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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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 여행은 언제나 관찰된다. 시간 여행은 언제나 특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지점, 즉 현재에서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과거로 향하거나 미래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에 얽매인 인간은 시간이 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시간 여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이율배반을 허용한다. 과거의 변화가 곧 미래의 변화로 직결되며, 그때마다 등장인물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홉 번이나 시간 여행을 한 엘리엇은 독백한다. 그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나에게 가장 아이러니하게 다가온 순간은 일리나가 골든 게이트에서 몸을 던졌을 때였다. 엘리엇은 운명이 어떻게든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고 좌절하지만, 모든 것을 관조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시간 여행자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그리고 젊은 의사가 연인에게 진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처럼 보인다. 어찌 됐든 두 주인공은 생사를 뛰어넘어 재회한다. 원래 2007년 1월 이후로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열 차례의 시간 여행 끝에 그들은 다른 미래를 겪게 된다. 작가는 이미 엘리엇의 독백을 통해 '다중 세계'를 암시했다. 어떤 세계에서 일리나는 1976년에 죽지 않았고, 어떤 세계에서 엘리엇은 1976년에 죽었으리라. 그 모든 세계를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선택된 세계의 장면들만 적절히 배치하면 된다.


 한 명의 관찰자로서 평하자면, 시간 여행은 이른바 운명이라 불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경험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선고를 뛰어넘어 생명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리하여 모든 시간 여행자는 특별하다. 미래의 자신과 만났으며, 이것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시간 여행자가 여행 이전에 죽는 일은 시간의 모순에 의해 불가능하니까. 어쩌면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상상이거나 끔찍한 저주이리라. 


 나는 글을 쓸 때, 시간 여행을 차용하지 않는 편이다. 공간의 이동은 종종 일어나지만, 과거로 어떤 물질이 역행하는 것은 세계의 질서를 통째로 뒤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주는 일은 익숙하다. 그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든 커다란 힘은 그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결국 주인공은 그 능력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기어코 걷는다. 그러니 '운명'이라는 세계의 규칙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운명이 인격체였다면, 캄보디아 노인이 준 알약을 이용해 자신을 열 차례나 농락하는 시간 여행자들에게 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마침내 일리나와 엘리엇, 엘리엇과 매트는 엇갈린 절반의 생애를 지나 다시 만난다. 세 사람 모두 똑같은 공간, 똑같은 시간에 만나 평행선을 걸어 왔지만 마침내 종착점에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알 도리가 없다. 관찰자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저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불사하고 만나려고 했던 여인보다, 하룻밤 보낸 여인 사이에서 난 딸이 더 소중하다는 진실. 인간이 의도한 것은 언제나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각 장 앞머리에 달린 인용문이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작가의 역량에 감사드린다.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수잔나 타마로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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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 이지훈 희곡집
이지훈 지음 / 평민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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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극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그녀의 실험적인 형식과 선구적인 내용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기대했던 「조카스타」와 「마태」의 서사적 힘이 떨어지는 것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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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탄생 - 의정부에서 도화서까지 관청으로 읽는 오백년 조선사 서울장소인문학 총서 1
서울학연구소 엮음 / 글항아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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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기관들을 통해 살펴본 조선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엿보이는 사고관들을 알 수 있다. 풍부한 그림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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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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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구매한 계기는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들었고, 크툴루 신화에 관련된 보드게임도 하고 나니, 도대체 이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길래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영향력이 지대한지 궁금했다. 그가 소설에서 정면으로 내세운 '미지'의 공포는 설명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현실과의 연결성이 끊어지고 말기에 전집을 읽기 전까지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6권에 달하는 그의 전집 중 단 한 권만 읽었지만, 러브크래프트가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방대하고 깊은지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그의 세계에 심취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쓴 것들은 대부분('모조리'가 아니다) 허구지만, 단편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은 한결같다. 단편들에서 얻어낸 조각들로만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이다. 우리의 세계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다른, 뉴잉글랜드의 어딘가에 위치할 것 같지만 절대 존재하지 않는 '사일런트 힐(Silent Hill)' 같은 아컴과 인스머스는 이미 독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가 묘사한 마을의 상세한 모습과 분위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떤 설명이 읽는이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 본 공포영화에서 깨달은 사실이 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는, 호기심이 위험하다는 것.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은 여행자 혹은 주변인의 운명을 파멸로 이끈다. 두 번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만나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개인적인 삶으로부터 광기의 묘사를 이끌어내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공포라는 것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전달될 수 없는 감정이다. 공포는 때로는 감정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의 정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크툴루, 아자토스, 요그소토스와 같은 존재들은 지성의 영역 저편에 있기에, 그것의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조차 묘사할 수 없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는 듯이.


 작가가 단편들 속에 숨겨놓은 단서들은 이제 찾을 수 없다. 작가는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들을 모두 미치게 하거나 잔혹하게 살해했다. 심지어 자신조차 죽어버렸으니, 그가 만든 미지로 가득한 공포의 세상은 후대의 인물들에게 탐구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허버트 웨스트가 살린 리빙 데드(living dead)의 행방, 네크로노미콘의 내용, 인스머스의 해변 등은 영원한 호기심으로 남으리라. 설령 확인한다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이는 살해당하거나 미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무섭게 한 단편은 단연 현관 앞에 있는 것」이었다. 작품을 내내 관통하는 음산한 기운은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극대화된다. 두 인간의 영혼을 바꾸려는 상상을 넘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는 상상은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준다. '명석한 두뇌에 의지는 허약한' 인간을 노리는 악마의 이야기와 절친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서술자의 이야기가 공존하며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러브크래프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완벽한 평화란 없다. 현상 유지이거나 도피일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악몽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안은 페이지를 뚫고 미래로 흘러간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아직까지 재생산되고, 해석되는 이유이리라. 


 나는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를 기꺼이 환영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는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나는 범위가 닿는 곳까지만 갈 것이며, 그 이상은 시도하지 않겠다. 호기심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달았기에, 공포가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목격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책의 말미에 수록된 크툴루의 눈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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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텍쥐페리의 글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것은 조종사들의 위대한 여정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 그 구름들을 남겨본다.

그는 인생을 달콤하게 해주는 일들이 늙어서 ‘시간이 날 때‘로 조금씩 미루어왔음을 깨달았다. 마치 실제로 언젠가는 시간 여유가 생기기라도 할 것처럼, 마치 삶의 끄트머리에서는 상상하던 그런 행복한 평화를 얻을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 하지만 평화란 없다. 어쩌면 승리로 없을지 모른다. 모든 우편기가 최종적으로 도착하게 되는 일이란 없는 것이다. - P23

내가 비난하는 건 그가 아나. 그를 통해 나타나는 것, 미지의 것을 앞에 두고 인간을 마비시키는, 그런 장애물이지. 내가 그의 말을 들어주고, 그를 동정하고, 그의 모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면, 그는 불가사의한 세계에서 돌아온 거라고 생각할 거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건 바로 이 불가사의뿐이거든. 더는 불가사의라는 게 없도록 해야 해. 사람들이 이 어두운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면서 그 안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말하도록 해야 해. 이 조종사도 칠흑 같은 밤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도록 해야 하지. 손이건 비행기 날개건 그런 것만을 비추는 광부의 조그만 램프 같은 것도 없이 말이지. 미지의 것과 어깨 넓이만큼만 거리를 두도록 해야 하는 거야. - P71

"보편적인 이익은 개별적인 이익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하죠." 한참 후 리비에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무언가가 인간 생명의 값어치를 능가하는 양 행동하지요…… 그런데 그건 무엇일까요?" - P89

이보게, 로비노. 삶에는 해결책이 없다네. 전진하는 힘이 있는 거지. 그런 힘을 창출해 내면 해결책은 뒤따라 나오는 법일세. - P105

자크 베르니스, 이후 세상을 날아다니면서 자네는 무엇을 배웠는가? 비행기를? 우리는 단단한 수정 같은 하늘에 구멍을 뚫으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조금씩 조금씩 도시들이 차례로 바뀐다. 거기서 뭔가가 구체화되려면 착륙해야만 한다. 이제 자네는 알고 있다. 이 풍요로움은 자네에게 아주 잠시 주어졌다가 바닷물에 씻기듯 시간에 씻겨 사라진다는 점을. - P141

멀리서 사람들은 상상을 한다. 떠날 때에 사람들은 미어질 듯한 가슴을 안고 애정을 포기하고 가지만, 동시에 땅속에 보물을 묻어두고 가는 듯한 야릇한 감정도 느낀다. 이러한 도피가 때로는 그토록 소중한 사랑을 증명하기도 한다. 어느 밤, 별이 총총히 박힌 사하라사막에서 저 멀리 있는 뜨거운 사랑을, 별이 총총히 박힌 사하라사막에서 저 멀리 있는 뜨거운 사랑을, 씨앗처럼 밤과 시간에 묻혀 있는 사랑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그는 마치 누군가의 잠든 모습을 보기 위해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 급작스레 들었다. 고장 난 비행기에 기대어 사막의 곡선과 지평선의 경사를 눈앞에 두고, 그는 자신의 사랑을 양치기처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다 그대로라니!" - P157

관습, 관례, 법처럼 자네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모든 것이, 자네가 도망쳐 나온 그 모든 것이…… 바로 인생의 테두리가 되는 거야.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위에 지속되는 현실이 필요한 법일세. 부조리하다든가 부당하다는 건 모두 그저 말뿐이지. 그러니 자네가 데려간 주느비에브는 더는 주느비에브가 아니라네. (…) 그런데 자네는 아파트에서 그 많은 물건들을 치우듯 그녀에게서 그녀의 삶을 텅 비우게 하려는 걸세.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집을 이루고 있는 그런 물건들을 없애듯 말이야.
하지만 자네에게는 사랑이 곧 탄생과 같은 말일 거라고 생각하네. 자네는 새로운 주느비에브를 데려간다고 생각하겠지. 자네에게는 사랑이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빛처럼 느껴지겠지. (…) 어떤 순간에는 가장 단순한 몇 마디 말이 위력을 발휘해 아주 쉽게 사랑을 불타오르게 하지. 그건 맞는 말일세…….
하지만 삶은 분명 그와는 다른 것이라네. - P188

베르니스, 자네는 어느 날 내게 고백했지. "나는 그다지 잘 이해되지 않는 생활, 완전히 충실하지도 못했던 생활이 좋았네.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조차 잘 몰랐어. 그건 그저 가벼운 욕망이었으니까 말이야……."
베르니스, 자네는 어느 날 내게 고백헀지. "내가 짐작했던 것은 모두 사물 뒤에 감추어져 있었네. 조금만 노력하면 마침내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되고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지. 하지만 내가 밝은 세상으로 결코 이끌고 나올 수 없었던 그 친구의 존재 때문에 나는 괴로운 마음을 안고 떠난다네……." - P273

나의 동료여…….
그러고 보니 여기에 보물이 있었군. 자네가 그토록 찾아다니지 않았나?
이 모래언덕 위에서, 양팔을 십자 모양으로 벌리고 얼굴은 저 짙푸른 만을 향한 채 있는 자네, 그날 밤 자네는 어찌나 가볍던지…….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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