』를 연상시킵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 혹은 소비 대상 이면의 역사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양념 쳐서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비슷하거든요. 설혜심 교수가 역사학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뜨고 있는 소비史 분야의 전문지식을 강의 PPT 수준 비주얼 자료로 일반에 공개했다면, 이민정은 옷, 옷감과 얽힌 정복과 착취의 역사, 구별짓기와 개인 집단의 정체성 등을 풍부한 곁가지 에피소드로 프릴 달아 내어놓았습니다. 재밌고, 유익합니다. 역사 공부, 요렇게도 하는구나 싶어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옷에 관한 한 '멀티플레이어'를 자부한다는 저자 소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이민정은 옷과 패션에 관한한 "박학다식" 그 자체인데요. 예를 들어, 유럽 정복과 함께 사라졌던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물질문명을 언급하면서 단순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브리치클로스뿐 아니라 버펄로 사냥으로 쌓아올린 뼈 무덤 사진을 소개합니다. 또한 옷감 중에 '목화'가 단연 최고라면서, 목화가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 피와 땀을 착취당한 흑인 노예들의 삶을 소설 『뿌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 헤티 맫내이얼의 슬픈 사연으로 살을 붙여 설명합니다. 재밌죠. 이렇게 자료를 모으고 다룰 수 있기까지 이민정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민정 저자 덕분에 이렇게 뒤늦게야 '고래뼈 코르셋'이 뼈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요. 저는 이제까지 뼈에 탄성이 있어서 코르셋 소재로 쓴 줄 알았더랬죠. 알고 보니 뼈가 아닌, 고래수염(baleen)으로 코르셋을 만들었는데 이를 착각한 이들이 whalebone으로 번역하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세계명작 동화를 읽으면서 공주님 드레스의 소매가 왜 그리 쳐져 있을까 궁금했는데, 오호! 바로 블리오였군요. 에드먼드 레이튼이 그린 여성들이 입은 드레스가 그것이랍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네요. 번쩍이는 북두칠성 별 박아 네일아트한 여성에게 김장 배추 절이자고 할 수 없겠듯, 소매를 길게 늘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 물 길어오라 못했겠네요. 이민정 저자가 소개한 "시도서" 속 농기구를 들은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고 소매가 간소한 것과 대비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 본문 129쪽에 소개된 사진

마지막으로, 위 사진 속 빨간 양말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 읽은 "일곱 마리 까마귀"란 동화 삽화에서 까마귀들이 신고 잤던 양말과 너무 똑같아서 유심히 보고 기억했는데요, 놀랍게도 이 양말은 4세기 경 제작되었답니다!!!!! 1700년 전 양말이란 말이지요.

6개월 시간 차를 두었더라도 그래도 두 번이나 읽은 책 제목을 『고래뼈와 코르셋』이라고 바꿔 기억하니 부끄럽지만, 『코르셋과 고래뼈』는 일상의 옷과 옷감, 나아가 역사에 천장 없는 호기심의 풍선을 올려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 강력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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