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2 : 묘사와 배경 -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에는 섬세한 문장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론 로젤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쓰기의 모든 것> 시리즈 중, 두번째는 묘사와 배경이다. 지은이인 론로젤은 스스로 뛰어난 작가이면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소설 작법을 가르치는 이름난 강사이기도 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다 넘기고 나서도 한참이나 나는 론로젤을 당연히 여성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굳이 뛰어난 작가에 여성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동안 나 자신도 모르게 섬세한 묘사와 탁월한 배경 설정은 여성작가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 아니었는지...

론로젤은 말한다. 

누구나 소설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발상과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만 그들 모두가 이를 소설작품으로 완성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구체적인 묘사와 배경을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냥 줄줄 이야기만 나열한다면 마치 앙꼬 없는 단팥빵을 씹어 먹는 것처럼 맛이 없고 재미가 없다. 그렇다면 뛰어난 묘사와 배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로 작가의 치밀한 구상과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상상력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설령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일지라도 인류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을 바탕으로 약간 혹은 다소 많은 수정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소설은 기본적으로 '그럴듯'해야만 한다. 즉, 언제 어디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어야만 독자의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이란 바로 이 언제 어디서에 해당되는 시공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되는 '평사리'라는 장소는 작가의 고향인 경남 하동의 어느 마을일거라는 인상을 주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럴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할 뿐, 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지해 창조된 마을이라고 한다. 토지의 배경 설정이 너무나도 그럴듯해서 이미 독자들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평사리'라는 가상의 배경을 통해 허구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소설의 배경이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열고 들어가는 '옷장의 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배경이 그럴듯 할수록 작가는 독자를 훨씬 쉽게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의 속으로 이끌 수 있는 반면, 배경이 엉성할수록 독자가 이야기속으로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여 결국 독자를 속이는데 실패하고 만다.


론로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2 에서 좋은 소설작품은 배경 못지 않게 묘사가 훌륭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묘사는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구구절절해서는 안되며, 정곡과 헛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되 독자의 관심을 '꽉ㅡ' 불들어 매두는 역할을 수행한다. 결국, 묘사와 배경은 독자의 두뇌활동을 자극하는 데에 앞장선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지만 모든 것들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소설의 성공 여부는 설명하는 데에 있지 않고 바로 보여주는 데에 있다. 일일히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독자가 느끼고 상상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론로젤은 바로 이 점을 알려주기 위해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 02 에서 다양한 예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잊지말자. 소설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임을......


'좋은 소설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대학교 시절 문학 수업시간에 교수로부터 이 말을 듣고 깊은 충격에 사로잡힌 바 있는 론로젤은 소설쓰기의 모든 것 part02 <묘사와 배경>를 이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진실이다. "좋은 소설은 배경과 묘사가 뛰어나지만 또한 배경과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초월한다."


끝으로, 론로젤이 진부한 표현으로 언급한 '그림처럼 예쁘다’거나 인물이 ‘교회의 생쥐처럼 조용하다’거나 ‘머리 잘린 닭처럼 돌아다닌다’ 등의 표현은 첫번째 문장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신선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아마 영어와 한국어라는 언어적 '배경'의 차이때문이리라. 그러므로 때론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원문이 그대로 들어난 번역투 문체-번역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번역문장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를 통해 새로운 표현을 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중국어 번역사로서 그동안 도착어를 기준으로 한 번역을 지향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만약 문화적 차이로 인해 원문식-출발어 위주의-표현이 한국 독자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표현으로 다가올 수 있다면, 도착어 위주의 번역을 할 것인지 아니면 출발어 위주의 번역을 할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