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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호빗>은 1937년에 출간된 톨킨의 첫작품으로 세계 3대 환상문학 중 하나인 <반지의 제왕>의 원조격인
작품이다. 나오자마자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2000년대 초반 해리포터 시리즈의 후폭풍으로 다시 관심을 받기 시작했지만 <반지의
제왕>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 역시 2002년 봄 절친으로부터 <반지의 제왕>을 빌려
읽기 시작했으나 1권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포기해야만 했다. 북유럽 신화와 이를 바탕으로 하여 톨킨이 새롭게 창조한 소위 '중간계'에
대한 낯섦과 몰이해가 주된 원인이었다. 최근 도서관에서 빌린 <반지의 제왕> 시리지도 1권은 손때도 많이 묻고 너덜거리는 반면, 2권
상태는 한결 낫고 3권부터는 아주 양호하다는 점만 봐도 읽기를 도중에 포기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 막 환상문학에 첫발을 내딪었을 뿐이지만, 내가 보기에 20세기 초중반에 쓰여진 환상문학이 21세기에 접어들어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과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의 스토리와 캐릭터 대부분이 서양의 오래된
신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영화 기술의 발달로 예전엔 감히(?) 영상화할 수 없었던 장면들을 시각화할 수 있게 되면서 헐리우드발 블록버스가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톨킨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남아공에서 태어나
4살때 영국으로 이주한 톨킨은 고대 영문학(문헌정보학)을 전공했다. 그는 옥스포드대학의 비공식 문학 동아리라 할 수 있는 '잉클링스'의 멤버로
500년 역사를 자랑한다는 옥스포드의 "이글 엔 차일드(The Eagle and The Child)" 라는 술집 안의 쪽방인 일명
'토끼굴'에서 C.S 캐롤('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등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비롯해서 <나니아 연대기>등 걸작들이 젊은 청춘들의 쓸데없는(?) 잡담에서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호빗>은 호빗 종족인 골목쟁이네 빌보의 모험담을 그린 작품이다. '호빗'은 homo(인간)과 rabbit(토끼)를 결합하여
톨킨이 만들어낸 종족으로 인간보다 작으며 주로 굴속에서 산다. 먹는 걸 좋아하고 낙천적이며 변화를 싫어한다.
골목쟁이네 빌보가 5월의 어느날 자신의 둥근 초록대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마법사 간달프를 만나는 첫장면은 마치 어린시절 즐겨 봤던
TV만화영화 '숲속의 요정'에 나오는 스머프 마을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을 격려하고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간달프 역시 스머프 마을의
최고 지도자 파파스머프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었다. 역자의 표현처럼 <호빗>은 어른들을 아련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호빗>은 톨킨의 신화적 세계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따뜻한 일상의 세계다. 여기에는 숲속요정들의 노래와 웃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저녁밥을 짓는 장작불이 타오르며, 화롯불 위에서는 찻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이처럼 생생하게 전달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계는 어른들에게도 아련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처럼 감동을 주고,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호빗> 역자 후기 중-
산아래의 왕 스라인의 아들인 참나무방패 소린은 난쟁이족이다. 소린은 다른 12명의 난쟁이들과 함께 일찍이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종족의
보물(특히' 아르켄스톤')을 찾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마법사 간달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호빗인 골목쟁이네 빌보를
영입하게 된다. 사실, 빌보는 영웅심도 모험심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에 불과하다. 무릇, 인류의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영웅의 출현과 등장은
이처럼 미비하고 보잘것 없는 법이다.
영웅론은 '평범한 인물이 모험을 통해 위대해진다'는 것을 기본 줄거리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영웅'이란 나쁜 종족이나 대상을 죽인 후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인물을 말한다. 그리고 모험의 성공으로 얻게 된 결과(주로 '보물')에 대해선 일말의 사심을 갖어서도 안된다. 빌보
역시 얼떨결에 따라나선 모험을 통해 난쟁이들을 두번이나 구해주고 스마우그를 처치하는데 일조를 하지만 처음에 약속했던 1/14인 자신의 몫조차도
용을 직접 쏘아 죽인 호수마을 인간 바르드에게 양보한다. 한편, 마지막까지 보물에 대한 집착을 보였던 소린은 소원대로 용을 죽이고 과거
용에게 빼앗겼던 종족의 보물을 되찾지만 결국 죽고 만다. 맨 처음 모험을 계획하고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일명 '다섯군대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승리로 이끈 난쟁이 종족의 리더 소린에 대한 톨킨의 관점은 분명하다.
난쟁이들에 대해 최대한 너그럽게 평가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빌보의 공헌에 대해 정말 후하게 대가를 지불할 의도가
있었고, 자기들 대신 위험한 일을 하게 하려고 그를 데려 온 것이며, 그 불쌍한 조그만 친구가 스스로 원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한다면 그들이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만약 빌보가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면 그들은 그를 구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모험을 시작할 무렵 그들이 빌보에게
고마워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을 때, 트롤에게 잡힌 그를 구해주었듯이 말이다. 바로 이거다. 난쟁이들은 영웅이 아니었으며, 금전의 가치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셈에 밝은 족속이다. 어떤 난쟁이들은 교활하고 배신을 잘 하는 상당히 나쁜 녀석들이었지만, 어떤 난쟁이들은 소린과
그의 동료들처럼 점잖은 축에 속했다. 그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J. R.R. 톨킨, <호빗> p 236~237
중-
바로, 여기에서 톨킨의 세계관 더 나아가 인류의 집단 상상력이라 할 수 있는 신화의 가치관을 읽을 수 있다.
옛날 옛적부터 인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해결해줄 지도자를 필요로 했으며, 이런 지도자가 될 자격으로 용맹과 지혜로움 뿐만
아니라 물질적 욕망을 뿌리칠 수 있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지도자란 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자신들과
똑같은 무리 속에서 탄생된다는 걸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 빌보와 골룸과의 만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기 깊은 땅 속 검은 물가에 작고 끈적거리는 동물, 늙은 골룸이 살고 있었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나도
모른다. 마른 얼굴에 희미하게 빛나는 두 눈을 빼면 칠흑처럼 새까만 그가 바로 골룸이다. 그에게는 작은 보트가 있었는데 그 보트를 타고 아주
조용히 호수 위를 저어 다녔다. 호수는 더럽고 깊고 몸소리쳐지게 차가웠다. (......)그는 골룸이라고 말하면서 목구멍에서 끔찍한 꼴록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로 그 소리 때문에 그는 골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 자신은 항상 자신을 '내 귀염둥이'라고
불렀지만...(...)
"저게 우리한테 하나 물어볼 거야, 내 귀염둥이야, 그래, 그래. 딱 한문제만 더 맞히자, 그래, 그래,"
골룸이 말했다.
하지만 빌보는 그 역겹고 축축하고 차가운 것이 옆에 앉아서 손발로 건드리고 찔러댔기 때문에 아무 문제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몸을
할퀴고, 꼬집기도 했지만 여전히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우리한테 물어봐! 우리한테 물어봐!"
골룸이 말했다.
(...)
멀지 않은 곳에 빌보가 모르는 골룸의 섬이 있었다. 골룸은 그 은신처에 몇몇 잡동사니들을 쌓아 두었는데 그 중 아주 아름다운 물건, 너무
아름답고 멋진 물건이 있었다. 그것은 반지, 그것도 아주 소중한 황금반지였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나날에 가끔 그랬듯, 자신에게 속삭였다.
"내 생일 선물! 그게 우리가 지금 원하는 거야. 그래, 그게 필요해!"
반지를 원한 것은 그것이 마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 반지를 손가락에 끼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밝은 햇빛이 비칠 때에만 보이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일 뿐이었다.
"내 생일 선물! 그건 내 생일에 나한테 왔어, 귀염둥이야."
그는 항상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런 반지들이 아직 이 세상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까마득한 시절에, 그런 선물이 어떻게 골룸의
손에 가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아마 그 반지들을 지배한 군주조차 알 수 없으리라. 골룸은 처음에는 그것을 끼고 다녔지만 나중에는 너무
피로해져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쌈지에 넣어서 달고 다녔지만 살에 스쳐서 피부가 벗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 바위굴에 감춰 두고
언제나 돌아가서 보곤했다.
(...)
그걸 잃어 버렸어. 귀염둥이야, 없어졌어. 잃어버렸다고! 빌어먹을! 제기랄! 내 소중한 걸 잃어버렸어!"
-J. R.R. 톨킨, <호빗> p87~100 중-
너무 오랫동안 홀로 지내왔던 골룸은 혼잣말을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한다.
외로움을 달래줄 유일한 건, 바로 반지였다.
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 마법의 반지!
그런데 그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다.
골룸의 '공포와 상실의 날카로운 아픔'이 슬픈 메아리가 되어 빌보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독자인 나에게도 전해졌다. 왠지 모르게 골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골룸의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상실감이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었기 때문일까...
골룸이란 존재는 인간의 물질에 대한 집착과 악마적인 모습의 발현이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질병으로부터 생겨난 건 아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고블린 동굴에 빠져 헤매던 주인공 빌보는 우연히 땅에 떨어져 있던 반지를 주워 주머니에 넣게 되는데, 그 반지가 바로 호숫가 동굴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골룸의 것이었다. 골룸과 맞닥뜨린 빌보는 수수께끼 내기에서 이김으로써(사실, 반칙이지만...) 끼면 투명인간이 되는 마법의 반지를
차지하게 된다.
영웅의 조건 중 한가지인 '지혜'를 테스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평범하고 소심한 빌보가 절대절명 위기의 순간에 어떻게 이처럼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빌보는 평소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물질적 욕심없이 여유롭고 낙천적인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혜를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지혜로움이 빌보로 하여금 수수께끼 내기에서 골룸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당당함과 어두운 굴속에 혼자 떨어졌을 때 두려움 대신 차분한 용기를 갖게
만들었던 것이리라.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는 재미있으면서도 용기와 지혜를 깨닫게 해주며, 성인에게는 이젠 잃어버린 그러나 분명 갖고 있었던 '호연지기'를 다시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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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시작이다.
<호빗>을 성공적으로 읽었으니 <반지의 제왕>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