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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사회적 아젠다를 던져주고 논의의 급물살을 일으키는 주체로는 주류 언론뿐 아니라 출판계 기획자의 마이더스손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2018년은 바야흐로 "언어"를 화두 삼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등극하는 호황을 일으켰죠? 『언어의 온도』를 필두로 최근에는 이화여대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가 핫한가 하더니, 이 분야 돋보기 전문 식견을 가진 신지영 교수의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가 최근 출간되었습니다. 출판계 덕분에 대한민국의 '언어 성찰' 아젠다가 2019년도에도 뜨거운 감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언어의 줄다리기: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는 국문학과 언어학을 전공하고 자신을 스스로 '언어 탐험가'로 자리매김하는 학자, 신지영 교수가 2014년 의뢰받아 일회성으로 진행했던 워크숍의 호응에 힘입어 4년간의 자료수집과 질필과정을 겪어 최근 세상에 나온 책입니다. 저자는 "글을 써가는 과정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혼자 맛보는 이 즐거움이 미안할 정도 (7쪽)"였다고 탈고 후의 소회를 밝히는데, 과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다 보면 신지영 교수가 어떤 문제의식하에 어떤 과정을 거쳐 자료를 모으며 문제의식을 구체화했는지 훤히 보이며 덩달아 신명남을 독자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언어표현을 둘러싼 논의를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벌이는 심각한 이념의 줄다리기(15쪽)"로 보고, 자신은 그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결에서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해설자(19쪽)"으로 자리매김합니다.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언어표현 논의를 총 9개의 대격돌로 나눈 신지영 교수는 신문자료, SNS를 떠도는 가쉽성 댓글, 본인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촬영한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현실감 넘치게 논의를 전개합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 각하' 호칭을 비민주적 표현이라 주장하며 국가 기록원과 옛 신문자료에서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지요. 마찬가지로 '비혼/미혼' 논의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댓글을 자료 삼아 제시했고요.
'성숙한 소통'이라는 '미션 임파서블'을 '미션 파서블'로 만들고 싶다는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언어 감수성이라는 근육의 힘" 키우기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찰적 말하기'와 '배려의 듣기'가 필요한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으면 적어도 '성찰적 말하기'를 위해 내가 무심코 쓰는 언어 이면의 이데올로기를 톺아보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9개의 '언어 이데올로기 충돌의 장'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했던(244)" 규범의 이면에는 언어의 주인인 언중의 생활언어를 무시한 '관 주도' 언어정책의 폭력이 있었다고 지적하는 장이었습니다. '자장'이나 '짜장'이냐 발음에 따라 세련됨을 표현하는 거로 생각해왔는데, "짜장" 발음의 해금 사건을 '민/관'의 주도권 경기장이라는 틀로 해석하는 점이 참신했습니다. 또한 초등학교 교육의 여성화는 사회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런 논리의 틀이라면 남교사가 많은 고등 교육과정의 남성화도 진작에 문제로 제기되어야 하는데 잠잠했던 것은 젠더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도 수긍할 독자가 많겠더라고요.
언어 표현을 둘러싼 논쟁 이면의 이데올로기간 줄다리기를 이처럼 삶과 밀착되는 사례로 흥미롭게 풀어낸 신지영 교수 덕분에 한국의 많은 독자들의 언어감수성 근육이 키워질 듯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