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계선에서 - 오래된 믿음에 대한 낯선 통찰
레베카 코스타 지음, 장세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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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출판될 당시부터 쟁쟁한 석학과 리더들의 추천사가 이어졌던 책이다.


저자는 마야, 로마, 크메르 제국이 몰락한 이유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지적하고 있다.

현 대적인 과학 기술로도 풀리지 않는 놀라운 문명을 창조해냈던 고대 왕국이 어떻게 몰락해 갔을까?  바로,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과 물부족 그리고 가뭄과 같은 자연 재해를 합리적으로 극복하지 못하자 인신공양과 물신숭배라는 종교적 '믿음'에 매달리면서 '사실'과 '지식'에 입각한 과학적인 문제 해결의 길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커지며 문명이 발달하면 필연적으로 해결해야하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 두뇌의 진화 속도가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빨리 진화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즉, 인간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가는 속도보다 환경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나도 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필연적으로 '인식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컴퓨터와 무선 인터넷을 만들어낼 만큼 인류는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그 진보의 결과를 누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초원을 거닐던 유인원의 인식 체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냈다면 그만큼 인류의 두뇌와 생각의 틀도 바뀌고 진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안타깝지만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소수의 특별한 '돌연변이'들에 의해 발견되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제임스 왓슨, 리처드 디킨스, 그리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까지 이들을 일반인들과 똑같은 인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으리라. 이들은 정글의 숲에서 제일 먼저 사바나 초원으로 내려와 인류 최초로 두 발로 걷기를 시도했던 첫번째 호모 에렉투스이며 최초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첫번째 호모 파베르라 하겠다. 

어느 순간 불연듯...

'통찰'이라는 지렛대를 이용하여, '인식의 한계'라는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저 너머에 먼저 이른 최초의 사람들 말이다.


'경계 저쪽으로 너머 갈 것인가? 아니면 계속 경계 이쪽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흔 히 시대를 앞선 이들의 진보적 발견과 발명 앞에서 대중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대다수는 변화와 진보를 선택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쪽을 택한다. 하이테크 시대에 진입한 오늘날 인류가 고대 문명인들이 겪었고 해결하지 못한채 멸망해갔던 문제들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전세계적으로 직면한 문제들...

예 들 들면,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환경파괴, 테러리즘과 종교적 갈등 및 인구증가와 고령화는 여전히 난제로 우리 앞에 산적해 있다. 최첨단 위성으로 태풍의 경로를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여전히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현재 65억인 지구 인구는 2030년경에는 90억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일부국가에서는 여전히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부족, 자원고갈, 전염병 확산, 지구환경파괴 등에 따른 심각한 폐해는 후손들에게 전가시킨 채 말이다.


번성하던 마야제국과 로마제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크메르 제국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빠르게 기술적 진보를 거듭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자연히 인구도 증가하였다. 태풍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가뭄에 대처하기 위해 댐과 수로를 축성하는 등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천년 동안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인식의 한계와 지식의 교착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인식과 통찰의 한계에 다다른 마야와 로마인 그리고 크메르인들은 사실과 지식의 추구 대신 믿음과 신앙에 집착하는 원시사회로 회귀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인류 문명 번영의 한가운데를 지나, 인식의 한계에 봉착하진 않았는가. 아무래도 그렇게 보인다.

그 러나 우리는 스러져간 고대 문명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 몇 장의 카드를 갖고 있다. 첫번째 카드는 마야와 로마 그리고 크메르인들이 자신보다 앞선 문명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몰락의 과정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이들 제국 문명의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에 대해서도 이미 상당한 지식을 확보한 상태라는 점이다. 두번째 카드는 고대 문명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술적 진보를 거쳤기에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만 한다면, 즉 의지만 갖고 있다면 멸망으로 이어지는 문명 진화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고, 마지막 세번째 카드는 레베카 코스타와 같은 선지적인 인물들의 목소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이므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즉 통찰의 빈도를 늘리면서 인류 두뇌의 진화 속도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점이리라.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소 길지만 레베카 코스타가 에필로그에서 남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이래로 우리는 진화와 이중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대다수 사람들은 진화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와 지난 수세대에 걸쳐 우리를 괴롭힌 방대하고 복잡한 문제들(지구온난화, 테러리즘, 빈곤, 유행성 전염병, 핵 위협, 세계금융위기, 공교육의 쇠락 등)사이에서 우리가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지금도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인간은 진화가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진보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애써 진화를 등한시해 온 것은 아닐까? 이는 곧 인간에게 생물학적 제약이 있어서 한정된 범위 내의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될 테니 말이다.

생물학적 제약?

분명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 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어느 시점이 되면 문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복잡성과 규모는 우리의 생물학적 능력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때 복잡성과 진화가 충돌하는 지점이 "인식 한계점"이며, 이것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등장했던 모든 선진문명에 종말을 초래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마음이 무거워지는 일이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깨달음의 과정에서 나는 초코릿공장 포장라인에서 일하는 루시는 결코 떠올리지 못했다.

비 록 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루시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은유다. 새로운 인식 능력을 제때 계발하지 못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불합리한 행동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우선은 미처 상자에 담지 못한 초코렛을 어딘가에 쑤셔 넣어 문제를 은폐하려 든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초콜릿은 끝없이 나온다. 초콜릿을 더 이상 먹거나 감출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얼어 붙는다. 우리가 정체 상태에 빠져 꼼짝도 못하는 사이에 초콜릿은 한층 빠른 속도 속도로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를 정지시키고 공장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운이 좋으면 얼마 후에 공장을 재건하고 새로운 경영진 하에서 다시 시작할 수도 있따. 처음 잠시 동안은 일이 잘 되어 간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는 다시금 속도를 올리고......

자연은 우리에게 닥친 난제를 풀 명쾌한 해법을 주었다. 뇌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통찰"이라는 놀라운 문제해결 능력을 말이다. 통찰을 발견한 것은, 루시가 문득 컨베이어 벨트 끝에다 상자를 대고 떨어지는 초코릿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이제 루시는 컨베이어 벨트가 아무리 빨라져도 손쉽게 그 속도를 따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

통 찰을 발견한 것 외에도, 우리는 붕괴의 패턴을 중단시킬 지식과 깃굴, 자원을 보유한 최초의 문명이기도 하다. 앞서 존재했던 그 어떤 문명도 환경에 대해 이 정도의 지배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인류 흥망성쇠의 행로를 변경할 수단을 이처럼 풍부하고 자유롭게 이용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장래를 낙관할 만한 이유도 과거 그 어떤 문명보다 많다.



-레베카 코스타, <지금, 경계선에서> 에필로그  p395~397 中-




부디 이것 하나만 기억하도록 하자.

우리는 침팬지처럼 숲 속의 나무 위에서 살다가, 맹수들의 땅이었던 초원으로 용감하게 내려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루시의 후예들임을...

하지만...

또한, 저자는 인류가 환경의 변화와 인류 진화의 속도 차이를 극복하고 통찰을 통한 항구적인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벽 다섯개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번째 장벽은 '불합리한 반대'이다.

대안은 없이 무조건 반대한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에어컨 사용이나 차량 이용을 제한시키는 강제적 법안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 레베카의 지적처럼 대다수 사람들이 불편함을 이유로 반대할 것이다.


두번째 장벽은 '책임의 개인 전가'이다.

고 대인들이 가뭄이 깊어져 사람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면 신에게 산 사람을 통째로 제물로 바치듯, 우리 사회도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희생자 색출에 혈안이 된다.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말 그대로 관련만 있을 뿐 직접적인 책임이나 권한은 없는-를 문책하거나 몇몇 개인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집단 착각에 빠진다.


세번째 장벽은 '거짓 상관관계'이다.

우 리는 흔히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한다. 자카리 쇼어는 자신의 저서 <생각의 함정>에서 극동 지방의 한 양치기 소년 보보의 이야기를 통해 이 점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우연히 집에 불이 나 돼지 우리에  옮겨 붙게 되었단다. 불이 꺼진 후, 마을의 보보라는 소년이 불에 타 죽은 돼지들을 만져보다가 맛을 보았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더란다. 하여, 그후 마을 사람들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기막힌 그 맛'을 보기 위해 멀쩡한 집에 불을 놓았다는 이야기다. 보보네 마을사람들은 돼지고기가 맛있어진 이유가 불에 익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집에 불이 났었다'라는 사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집에 불을 내면 돼지고기가 맛있어진다'로 거짓 상관관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근데 이런 기막힌 상관관계의 오류에 우리는 매일 매일 빠져서 살아간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우리는 곧잘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우를 범한다.  어느집 고등어 구이가 맛있다고 한번 입력이 되면 1년 내내 항상 맛있는 것으로 돌같이 굳게 믿는다. 고등어가 제철일 때에는 왠만한 집 고등어 구이는 다 맛있는 법이다. 크게는 선거에서도 거짓상관관계를 잘 만들어낸다. 지난번엔 '이' 당 후보를 뽑았더니 나라가 엉망이 되었으니 이번엔 '저'당 후보를 뽑아야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니 말이다. 특히, 여러 사람이 선택하면 거짓도 사실이 된다. 레베카 코스타는 위키피디아를 예로 들면서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다수의 합의에 의해 '사실'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한다.


네번째 장벽은 사일로식 사고이다. 사일로식 사고란 조직에 속한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소통하지 않고 정보를 독점하거나 회피함으로서 조직 전체에 피해를 입히는 사고 방식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사일로식 사고는 과거 초원에서 살아가던 인류의 조상들이 "영역"을 지켜냄으로써 생존 기회를 늘리려는 불합리한-혹은 아직 진화하지 못한- 원초적 본능의 일환이라고 한다.


다섯번째 장벽은 바로 '극단의 경제학'이다.

경 제적 논리가 모든 분야에 침입해 들어오면서 인류는 점점 더 고도의 이윤 추구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위에 나열된 장벽들 안에는 모두 인류 집단의 공통된 그릇된 믿음, 즉 '슈퍼밈'이 개입되어 있지만 특히 '극단적 경제학'이라는 장벽에서 인간은 더욱 더 강력한 슈퍼밈을 고수하고 있다. 저자는 그 한 예로 방글라데시의 빈민은행인 '그라민 은행'을 언급한다. 그라민 은행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극빈층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단연대보증이라는 대출형식으로 낮은 이자만을 받았지만 세계적인 금융 회사들이 쓰러져 넘어갈 때에도 무사(?)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극단적으로 이윤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바로 미국 월가의 지나친 탐욕과 노벨상 수상자 조차도 놓쳐버린 금융 상품과 시장의 복잡성때문이었다.


선택 가능한 대안, 결정할 일, 알아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식 능력에 지나친 부담을 주는 환경에서는 복잡성을 자초하지 않도록 좀더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이롭다. 생활을 간소화하기로 결심할 때 집중력과 의지를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도 생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큰 그림을 볼 시간,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를 더욱 주의 깊게 고려할 시간, 보다 신중한 의사결정을 위해 심사숙고할 시간, 한숨 돌리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레베카 코스타, <지금, 경계선에서> p383 中-



인간은 모든 복잡성과 다양성에 대응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인간은 인식의 한계에 부딪치게 되고 거짓된 인과관계와 믿음에 의해 잘못된 선택이나 선택의 포기에 내몰리게 된다.


끝으로, 저자는 장벽을 극복할 수 방법으로 두뇌의 비약적 진화라고 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강조한다. 통찰이란 좌뇌와 우뇌의 사이 어디쯤에 위치한 우리 뇌의 특별한 작용이라 하겠다. 그런데 통찰은 일반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우연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저자는 통찰 역시 '두뇌 훈련'을 통해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혹시, 지금 내가 '슈퍼밈'이라는 잘못된 믿음에 전도되어 '불합리한 반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우려를 잠시 잠깐 해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컴퓨터를 이용한 그 어떠한 두뇌훈련 프로그램보다 산책과 명상 그리고 독서와 운동 등이 훨씬 더 쉽게 인간을 통찰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의 준거로 무엇을 삼아야 하는지....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이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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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 - 중국인의 행동을 읽는 7가지 문화코드
유광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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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은 경외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굳이 역사책의 내용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성(姓)과 이름(名)의 조합에서부터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참 많이도 받았다. 그런 중국이었건만 냉전 시대 중국은 우리에게 잊혀진 대륙에 불과했다. 가까이 있지만 가볼 수 없는 나라, 역사적 문화적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라는 커다란 장벽에 가로막혀 있는 나라였다. 그런 중국이 고립무원에서 걸어나와 우리 곁으로 걸어오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중국와 중국인에 대해 논한 책들은 많지만 주로 <손자병법> <삼국지연의>로 대변되는 고대 문헌에 입각한 분석이나 개인적 체험에 의존한 흥미위주의 여행안내서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중국과 중국인을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모호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라는 책은 색다른 관점으로 중국인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 하겠다.


홍콩에서 고대 중국 문자학을 연구했고 대만과 대륙 곳곳에서 특파원으로 머물렀던 저자는 중국인의 정신세계와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바로, 무(武) 담(城) 모략(計) 축선(軸線) 회색(灰色) 현문(賢文) 황금몽(黃金夢)이 그것이다.

이들 키워드에 입각하여 중국인을 간략하게 정의하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예를 닦고, 안과 밖 남과 나 사이에 담을 쌓아 철저하게 구분하며, 명분과 실리를 조화시키되 둘이 충돌한다면 실리를 택하고, 내세움과 드러냄을 경멸하고 가림과 숨김을 처세술로 익혀 왔으며 현세에서의 물질적 풍요를 노골적으로 지향한다'라고 하겠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 대륙인들이 무를 숭상하는 것에는 과거 북방 유목민의 빈번한 공격과 군웅할거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피 땀흘려 조상 대대로 지켜온 땅과 곡식을 빼앗기는 건 순식간이었다. 영토가 너무 넓어 변방까지 황제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다보니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건 개인의 몫으로 남았다. 이와 같은 중국인의 피해의식과 자위의식이 만리장성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담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특히, 광둥성 카이핑(開平) 일대의 가옥 형식 중 하나인 토치카식 집(중국명:碉楼)과 푸젠성과 장시성 접경 지역에 자리한 집단 거주지인 토굴식 집(중국명: 土楼)은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베이징의 전통 가옥인 사합원(四合院) 역시 매우 폐쇄적인 형태로 중국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과 피해의식을 엿볼 수 있는 중국의 전통 가옥 형태라 하겠다.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 중국인이 의(義)와 예(禮)를 숭상하기보다는 임기응변식 권모술수가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걸 간파했음은 당연하다. 물론, 인의(仁義)를 핵심으로 한, 공자의 유교와 같은 사상이 없지 않았으나 일반 민중들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하는 생활 규범으로 뿌리내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중국 대륙으로부터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에서 유교적 사유방식과 행동양식이 굳건히 자리잡게 된다.


중국인은 '전통'보다는 '정통'을 중시한다.

옛것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착이 아니라 '정통' 즉 '정중앙'에 대한 집요함이랄까.

세 계의 중심이 되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은 왕조의 도읍을 정하고 왕궁을 지을 때에도 남북의 축을 중심으로 좌우 양옆으로 정방형 혹은 장방형을 취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중국인들이 현재 명품을 가장 많이 모방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는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정통을 중시하긴 하지만 정통보다 금전을 더 중시하는 중국인 특유의 사고방식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관우가 '재물의 신'으로 중국에서 널리 추앙받는다는 점 하나만 보더라고 중국인들이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지 잘 알 수 있다. 관우가 재물의 신으로 둔갑(?)하게 된 건, 그가 산시성 출신으로 과거 산시성에는 소금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이곳 사람들은 중국 각 지역으로 소금을 내다파는 장사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 유명한 진상(晉商)이 바로 이들 산시성 사람을 가리킨단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관우상 숭상을 통해 과거 진상(晉商)처럼 현세에서의 재물 획득을 기원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중국 하면 붉은색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붉은 색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일뿐이다.  오히려 회색이야말로 호불호와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구분하려 하지 않는 중국인의 애매모호한 특징을 대변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십분 공감한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내가 만나왔던 중국인들 역시 자신의 의견이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지 않고 얼버무리곤 했다. 이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마저도 어둠 속에 숨기고자했던 중국인의 사유 방식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인들에게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것은 겸손이나 겸양의 미덕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던 처세술이었다.


중국의 고문자를 연구했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한자성어와 중국어 표현을 통해 중국인들의 의식구조를 해석한 부분은 매우 참신하면서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저자가 최고로 꼽는 현문은 유명한 사자성어인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중 국의 처세훈은 매우 깊고 넓다.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성어의 세계를 닮았다. 중국이라는 바다가 다른 바다보다 훨씬 더 거칠었을까. 중국이라는 바다는 늘 바람이 불고 사나운 비가 몰아닥쳤다는 얘기일까. 감히 그랬을 수도 있다고 추정할 만큼, 중국인이 건너야 했던 인생의 바다는 다른 어느 곳에 비해 무섭고 어두웠으며 거칠어싿. 중국의 처세훈은 비바람이 늘 몰아치는 암흑의 바다를 건널 때 꼭 필요한 등대의 빛이었따. 좋은 처세의 교훈을 얻으면 비바람이 잦아들고 성난 물결이 숨을 죽이는 인생의 항로로 배를 몰아 갈 수 있었다.

필자에게 5만 개가 넘는중국 성어 중 가장 인상적인 처세훈을 꼽으라면 단연 변방 요새의 늙은이를 일컫는 '새옹지마'를 들 것이다.

(......)

새 옹은 중국인들이 가진 통찰의 대역이다. 전운이 몰려와 곧 피비린내가 번질 수 있는 변방에서 말을 키우며 살았던 늙은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변방의 높은 요새 위를 뒤덮는 구름은 사람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통제하기 어렵다. 구름이 상징하는 전쟁 또한 사람이 피하려 해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험악한 변방 요새는 우리가 태어나서 맞닥뜨리는 천변만화의 인생 무대일 수 있다. 변화가 다시 변화를 부르는,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위협적인 환경에 몸을 드러내야 하는 그런 상황 말이다. 편안한 일상에서도 불행은 늘 예고 없이 찾아든다.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키우며 일상을 살던 늙은이의 변방 요새는 어쩌면 우리가 머무는 삶의 무대라는 얘기다.

(......)

추정컨데, 늙은이는 인생의 거친 바다를 노련하게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즉 굴곡이 심한 변화무쌍한 인생의 길을 요령있게 넘어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서는 변화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아가면서 순간적으로 닥치는 감정의 기복을 이겨내는 인물이다.


-유광종, <중국은 어떻게 모략의 나라가 되었나> p220~226 중 발췌-



저 산위의 소나무처럼 굳게 뻗은 우직과 정직을 훌륭한 인간됨의 본보기로 배워온 우리들에게 중국인의 처세술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가?

정 의롭지 못하며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을 어리석다고 할 순 없지 않을까. 어찌되었던 전쟁이 빈번하던 변방의 요새에서 살아남은 자는 강인하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힘없는 늙은이였듯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쪽은 어쩌면 우리가 아닌 그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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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치 아픈 인간 내편으로 만들기
앨버트 번스타인 지음, 김현수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다소 자극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으로, '나를 미치게 만드는 11가지 인간형 대해부'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성격 유형을 크게 반사회적 인간형, 연극적 인간형, 나르시스적 인간형, 강박적 인간형, 편집증적 인간형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의 주된 성격적 특징을 포착하여 막무가내형 3류배우형 몽상가형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전문 번역가의 문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한국어 문장이 다소 부자연스럽다는 점인데, 이는 아무래도 '당신, 그(녀)' 등과 같은 인칭을 그대로 직역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 언급된 인물군(群)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같이 '환자'로 여겨져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정도가 심하지 않아 학교나 회사 혹은 가정에서  정상인으로 여겨지고 대우받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주위를 한번 둘러보면 이와 같은 문제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한 두명씩은 발견하게 된다.  저자의 집필 의도는 바로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어쩔 수없이 대인관계를 맺게 되었을때, 어떻게 하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느냐에 있는 것 같다. 하여, 각 성격 유형별 특징들과  대처 방법 그리고 만약 자기 자신에게 이와 같은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취하면 좋은 행동 수칙 등을 정리해 보았다.


 

● 반사회적 인간형

'흥분'에 중독된 사람들로 사회규범에 무관심하고 섹스나 마약 등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며 지루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선 상당히 매력적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지속적이고 진지한 인간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한편, 반사회적 성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욕구충족을 지연시키는 훈련을 하고 지루함을  견디는 법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이 정한 규칙에 맞추어 사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① 막무가내형: 막무가내형은 약물에 쉽게 중독되며 가상적 세계에 잘 매혹된다. 이들은 돈이나 사랑보다는 흥분과 쾌감 자체를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하여 때론 놀라운 발견이나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이들은 '아니오'라는 말에 결코 기죽지 않으며 걱정하는 법이 없다.


 ② 세일즈맨형: 이들은 판매를 목적으로 궤변을 늘어놓거나 호언장담한다는 점에서 세일즈맨과 흡사하다. 자연스러움과 친절함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 그리고는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되면 표정을 바꾸고 돌아선다. 사실, 달콤한 말을 건내고 친절을 베풀며 집요하게 설득하는 것은 성공한 세일즈맨이 갖추고 있는 행동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판매를 위해서는 '거짓말'도 전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들과 마주할 때에는 후회할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최대한 결정의 시간을 지연시키고 이성적 판단력을 가동시키야 한다. 그리고 애매모호하거나 혼란스러운 경우에는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해도록 한다. 

 

 ③ 싸움꾼형: 다혈질이 이들은 격분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또한 권력지향적이다. 싸움꾼형은 매우 동물적(파충류의 뇌인 변연계에 따라 행동하다)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의 힘으로 상황을 좌우하려고 한다. 싸움꾼의 전략은 매우 조잡하지만 또한 매우 효과적이다.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당하는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비뚤어진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와 같은 유형의 인간에게 쉽게 휘둘린다.



● 연극적 인간형: 연극적 인간형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주목을 끌고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며, 이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려한다. 물론,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말재주가 뛰어나고 노래와 춤 혹은 연기에도 능숙한 편이다. 인격 장애는 주로 여성에게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연극적 인간형에는 남성도 상당수인데, 열광적인 스포츠맨이나 농담 잘하는 이야기꾼 및  극도로 동기부여된 사업가 등을 들 수 있다.


④ 3류배우형: 3류배우형은 과장된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려고 한다. 특별한 상황을 조장하거나 과장하며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다. 이들의 에너지 역시 고갈되는 측면이 있어서 상황이 복잡해지거나 혼란스러워지면 극도의 피로와 권태감을 보인다. 이들의 말보다는 행동에 주목하되, 이들이 원하는대로 순진한 '청중'이 되어주어서는 안된다.


⑤ 수동-공격형: 수동-공격형은 순종적이고 검소하며 용감하고 순수해서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문제는 외부적이라기보다는 내향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은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베푼만큼 되돌려 받는다'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만약, 헌신적으로 그 누군가를 보살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없다면 이들은 폭발하고 만다. 이들에게 화를 내는 일은 매우 위험한다. 예측불가한 상태나 인물로부터 오는 위험처럼 위협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자기존중감이 결여되어 있다.


● 나르시스적 인간형:나르시스적 인간형은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자기 자랑'를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아이큐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를 서슴없이 말하며, 유명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을 자주 언급하면서 자신을 그들과 동급으로 연관시키기도 한다. 모임에서는 듣고 질문하기보다는 주로 말하는 편이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자 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이와같은 나르시스적 성향을 갖고 있다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최대한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봉사활동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함께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이 좋다. 


⑥ 자기도취형: 이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도취와 자기존중감을 구분하지 못한다. 타인과 소통이나 공감하지 못하며 비판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타인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른다. 자기도취형은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똑같이 갖고 있다. 이들은 영리하고 창조적이지만 쉽게 실패하는 까닭은 한마디로 말해자면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언제나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한다. 자기도취형 인간을 대할 때에는 비난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되, 비판을 해야 할 경우에는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좋다. 이들은 엄청난 양의 칭찬과 돌봄 그리고 애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적당한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⑦ 슈퍼스타형: 슈퍼스타형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늘 최고의 것만을 소유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자신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한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할 수 있는 돈과 권력을 갖고 있으므로 더더욱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개의치 않아하는데 이는 이들의 높은 지위와 눈부신 성공때문에 사람들이 이들의 이기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용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 주변에 이와같은 슈퍼스타형이 있다면 그들에게 당신의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라. 그리고 비평보다는 칭찬과 아부를 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 강박적 인간형: 강박적 인간형은 열심히 일하고 양심적이며 언제나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지만 이와 같은 이들의 특징은 종종 주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이들은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다른 곳에 집중한. 예를 들면, 지나치게 양심적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올바른 장소에 묶어 두고 스스로를 혹사시킴으로써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자신의 충동과 싸운다. 강박적 인간형은 처벌과 정의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목표에 이르렀더라도 끊임없이 업무에 몰두하도록 스스로를 다그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 스스로를 벌한다. 완벽을 추구하며 옮고 그름, 흑과 백, 선과 악 등 이분법적 논리에 빠져 있으며 완고하다.

이와 같은강박적 성향에서 벗어나려면 평가하려고 들지 말아야 한다. 감정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명확한 결과에 집중하되 그에 따르는 과정은 무시하고 실수를 공공연히 인정하도록 한다.


⑧ 완벽주의형: 이들은 외적으로 매우 완고하고 엄숙해 보인다. 특히 이들은 일의 과정과 결과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종종 과정을 결과보다 더 중시하는 우를 범한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원칙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려 한다. 간혹, 이와 같은 완벽주의형 상사를 둔 경우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확률이 매우 높은, 무모한 행동이다. 그들은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더 높고 많은 목표를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⑨ 청교도형: 청교도형은 도덕적으로 완벽주의자들이다. 검열과 처벌, 무자비함으로 진리와 정의 및 사랑을 지키려고 한다. 이들은 엄격한 종교적 교리나 다소 독단적인 도덕적 규칙을 들이대면서 세상 사람들이 자신처럼 공명정대하고 순수하기를 바라며 심한 경우 협박하기까지 한다. '불신지옥'이라는 푯말을 들고 다니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 편집증적 인간형: 편집증은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거나 무시되는 것들을 이들은 넘어가지 못하고 꼬치꼬치 캐묻고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편집증적 인간형의 이와 같은 이기적인 욕구가 때론 인류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는데 이들은 뛰어난 감지력으로 예술, 철학, 종교, 과학 등 많은 분야에서 종종 놀라운 발견이나 발명을 해내기도 한다.   

만약, 편집증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의 행동과 자신은 무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불확실하고 모호한 것들이 존재하며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는 점 또한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부정적인 감정을 무시하거나 용서하는 법을 배우도록 한다.


⑩ 몽상가형: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믿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는 이와 같은 사람들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활약(?)하기도 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떠벌리거나 예언 예측 등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 역시 몽사가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⑪ 질투형: 편집증적 인간 유형의 특징 중, 종교적 맹신 다음으로 위험한 것이 바로 질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의 불확실함을 견뎌내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해서 때론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자기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애정 관계에 있는 사람이 질투형 기질을 갖고 있다면 이들의 비상식적인 요구에 응해서는 안된다. 예를들면,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는 등등...

이와 같은 요구에 직면하면 화 내거나 이해시키려하지 말고, 되물어야 한다. 그럼, 당신은 신뢰 믿음 등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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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행동의 심리학 - 말보다 정직한 7가지 몸의 단서
조 내버로 & 마빈 칼린스 지음, 박정길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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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이민계로 25년간 FBI에서 특별 수사관으로 근무한 조 내버로가 마빈 칼린스와 공저한 <FBI 행동의 심리학>은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의미심장한 정보들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일전에 읽은 시부야 쇼조의 <상대의 심리를 읽는 기술>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실제 사례와 사진들을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인간의 무의식적 표정과 미세한 행동들에는 생존을 위해 인류 조상들이 취해왔던 '멈춤->도망->투쟁'이라는 3단계 생존 공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가정 교육과 사회 문화적 원인등으로 비록 인류의 말과 얼굴 표정은 진실을 가장하기가 쉽도록 진화해왔지만 손, 발, 다리 등은 의외로 진실을 감추지 못하므로 상대방의 '진심'을 읽고 싶다면 말이나 얼굴 표정보다는 눈에 잘 안 띄는 신체부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단다. 상대방의 무의식적 행동에 가려 있는 '진심'을 읽을 수만 있다면 사회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크나큰 도움이 되리라.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영어를 배웠던 저자는 영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통해 분위기를 파악하고 의도를 알아내야만 했던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들이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미세한 표정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갖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소리(말)가 아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우선 호기심과 세심한 관찰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지하철에서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과 다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대화 도중 상대방이 상체를 앞으로 굽히는지 아니면 팔짱을 끼는지, 발이 출입문쪽으로 향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등을 체크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저자와 같은 비언어적 케뮤니케이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긴장하거나 거짓말을 할때 사람들은 의외로 손동작이나 몸놀림이 줄어들거나 작아지면서 상대방과 눈을 더 자주 마주치고 응시한다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흔히, 남을 속이려할때에는 손동작이나 모션이 과장되며 상대방의 시선을 피한다는 점이 상식처럼 알려져 왔지 않았던가.


이처럼 의도적으로 자신의 거짓말을 감추고 또 긴장하고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기 위한 행동들이 오히려 진실을 말해주고 있으니 '아이러니'라 아닐 할 수 없다. 특히, 학대받는 아동들의 경우에는 가해자 앞에서 유난히 손동작이나 팔동작이 줄어들고 심지어 경직되어 보인다는 점은 신선하다 못해 기억에 새겨둘 만한 정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뒷짐짓는 자세가 '왕의 자세'로 불리며 '가까이 오지 말라 혹은 나를 건드리지 말라'등의 경고와 권위 및 자신감의 발로이고, 양손의 손가락들을 마주쳐 그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첨탑처럼 보이도록 하거나 혹은 이의 변형된 형태로 엄지와 검지만을 맞붙인 채 나머지 손가락들을 맞잡는 태도는 강한 자신감과 확신을 보여주는 제스처라고 한다.


한편, 앉은 자세에서 두 사람의 발과 다리가 서로 마주 향하고 있는지 혹은 옆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가에 따라 대화의 몰두여부와 편안함을 느끼는지 아니면 불편함을 느끼고 어서 빨리 벗어나려고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긴 장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남여 모두 목(천돌)이나 목 부위를 어루만지거나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흔히 보이는데, 이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려는 '진정효과'때문이다. 양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거나 다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는 것 역시 어린 시절 엄마가 쓰다듬어 주었을 때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을 스스로에게 전해주어 기분을 안정시키려는 무의식적인 의도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해석된다.


한편, 한쪽 발을 옆으로 세우거나 비스듬이 두거나  X자로 교차시키는 자세나 고개를 옆으로 기우둥 하는 듯한 자세는 상대방을 신뢰하고 있거나 편안함을 느낄 때 쉽게 취하는 자세지만, 범죄자들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여유로움을 가장하기 위해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는 지적은 25년 넘게 범죄자를 심문한 경험을 통해 우러나온 저자의 '혜안'이 아닐 수 없다.  


동공이 축소되거나 실눈을 뜨고 팔짱을 끼는 것등은 거부나 불쾌한 기분을 나타내는 반면, 반대로 동공이 확대되거나 팔을 벌리고 높이 쳐드는 행동은 환영의 의미로 읽어도 무방하다.


권력자는 자신의 힘이 미치는 공간에서 시선 처리가 비교적 자유롭다고 한다. 즉, 상대방의 시선을 무시나 뚫어지게 응시 하는 등 자유자재로 시선을 처리하여 자신의 힘이 투영되는 곳이자 대상이라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확인시키는 반면, 약자는 흔히 시선을 아래로 두어 자신감 없음 혹은 복종의 자세를 취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거짓말은 두번 강조하지 못한다는 점도 명심하자.


이 밖에도자신감이 부족하면 어깨가 처지곤 하는데 이처럼 어깨가 처져 보이는 행동으로는 엄지손가락을 바지 주머니에 밖으로 보이도록 거는 행동을 들 수 있다. 반대로 엄지 이외의 네개의 손가락은 주머니에 넣은 채 엄지만을 밖으로 보이도록 취하는 자세는 반대로 자신감의 포출이다. 그리고 양 손바닥을 보이며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은 주로 아는 것이 없거나 의구심을 나타낼때 취하는 행동이지만 의외로 진실이나 자기 확신이 부족하여 신뢰받기를 원하는 경우에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행동이므로 가급적 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히, 손바닥을 보이는 행동은 경박스러워 보인다.


한편, 연설이나 강의 도중 양손을 위쪽으로 들어 올리는 건 강한 자기 확신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손바닥을 아래쪽으로 향하거나 양손의 두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살짝 집는 행동은 힘과 확신에 차 있는 자세라 하겠다.


눈을 살짝 감거나 눈 주위를 손으로 비비는 건, 거부나 불편하다는 의미이므로 말하는 도중에 상대방이 이러한 행동을 취한다면 예의주시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저자의 주장처럼 변연계(일명 파충류의 뇌)의 반응이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따른 반응을 거짓말에 의한 반응으로 오해하여 무고한 죄를 뒤집어 쓴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참고 사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100% 신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지적하고 넘어갈야 할 점은 미국 혹은 서구적 관점에서 관찰되어지고 쓰였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인류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나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양 그중에서도 한국인과 한국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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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심리를 읽는 기술 - 표정과 행동으로 상대의 진심을 훔쳐보는 유쾌한 심리 읽기
시부야 쇼조 지음, 은영미 옮김 / 아라크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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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다.

여성잡지나 주말 일간지 등에 실릴 법한 내용들이다. 누구나 관심을 보이고 흥미를 갖지만 뒤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이는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 어째서 저런 행동을 취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한번쯤 갖어본 적이 있다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미세한 표정변화나 손 혹은 발동작 등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 말(言)보다 휠씬 더 진실이 가깝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대화 도중, 입이나 코 등을 만지작거리는 행동은 거짓말이 탄로날까 두려운 나머지 일어나는 무의식적 행동이라든지, 책상 아래의 발동작으로 상대방의 심리를 알 수 있다는 점등은 충분히 공감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남자들이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며 받아들이는 의미인 반면 단정하게 무릎을 꼭 붙인 자세는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고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자의 경우에는 가정교육의 영향으로 대부분 다리 자세를 단정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위와 같이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한편,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경우는 설득하려는 의지가 강함을 나타내며, 팔짱을 끼거나 두 다리를 쭉 뻗고 몸을 뒤로 빼는 자세는 거부나 지루할때 자주 취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맞추는 경우에는 자신이 없거나 상대방을 지배하고 설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특히,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대화를 하는 경우에는 차분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강한 시선을 받으면 차분하게 생각을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의 강한 시선 하에서는 후회할 결정을 내리곤 한다. 그러므로 시선을 맞추는 건 호의적인 표현이지만 상대방이 좋지 않은 의도를 갖고 있거나 강하게 설득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에는 주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저자는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반복적으로 만진다는 건 심리적 불안이나 동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화려한 복장이나 명품을 선호하는 것은 현시욕이 강한 편이지만 오히려 자신감이 부족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대인 불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양복이나 제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이기 보다는 제복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 속에 스스로를 감추려는 의도가 강한 사람들이며, 여자의 경우 화장이 진할수록 대범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잠 자는 모습으로도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데, 얼굴과 배를 감싸고 둥글게 말고(태아의 침상) 자면 의존심이 강하고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열망의 표출이며, 옆을 향해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평소 자주 쓰는 팔을 밑으로 가게 하는 자세(반태아의 침상)는 안정된 성격에 환경 적응 능력이 뛰어나고, 엎드린 침상의 경우에는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편인 반면, 발목이나 손목을 교차시킨 자세(죄수의 침상)는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고민이나 불안에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한고 한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단골집으로 당신을 데리고 간다면 '업무 관계를 떠나 허심탄회하게 친구가 되어보자'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식사나 술자리 초대를 받게되면 장소는 상대방이 선택하도록 하며 가급적이면 단골집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다. 단골집은 일종의 개인적 공간으로 스테레스를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거나 술한잔 하는 '아지트'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특별히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단골집으로 데려가거나 알려줘서 개인적 공간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현명하다. 누군가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람을 당신이 좋아하고 즐겨 찾는 단골 장소에서 마주친다고 생각해 보라. 평소 호감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를 계기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겠지만 경쟁자라면 서로 더욱 견제하며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평소 '수다' 자체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 말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행동이다.

상 대방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말고 마이너스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의식'이 너무 강한 나머지 '침묵'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주고 받기'식의 대화라기보다는 혼자서 일방적으로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려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든다. 사람의 감정은 전염성이 강해서 상대방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 신뢰하고 공감대가 많은 관계는 대화 도중 침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으며 무의미한 말들을 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때문에 오히려 상호 신뢰감이 더욱 강해진다. 

 

나 역시 불필요하게 쓸데없는 말을 상사 앞에서 자주 하는 편인데 정말 앞으로 주의해야겠다. 침묵을 하여 상대방이 먼저 말을 하도록 하자.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누구나 먼저 뜸을 들이는 법이다. 짧은 침묵을 견디지 못해 말을 먼저 해버린다면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고 준비하던 상대방을 영원히 침묵하게 만드는 '실착'임을 명심하자. 말을 하다가 상대방이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 없다. 이는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준비작업이므로 상대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면 된다. 이때 침묵의 어색함을 깨려는 의도로 먼저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상대방의 말을 되풀이하면서 호응하고 침묵을 하여 상대방이 생각을 정리하고 먼저 입을 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선을 마주쳐 공감을 표해서 호감을 얻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침묵 속에서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미 상대방의 신뢰와 호감을 얻었다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물론, 전략적으로 어리석거나 바보스럽게 보이려는 의도에서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법이다.

 

 

사소한 말실수나 망각(건망증)에도 무의식적 의도와 소망 등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름을 착각하여 부르는 경우에는 사실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며,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안 좋은 느낌이나 감정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스스로 인식하는 감정이지만 콤플렉스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이다.

이런 콤플렉스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는 칼 융의 '연상 검사법'이 대표적이다.  연상 검사법은 자극어를 던진 후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는 것으로 콤플렉스 여부를 판단한다.

예를 들면, 담배라는 자극어에 아버지를 떠올렸으나 잠깐 뜸을 들인 후 바로 라이터라고 답한다면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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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책속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만 발췌해서 요약한 것이다.

1999년도 즈음에 번역 출판된 책으로 추정되는데 심리학 이론과 심리 실험들을 근거로 하여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다. 다만, 지나친 맹신은 금물이고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적용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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