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암석 대신 얼음으로 덮인 달
지구의 달처럼 하얗지만
지구의 달처럼
흉터가 패지 않은 달
아무리 커다란 운석이 부딪친 자리도
얼음이 녹으며 차올라
거짓말처럼 다시 둥그러지는, 거대한 유리알 같이 매끄러워지는
에우로파,
얼어붙은 에우로파
너는 목성의 달
내 삶을 끝까지 살아난다 해도
결국 만질 수 없는 차가움
내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존재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웃음이다.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여자이고 싶은지 알게 해준 사람도 인아고, 남자의 몸으로 여자를 안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도 인아다. 어린 시절, 점점 어두워지는 골목을 내다보며 어머니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저녁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 우산이 없어. 강당 처마 아래 서서 잦아들지 않는 빗발을 바라보던 오후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도 인아다. 그런 순간 막연히 만나고 싶었던, 모르는 누군가의 희끗한 얼굴과 무심코 겹쳐지는 사람도 인아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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