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루쉰과 손자는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출간되고 있을까? 특히 요즘은 루쉰의 책을 출판하는 경향이 우리나라에 늘어난 것 같다. 한 권으로 루쉰을 읽기 위해서는 900쪽이 넘는 양장본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출간된 글항아리 출판사판의『손자병법』은 '세상의 모든 전쟁을 위한 고전'으로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손자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실제로 손자는 전쟁을 그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전쟁을 쓴 것이 아닐까? 김원중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전쟁하는 사람들 뒤에 숨겨진 심리를 파악하는 손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란 무엇인가? 그건 아무래도 읽어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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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음과 모음의 하이브리드 총서) 

 

 

 

 

 

 명저란 많은 것을 담으면서도 한 가지 주제를 향해 달려가야 하며, '하이브리드'로 독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이다. 이 세 저작, 그 중에서도 『사유의 악보』을 읽은 사람이 할 말이 많아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이 책들 역시 명저에 속한다. 나 역시 이들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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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1-07-06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에 소중한 관심 가져주시고 주목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디 흥미진진한 독서의 시간 선사해드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starover 2011-07-06 13:37   좋아요 0 | URL
정말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역사를 바라보는 방법이 점점 다양해졌음을 느낀다. 왜냐하면 더 이상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역사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알아야 할 역사가 너무나 많다. 인간의 행적을 한 사람이 모두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어떤 역사의 일부분만 아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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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857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 '신'에 나온 숫자로 곱하거나 더하는 등 연산을 하면 같은 숫자가 반복돼 '신비의 숫자'로 불리고 있다.

 142857에 1부터 6을 곱하면 142857, 285714, 428571,  571428, 714285가 나오는데 이 숫자는 142857의 숫자가 반복된 것이다.

 또한 142857을 142, 857로 쪼개서 더하면 999, 세 개로 나눠서 14, 28, 57을 더하면 99가 나와 9가 반복되며 142857 곱하기 142857을 하면20408122449가 되는데 이를 20408과 122449로 나눠서 더하면 142857이 된다.

 신비의 숫자 142857의 원리는 바로 무한소수이다. 무한소수는 소수점 이하의 같은 숫자의 배열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으로 이 원리르 이용하면 142857말고도 다른 신비의 숫자를 만들 수 있다.
 

출처: http://bntnews.hankyung.com/apps/news?popup=0&nid=05&c1=05&c2=05&c3=00&nkey=201106201800053&mode=sub_view 

 

 딱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숫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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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살아남는다. 아니, 모든 고전은 처음에는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군주론』, 『율리시스』 등 현대에 사는 우리 모두가 인정하는 일부 고전들은 한때 금서로 취급되었다고 한다. 고전은 현실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묘사한 '유토피아'에는 책이란 게 필요하지 않다. 결국 책이란 삶을 살아가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 세계가 아직도 불안하기에, 고전은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은 인류의 역사 중 빙하기 다음으로 위태로운 시기이다. 가장 위험한 고비에 놓여있으면서도, 그 방법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과거에도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졌다. 그런 사람들에게 핀잔을 주는 대신 『고전 탐닉』이라도 권하고 싶다. 아무리 그것이 변명이라고 해도, 과거보다 현대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니까. 이 책은 56권의 고전들을 압축적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전체 분량이 300쪽도 되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책은 고전을 읽게 하는 안내도가 될 뿐이지, 결코 고전을 직접 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즉, 당신은 『고전 탐닉』을 읽고서, 거기에 머무를 게 아니라 고전을 찾아서 읽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당신이 이 책을 읽은 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현대에는 굉장히 책이 많이 나온다.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도 많다. 그러나 진정으로 고전으로 평가받으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이 그렇다. 그들이 죽은지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작품은 꾸준히 출판되고 또한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앞으로도 살아남을지는 의문이 든다. 세월이 지나도 읽히기 위해서는 호메로스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글을 매우 잘 써야 하니까. 어쨌든 여기서 나는 또 다른 '평가받은 책'을 소개하고 싶다. 바로 『예루살렘』이다. 작년에 돌아가신 주제 사라마구(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 책에 대해 '서양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위대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작가 공살루 타바리스는 르 피가로에게 '포르투갈의 카프카'라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암울하지만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이 정신병원이라는 알레고리적 공간이 등장한다. 참고로 이 작품은 2004년에 쓰여진 책이다. 이 작가가 7년만에 국내에 알려진 것은 아쉽지만, 지금부터 평가받는 것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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