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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주제 사라마구의 <눈 뜬 자들의 도시(2006년)>은 흔히 <눈 먼 자들의 도시(1997년)> 후속작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장님이 되었다가 시력을 회복한, 소위 '백색 질병'이 도시를 강타한지 4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자, 눈이 멀었을 때의 참상들을 집단적 침묵 속에 가라앉혔다.
침묵과 맞바꾼 평화가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어느날.
수도에서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한다.
'유효표 숫자는 25%에도 미치지 못했다. 우익정당 13%로 1위를 차지했으며, 중도정당 9%, 좌익정당이 2.5%였다. 무효표나 기권은 거의 없었다. 나머지 표, 그러니까 전체 표의 70%이상이 모두 백지였다!'
권력의 총체인 '정부'는 혼란에 빠졌고, 투표 당일의 폭풍우 등 선거 결과를 날씨 탓으로 재빠르게 돌린 후, 일주일 뒤 다시 투표를 실시했다.
두번째 투표 결과를 총리가 발표한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오늘 우리나라 수도에서 실시된 선거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익정당 8%, 중도정당 8%, 좌익정당 1%, 기권없음, 무효표 없음, 백지투표 83%. 총리는 말을 끊고 옆에 있던 잔으로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오늘의 투표가 지난 일요일에 드러난 경향의 확인인 동시에 악화임을 알기 때문에, 이 곤혹스러운 결과의 모든 원인을 진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대통령 각하와 논의한 끝에 현 정부의 정통성에 문제가 제기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방금 실시된 선거는 지방선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오히려 자신의 절박하고 긴급한 의무가 지난 칠 일간의 비정상적 사태를 심도 있게 조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이 사태에 경악한 증인인 동시에 대담한 참여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되어 몹시 안타깝지만, 우리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생활의 민주적이고 정상적인 상태에 잔혹한 타격을 준 이 백지투표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닙니다, 이 백지투표는 이 도시의 백 명의 선거인 당 여든세 명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들은 그 비애국적인 손으로 백지를 투표함에 넣었습니다. 총리는 다시 물을 마셨다.
-주제 사라마구, <눈 뜬 자들의 도시> p43-
도시의 집단적(?)인 백지 투표에 두려움을 느낀 정부는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계엄령이 내려진지 얼마 안 되어, 도심 한곳에서 원인 모를(?)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다.
정부는 도시를 지탱하던 치안, 보건 등등의 서비스가 사라져 시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지면, 백지 투표 사태를 주도한 인물이나 실체가 들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백지 투표를 불러온 원인이 밝혀지지 않자, 정부는 마치 적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포에 질려 총알을 난사하는 군인들처럼 수도를 다른 도시로 옮기고 '탈출'을 시도한다.
새벽에 도시를 몰래 빠져나가려는 정부측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대로변 건물과 빌딩 곳곳에서 하나둘씩 전등이 커진다. 마치 성탄 트리가 밝혀지듯 온 도시가 불빛으로 반짝거렸다.
정부의 탈출행렬을 만류하고 진상을 낱낱히 고백할 것으로 생각했던 정부 관계자들은 아연실색하고 만다. 그들은 자신들이 떠난 후, 한때는 정부의 수도였던 도시를 폐쇄시키고 수도 시민들의 탈출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과 총리는 4년전에 일어났던 '백지 실명'사태와 이번 '백지 투표' 사태를 연관시키고 관련자 수색에 나선다.
우리는 참으로 별난 나라에 살고 있구료, 이 행성의 다른 곳에서는 일어난 적도 없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니 말이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우리나라에 처음은 아닙니다, 굳이 상기시켜 들릴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각하, 내 말이 바로 그거요, 총리. 하지만 두 사건 사이에 연결 고리가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전에는 백 색 실명 전염병이었고 이번에는 백지투표라는 전염병이니까. 우리는 첫 번째 전염병의 이유도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것도 마찬가지잖소. 밝혀낼 것입니다, 각하, 밝혀내겠습니다. 첫 번째 경우에도 벽에 부딪혔는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각하, 믿음이 근본입니다. 뭐에, 누구한테 믿음을 가지라는 거요. 민주적 제도에 믿음을 가져야지요.
(......)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앉아 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직 우리 탄약이 바닥난 게 아닙니다, 우리 화살통에는 아직 화살이 있습니다. 총리 과녁을 제대로 보고 있기를 바랄 뿐이오. 적만 눈에 보이면 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가 아니오, 우리는 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 않소, 누군지도 모르지 않소. 나타날 겁니다, 각하,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영원히 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주제 사라마구, <눈 뜬 자들의 도시> p112~113-
쉼표와 마침표로만 이어지는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일말의 숨돌리기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긴장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끈을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바짝 긴장한 채, 간신히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어찔한 현기증이 찾아온다.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어디선가 많이 일어난 듯한...
이런 걸, '데자뷰'라고 한다지...
주제 사라마구는 언뜻 말도 안되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는 오싹할 정도로 현실 정부를 재현해 낸다.
이는 아마도 평생동안 반정부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던 그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는 불법 공산주의 정당에 몸담고 반정부투쟁을 실천에 옮긴 바 있으며, 열렬한 공산주의 지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전작,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대중연대를 통한 희망을 보았던 사람들은 그 후속작인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 절망을 마주하게 된다..
백색 질병이 난무하던 시절, 눈을 뜬 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정부는 경정, 겸감, 경사로 구성된 3인조 특별공작팀을 수도로 보낸다. 그들의 임무는 의사의 아내와 함께 살아남았던 6인을 특별 감시하고 심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작팀의 감시와 심문 속에서도 특별한 혐의점은 발견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혐의유무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상태에 이르면, 이젠 혐의점이 없어도 혐의가 있는 것이며, 죄란 만들어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희생양이므로...
의사가 끼어들려 하자 부인이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좋아요, 그럼 이 얘기를 해주세요, 이건 비밀이 아닐 테니까, 사년 전에 내가 눈 이 멀었거나 멀지 않았다는 것에 경찰이 왜 관심을 가지는 거죠. 만일 부인이 다른 모든 사람처럼 눈이 멀었다면, 나 자신처럼 눈이 멀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와 있지 않을 거요, 눈이 멀지 않은 게 범죄인가요, 여자가 물었다. 아니, 눈이 멀지 않은 건 예전에도 범죄가 아니었고 지금도 절대 범죄일 수 없소, 물론, 부인이 그런 말을 했으니까 이야기하지만,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는 있는 거지요, 범죄요, 살인, 여자는 조언을 구하듯이 남편을 흘끗 보더니 다시 얼른 경정을 보며 말했다, 그래요, 맞아요, 나는 한 남자를 죽였어요, 여자는 더 말을 하지 않고, 경정을 똑바로 바라보며 기다렸다. 경정은 수첩에 뭘 쓰는 척했지만, 그저 시간을 벌려는 행동일 뿐이었다.
-주제 사라마구, <눈 뜬 자들의 도시> p302-
경정은 양심을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신의 임무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의사의 아내는 비록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상대는 눈 먼 여자들을 강제 추행한, 죽어 마땅한 '짐승'이었다는 걸 잘 알기에 그녀의 살인행위는 무죄이며 오히려 칭송받아야 한다는 걸, 그의 양심이 속삭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달받은 작전의 의미와 불러올 결과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사의 아내를 보호하고 지켜주려 한다. 그런 행동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수도 있다는 걸 잘 알면서도...
여기서 독자들은 언뜻 스쳐지나가는 '희망의 빛'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의사의 아내는 경정을 죽인 하얀 점이 박힌 파란 타이를 맨 남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두 발은 그녀의 몸에 박혔고, 마지막 한발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부터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하얀 눈물을 핥아주던 개가 맞았다.
한 눈 먼 남자가 물었다, 무슨 소리 들었나, 총소리가 세 발 들렸는데, 다른 눈먼 남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개 우는 소리도 들리던데, 지금은 그쳤어, 세 번째 총소리 때문일 거야. 잘 됐군,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
-주제 사라마구, <눈 뜬 자들의 도시> p428-
'짖자, 개가 말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작품은 '나는 개 짖는 소리가 싫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작가는 잔인하게도 희망의 빛을 꺼뜨린 것도 모자라, 마지막 불씨까지 없애버린다. 깨끗이...
그나마 '짖자'던, 개마저 죽여버린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눈 뜬 자들의 도시>의 사람들은 의사의 아내가 죽고 짖는 개가 죽어서 눈이 먼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은 이미 총성이 울리기 전에 멀어 있었다. 주제 사라마구는 그들이(인간이) '또 다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의사의 안내와 짖는 개가 죽은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만약, 사람들이 다시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의사의 아내와 짖는 개는 죽지 않았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일찍이 중국의 현대 문학가 중 하나인 라오셔(老舍)의 단편 중 <개(狗)>라는 작품이 있다.
개의 입장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야박한 대우를 기록한 작품으로, 이기적인 세상인심을 풍자한 작품이다.
'개'란 일찍부터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동물이지만, 또한 가장 험한 욕이 되기도 한다.
사람에게 '개'같다란 표현은 다름 아닌 욕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개보다도 못한....'이란 말은 더욱 심한 언사라 하겠다.
이제, 주제 사라마구가 두 편의 작품 속에 개를 등장시킨 이유가 분명해 보인다.
그는 개의 죽음을 단순히 '개죽음'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개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세상을 향해 '짖어 대는 개'가 더 이상 없는 세상에서, '개죽음'은 더욱 더 은밀하고 빈번하게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끝으로, 작가는 자신이 그토록 경멸해마지 않던 정부에 의한 통제와 억압이 공산주의사회에서 일어난 것을 직접 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왜 마지막 순간까지 공산주의자로 남았을까?
젊은 시절의 이상을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내고자했던 개인적 열정의 산물인지....
아니면, 바뀐 세상과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년(往年)의 열정'에만 매달려 노년을 보내는 늙은자의 고집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