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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의 언어 - 우리가 모르는 광동어 이야기 ㅣ 고려대중국학연구소 문화시리즈 5
조은정 지음 / 문 / 2011년 4월
평점 :
나는 표준 중국어 일명 '만다린'어만 할 줄 안다. 그런데 홍콩과 광둥 지역을 포함하여 동남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화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로 광둥어이다. 사용인구가 1억명에 달한다고 하니 중국의 방언 중 가히 대표적이라고 할 만하다.
평
소 광둥어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혀 있던 <장국영의 언어-우리가 모르는 광동어 이야기>를 집어
들었다. 고려대중국학연구소의 문화시리즈 중 제5권으로, 얄팍하여 두껍지 않고 일반인의 호기심도 자극할 만한 내용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글쓴이는 내 나이또래-적확하게는 나보다 한살 아래-로 성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대만국립사범대에서 광동어 연구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인물이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광동어의 발음과 성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청각적 도움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시각적으로 읽기만 하니 '수박 겉핥기식' 으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나
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부분은 케짬(茄汁)->케첩(ketchup), 라이치(荔枝)->리치(litchi),
딤쌈(点心)->딤섬(dim sum), 다이퐁(大风)->타이푼(typhoon)등의 영어 표현이 원래는 광동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대표적인 서양 소스로 알고 있던 케첩이 원래는 광동 지역 어민들이 만들어 먹었던 해산물 소스
'케짬'이 서구로 넘어가 토마토를 주재료로 사용하게 되면서 지금의 토마토 케첩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표준중국어로는 토마토
케첩은 '판체장(番茄酱)' 이라고 하는 등, 위와 같은 유래의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아마 종성이 발달되지 않았고 특히
'ㅁ, ㅂ'의 받침을 소리낼 수 없는 표준 중국어의 특징때문에 의역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중국 북방에서 토마토는 주로
西红柿라고 하는 반면, 남방지방에서는 番茄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영어에서 들어와 중국어
단어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다. 대륙에서는 택시를 '出租车'라는 반면, 홍콩등 광둥지역에서는 '的士'라고 하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원래 的士는 영어 발음 taxi와 가장 가까운 광동어로 광동 지역에서는 的士를 '땍시'라고 발음했던 것이다. 그 후,
的士가 대륙으로 넘어오면서 택시를 의미하게 되었고 발음도 중국 표준 발음으로 '디스'라고 불렸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연유로 인해
중국 남방지역에서는 아직도 택시를 '出租车'보다는 '디스(的士)'라고 부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택시(taxi)->땍시(的士)->디스(的士)
이 밖에도 대륙 표준어와 쓰임이 다른 단어들도 상당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姑娘으로, 중국어로는 아가씨를 뜻하지만 광동어로는 '간호사'를 의미한단다. 이유인 즉, 과거 선교사들이 들어와
현대식 병원을 운영하면서 수녀들이 환자들을 돌보았는데 수녀들은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가씨를 뜻하는 姑娘이 간호사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단다.
그리고 영어를 중국 표준어에서는 뜻으로 번역한 반면, 광동어는 음으로 번역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쿠키(cookie)는 광동어로 콕케이(曲奇)인 반면, 표준 중국어로는 의역하여 '마른 떡'이라는 뜻의
'빙간(饼干)'이라고 한다. 이런 단어들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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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광둥어
|
표준 중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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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 |
jeiiy |
嘟哩(찔레이)
|
果冻(궈둥) |
스토로베리 |
strawberry |
士多啤梨(사또뻬레이) |
草莓(차오메이) |
넘버 |
number |
冧巴(람바) |
号码(하오마) |
바이올린 |
violin |
歪乌连(와이우린) |
小提琴(샤오티친) |
스탬프 |
stamp |
士擔(시땀) |
邮票(유파오) |
젤리/찔레이, 바이올린/와이우린, 넘버/람바 등등
한국어와 광둥어는 영어 발음과 상당히 유사한 것에 비해, 의역한 표준 중국어는 원래의 영어 단어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발음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에 표준 중국어로 표기된 외국인 이름이나 지명등 고유명사는 일일히
사전을 찾거나 검색하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설령, 의역하지 않고 발음대로 표기했다 하더라도 영어 발음에 가까운 광둥어에 비해
표준 중국어는 전혀 다른 발음처럼 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베이커한무(贝克汉姆)가 축구스타
베컴(Beckham)이고, 지무카이리(吉姆凯利)가 영화배우 짐 캐리(Jim Carrey)라는 걸 발음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반면, 광둥어에서는 베컴은 碧咸(빽함), 짐 캐리는 占基利(찜께이레이)라고 표기하고 발음한다 하니, 표준 중국어보다는 원
발음에 훨씬 더 가깝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지만 만약 중국의 표준어가
지금의 북경지방언어가 아닌 광둥어로 결정되었다면 어떠했을까? 성조와 발음을 익히기 위해 훨씬 더 힘이 들었겠지만, 외국인 이름과
지명 등으로 혼란을 겪는 일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