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마린스키 발레 "돈키호테"

 

겨울 발레라면 왠지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으로 보아야 제맛일듯한 상상. 그중에서도 '마린스키 발레단 Mariinsky Ballet Company' 공연이라면 'best of best'일진대, 운 좋게도 개인적으로 특별한 날에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내한공연의 초대장을 받았답니다. 자주 드나들어 익숙한 세종문화회관 건물도, 러시아에서 날아온 예술가들이 이국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어서인지 그날따라 웅장하고도 새롭게 보이더군요.

 

 

 여러 채널을 통해 공연 홍보글과 열띤 호응의 댓글을 보아왔기에, 11월 16일 공연에서는 객석이 꽉 차지 않을까 궁금했답니다. 막상 2층의 경우, 빈 객석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VIP석 28만원, R석 23만원이라는 고가의 티켓가격 책정이 전석매진을 방해했겠지요. 역으로 그만큼 열혈 발레 팬들이 공연장을 찾았기에 '양보다 질'의 객석매너를 보여주리라는 위안 반, 즐거운 기대 반의 마음이었습니다.  

 

2층 R석에서 막이 오르기 전에 찍었습니다. 이정도 시야가 확보됩니다. 아쉽게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은, 앉은 상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무대만큼은 잘 보입니다.

공연시간이 3시간이라면 지레짐작, 놀라는 예비관객도 있겠지만 실제 공연시간은 3시간보다 훨씬 짧답니다. 1막 45분, 2막 25분, 3막 50분 사이사이 25분씩 인터미션이 주어지니까요. 바깥 바람이 차서 인터미션 50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채 로비를 어슬렁 거렸네요. 덕분에 팜플릿(10000원, 스티커 페이지 포함)을 구입해서 한줄 한줄 탐독할 긴 시간도 확보하고, 포토존에서 사진도 찰칵했습니다.

마린스키 발레단 단장인 유리 파테예프는 "화려한 춤과 모험, 진정한 고전 발레"로서의 돈키호테를 소개한다며 내한 소감을 밝힙니다. 공기가 차가워지는 초겨울밤, 정열적이고 뜨거운 "돈키호테"라니, 마린스키 발레를 알리기에 탁월한 레파토리 선정입니다.

"돈키호테"하면, 발레 마임 특유의 부드러운 익살스러움과 붉은 의상의 정열, 집시들의 플라멩고, 희극 발레의 대명사이자 스페인의 정열의 맥박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지요? 1869년 전설적인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가 51세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이후 1900년 알렉산더 고르스키가 스승이자 대선배인 프티파의 안무 중, 늘어지는 버전을 압축하고 앙상블과 군무를 재정비한 안무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오리지널 안무가인 프티파의 심기를 건드리기는 했지만 개정안무는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인 마린스키발레단과 볼쇼이발레단에서 초연하고, 호평을 받았다고 하네요.

 

같은 안무일지라도 어떤 무용수가 해석해내고 무용수들의 호흡이 어떤가에 따라 천차만별의 공연이 될터인데, 2018년 11월 16일 공연의 주역 무용수로는 키트리역에 엘레나 예브세예바와 바질 역에 필립 스테판이 발탁되었습니다.

솔직히, 16일 공연에서는 김기민님의 춤을 볼 수 없어 많이 아쉬웠어요. 그도 그럴 것이, 김기민은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부느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에서 최고 남성무용수상을 탔고 '마린스키 발레단' 250년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인으로서 수석무용수로 활약하고 있거든요. 11월 15일 공연 후기를 보니 김기민님의 춤에 고국팬들의 열띤 환호가 대단했었나봅니다.

 

키트리역에 엘레나 예브세예바는 세련된 테크닉만큼이나 세련되고도 사랑스러운 외모덕분에 많은 팬을 확보한 마린스키의 스타무용수라 합니다. 바질 역의 필립 스테판은 2005년 마린스키에 입단하여 2009년 솔리스트로 승급한 이후 우아함과 섬세함을 겸비한 무용수라는 평을 받으며 꾸준히 활약하고 있다 하고요.

 

 

 한국 양대 발레단이라 할 '유니버설 발레단'과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 및, 해외유명 스타 갈라공연에서의 "돈키호테" 하이라이트 공연을 감상했던 기억을 더듬거리며 '마린스키 발레단'의 공연을 감히 평해보자면.......
"가진 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우선 그 화려하고도 색감 풍성한 의상들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우아한 육체성과 동일한 무대장치에 동일한 오케스트라와(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숱하게 호흡을 맞춰온 노련한 경험에서 나온 여유.....그 여유가 말 없이 몸짓으로 전해지는 무대였습니다.

 

이처럼 초일류 무용수들의 토슈즈를 더욱 가볍게 해주는 것은 관객의 뜨거운 박수와 응원일텐데, 한국의 점잖은 관객들이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원들을 다소 당황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내심 불안해하며 3막까지의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불과 하루 전, 15일 공연에서 김기민님이 어마한 환호와 커튼콜을 받았다고 하는데, 주역 무용수가 등장할 때도 박수가 없고 3막에서 바질이 키트리를 '깃털 들어올리듯' 번쩍 들어올리는 장면에서도 호응이 약합니다. 특히 투우사 '에스파다' 역을 맡은 이반 오스코로빈이 탄력 어마한 점프와 유연함으로 투우사의 강렬한 춤을 소화해내는데 객석이 점잖다 못해 고요해서 내심 불안했습니다. 초일류 무용수일지라도 그들의 핏줄을 뛰게하는 것은 객석의 호응일진대......다행히 3막까지 모든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서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열렬한 환호를 폭발시켜냈습니다.

 

 손뼉 딱딱 맞게 시의적절한 뜨거운 호응이 2도만 더 높았더라면 200%의 기량을 보여주고 갔을 마린스키 발레단. 2막 정령의 여왕은 다소 불안하게 점프하고 군무의 호흡도 살짝 흐트러지던데 왠지 2도 높은 박수였으면 긴장감가지고 깔끔하게 처리할 힘을 받지 않았을까 혼자 상상해봅니다.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마지막 인사 때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안무가의 영감이겠지만 현실에서 그 위대함을 살려내는 반은 무용수의 기량과 예술적 감성이요, 나머지 반은 관객의 박수와 음악이라는 점에서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정말 큰 기여를 했답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 발레단뿐 아니라 오케스트라에게 꼭 붙여주고픈 명칭이네요.
2018년에 "돈키호테"로 다녀갔으니, 2019년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도 한국무대를 다시 찾아주면 하고 욕심부려봅니다. 이번에 마린스키발레단과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측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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