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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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에이


양치하려고
거울 앞에 섰다
오늘도 깜놀이다

점점 더 명명백백하게
오른쪽으로 틀면 아버지
왼쪽으로 틀면 고모

정면의 내 안에

경남 거창에서 어딘가로 시집간 누이와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우연히 사십여년 뒤 대구에서 관광온 육십대 여인
부산에서 영업차 제주에 간 부친
천지연 폭포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거울을 쳐다보듯
서로의 닮은 꼴에 놀란다
찾을 길 없던 남매
이산가족의 상봉이다
기적이다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받고
사십여년간 있었으나 없었던 고모
고모를 뵈러 온가족이 부산에서 대구행 크레이하운드를 탔다

지금의 내가 헤어졌다
다시 만난 그때의 고모다

놀랍고 신기하다
위대한 DNA

거울

아침에 세수하다가
거울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신다

그것도 늙은 아버지. - P70

밤에 잠을 잘 때 동화책 읽다가 자면
잠이 잘 온다
자면서 악몽을 꾸지 않아서 좋다
동화야 동화야
오래 나를 지켜다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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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꽃다발_ 노나미 아사


[나는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 같았다. 조그맣고, 가냘프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겁을 먹다가도 뭔가 흥미를 끌 만한 것을 발견하면 정신없이 뒤를 쫓는다. 그러나 이내 싫증을 내고 다시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귀엽다며 나를 장난감처럼 실컷 가지고 놀다가는 이윽고 각자의 현실로 되돌아간다. 결국 나는 버림받은 고양이처럼, 마지막 순간에는 혼자 남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빈둥거리고만 있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밖에는 안 돼."
거칠게 닫은 문 건너편에서 그런 말이 들려와도 나는 대꾸 할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이대로는 변변찮은 인간밖에는 되지 못할 거라고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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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 보니 알링턴파크의 사람들도 모두 고만고만하고 크게 다르지도 않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그들을 지나쳤다. 마치 무슨 중요한 소식이라도 전하러 가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뒤뚱거리는 여인을 지나 지평선을 향해 달렸다. 마치 시시각각의 소식을 전하러 가는 전령들처럼. - P192

하늘 위엔 구름이 흘러가고, 태양은 구름 사이로 숨었다 다시 나타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잔디, 여기저기 나무와 관목 연 공 개 들과 지저귀는 새들, 공원 옆을 지나는 도로 위의 자동차까지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온 세상이 그렇게 기계처럼 달려가고 있다. 말라 버린 강줄기에 물을 채우듯 그 기계에 시간을 쏟아 넣으면 그렇게 작은 움직임들이 시작되는 걸까?
(...)
그들은 말라 버린 강과 거칠게 돌아가는 바퀴 사이에 낀 존재였다. 바퀴가 움직일 때마다 그들은 고통스러웠다. 고꾸라지는 연도 그들에겐 고통이었고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들은 그들을 짓밟고 나아가는 것 같았다. - P193

하나 둘씩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는 공원을 나섰다. 공원 밖, 거리, 모든 것이 움직이는 그곳, 시간이 모든 것을 돌리며 뒤섞어 버리는, 바퀴에 묶인 채 고통을 견뎌야 하는 그곳으로. - P196

시간은 여기 아이들이 오가는 현관이 아니라 빙하처럼 차가운 그녀의 파란 눈 속에서만 흐르는 것 같았다. 그 눈으로 보면 세상엔 놀랄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 P199

아마 그 여자 몸에 쌓인 카페인으로 엔진도 돌릴 수 있을 거야. 스테파니는 뭐가 문제냐 하면 누가 자신을 고문해도 그걸 즐길 여자라는 점이지. - P234

가족이란,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가족은 흐린 날의 망망대해처럼 혼란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믿음이 있고, 잔인함과 미덕이 교차하고 감정과 도덕이 요동치는 곳, 끊임없이 폭풍우와 고요함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리다가 다시 햇살이 비치면 결국 둘 사이의 차이를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엇이 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결국엔 그저 살아남는 것, 헤치고 나가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 P241

진정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은 경험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거실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진정한 삶이었다. - P283

그런 게 필요했다. 약간의 칭찬. 가끔씩 고마워하며 참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 누구에게나 그런 칭찬은 필요한 것 아닐까? - P296

대단한 날이었다. 대단한 날! 이젠 할 말도 거의 바닥이 났고 다시 삶의 거품이 끌어오르기를 기다려야 했다. 내일이라는 내용물이 넘칠 듯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P305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삽으로 퍼낸 차가운 흙처럼 저녁이 뒤집히기라도 한 듯이 어수선했다. 지나가 버린 하루가 숨고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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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링턴파크로 차를 몰고 돌아오는 동안 크리스틴은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그들만의 걱정거리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예민한 어떤 부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 부분을 건드리면 흥분하게 마련이다.
그것도 단지 삶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 P147

그 방에 앉아있으면 가족의 무게도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어두운 바다로 멀어져 가는 여객선처럼 그녀에게서 빠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 자기 집이었지만 손님이 된 것만 같은 느낌, (...) 그 방은 복잡한 무늬가 들어간 삶이라는 천에 생긴 작은 주름이었다. - P149

솔리는 소파에 혼자 앉아 마치 인간의 삶 속으로 비밀 요원들을 내려보내는 조직의 수장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타인들의 삶을 상상하곤 했다. - P152

모든 것이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마치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허물처럼 삶에 대한 애착도 점점 더 느선해졌다. (...) 어떤 특정한 경험이나 이야기는 마치 뜯긴 선물 포장지처럼 이젠 다시 찾아올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 P158

‘궁지에 몰릴 때면 잊지 말고 고개를 살짝 들어 봐.‘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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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다.
[밤새 알링턴파크엔 비가 내렸다.
구름은 서쪽에서 몰려왔다. 어두운 성당 같은 구름, 기계 같은 구름, 별빛만 있는 마른 하늘에 피어난 검은 꽃 같은 구름이 몰려왔다.]
이 비는 좀처럼 그치지 않을 것 같고, 이 구름은 더 짙어질 것 같군!

꽃 냄새, 음식 냄새, 왁스 냄새가 진동하는 그 거실에서 줄리엣은 새로운 깨달음, 삶은 본래 멋진 것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언젠가 과거에도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어느샌가 그 느낌은 사라져버렸다. - P24

선물 같은 그 하루 동안 줄리엣은 자신만의 은밀한 삶을 보충해야 했다. 그녀의 삶은 문학반 모임이 있는 금요일 오후라는 가느다란 실핏줄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었다. - P32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바깥 풍경은 탁했다. 너무 탁하고 부질없었다. 비통함과 어울리는 풍경,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다른 감정은 조금도 깃들 수 없게 하는 풍경이었다. - P48

멜라니 바스의 음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눈물이 나려고 했다. 목소리, 아주 고독하지만 힘이 있는 여자 목소리, 그건 이 세상의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노래를 듣고 있으니 줄리엣도 이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얼룩진 카펫이 깔린 이 작은 집을 벗어나고, 장보기에서도 벗어나고, 이 집의 상처받은 사람들과, 비에 젖은 회색 빛의 알링턴파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 씁쓸함이 혈관 구석구석까지 납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자신의 몸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한 송이 꽃처럼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덜 복잡하고, 덜 답답한 곳을 찾아 자기 안에 모든 꽃잎을 활짝 열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 P48

사실, 자신이 사랑해야 마땅한 사람이었지만 줄리엣은 남편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멀리서 남편을 바라볼 때는 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햇빛 좋은 날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더 이상 사랑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 P54

집안일들이 마치 뜨거운 기구에 실은 모래주머니 같아서, 하나씩 덜어 낼 때마다 몸이 위로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 P59

어멘다는 테이블을 돌며 빈 커피잔을 채워주었다. 립스틱이 묻은 커피잔이 모두 그녀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 P92

그녀는 창밖의 정원을 내다봤다. 베드퍼드로드 너머로 보이는 다른 집들의 뒷벽은 배수관이나 전선, 혹은 아무렇게나 발라 놓은 모르타르때문에 항상 지저분해 보였다. 앞쪽에는 멋진 석조 장식도 있고, 덤불도 항상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외지인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앞쪽만 보겠지만, 어맨다는 매일 지저분한 뒤쪽을 마주하고 살아야 했다. 왜 친밀해질수록 그렇게 약한 면이나 황폐한 면을 보이게 되는 걸까? 왜 제임스와 제시카, 에디를 돌보는 데 자신의 삶을 바친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이 남편의 때 묻은 속옷과, 배수구에 막힌 남편의 수염 뭉치, 그리고 아이들의 상실감뿐이란 말인가?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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