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냐 추녀냐 - 문화 마찰의 최전선인 통역 현장 이야기 지식여행자 3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미녀냐 추녀냐>는 요네하라 마리의 생생한 통역 경험담을 묶은 것으로 1995년 요미우리 수필부문 수상작이다. 대부분의 통역 이론서들이 난해하거나 통역사들의 개인적 체험 위주여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과는 달리, 그녀는 한껏 몸을 낮춰 독자들과 눈을 맞춘다. 통역과 번역의 차이 그리고 통역에도 동시통역과 순차통역이 있다는 것 등등...요네하라 마리와 함께라면 어렵고 복잡한 혹은 베일에 가려 있는 통번역의 세계에서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통번역사를 꿈꾸는 이들이나 일반인 모두 일독할 만하다.


당연히 완벽하고 이상적인 통번역은 일단 원문에서 전달하려는 내용을 남김없이 정확하게 전해야 한다. 그리고 번역이라면 원래 그렇게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통역이라면 원래 그렇게 발언한 것처럼 자연스럽고 무리 없고 거슬리지 않아야만 우리는 좋은 통번역이라고 판단한다.

(...) 그리고 역문의 좋은 정도, 역문이 얼마나 정돈되어 있는지, 편안하게 들리는지를 여자의 용모에 비유하여, 정돈된 경우에는 미녀, 아무리 봐도 번역한 티가 나면서 어색한 역문일 경우에는 추녀라고 분류하면 네 가지 조합이 생기는데 다음과 같다. 정숙한 미녀, 부정한 미녀, 정숙한 추녀, 부정한 추녀.

-미녀냐 추녀냐 中-


 

요네하라 마리의 설명에 의하면,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통번역 즉 '정숙한 미녀'일테고, 가장 안좋은 경우는 아름답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통번역 즉 '부정한 추녀'일 것이다. 그러나 통번역사가 신이 아닌 바에야 언제나 어느 분야에서나 완벽한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는 없으니 '정숙한 미녀'는 그저 지향할 뿐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만찬가지로 언제나 어느 분야에서나 부정확한 오역과 세련되지 못한 통번역으로 일관한다면 아무도 일을 맡기려 하지 않을 것이니 자연스럽게 퇴출되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직역과 의역, 오역과 정역 사이에서 피 말리는 재주를 부려야 하는 통번역사로서 그녀의 '미녀와 추녀론'에  크게 공감하며 무릎을 쳤다. 뿐만 아니라, 출발어를 듣거나 읽은 후, 도착어로 말하거나 쓰는 통번역의 과정을 '블랙박스'에 비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많은 학자들이 연구해 왔던 통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 즉 통번역사의 두뇌 활동 과정은 사실 '검은 비밀의 세계'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개발된 그 어떤 통번역기기들도 통번역사를 100%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단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만 기계문명이 발전을 거듭한다하더라도 인간 통번역사를 대체하는 기계장비의 출현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참! 그리고 <미녀냐 추녀냐>를 통해 일본의 통역세계와 한국의 통역세계의 가장 큰 차이점을 알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일본에서는 도착어보다는 출발어를 모국어로 하는 통역 즉, '정숙한 추녀'가 '부정한 미녀'보다 훨씬 선호된다는 것이다. 출발어를 모국어로 하는 통역사의 통역은 비록 거칠고 어색한 면이 있지만 원문을 오해하거나 곡해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반면, 도착어를 모국어로 하는 통역사의 통역은 자연스러우나 원문이 모국어가 아니므로 그만큼 못 알아듣거나 오해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과연, 정확성을 추구하는 일본인답다. 섬세함이나 정확성 면에서 일본에 훨씬 못 미치는 한국은 통역 분야에서도 보여지는 결과와 겉치레에 더 치중하는 것같아 씁쓸하다.


그리고 저자가 러시아어 통역사이다보니 러시아와 관련된 일화와 러시아어-일본어 간의 통번역을 다루고 있어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이해가 잘 안 되거나 공감의 정도가 다소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옥의 티'라 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의 역자 역시 이대통번역대학원 출신이라 일반 번역사라면 달리 해석하거나 표현될 수 있는 부분들을 놓치지 않고 적확하게 옮긴 점은 미덕이라 할 만하다.


끝으로,요네하라 마리의 책들을 접하면 접할수록 떠오르는 질문 한가지가 있다.

'난다 긴다하는 한국의 그 많은 동시통역사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걸까?'

나 역시 밀려드는 자괴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동안 몇 권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번역사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임무에 충실했다고 스스로 자부해왔으니 말이다.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요네하라 마리처럼 일본에서는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루고 직업적 체험을 바탕으로 책을 출판하는 일을 흔히 볼 수있다. 그들 역시 한국인들처럼 먹고 살기 바쁠텐데 말이다. 

세세한 일까지도 기록하고 정리하여 보관하는 일본인의 자세는 정말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분명 본받을 만한 점임에는 틀림없다. 그녀의 또 다른 책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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