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One More Day (Paperback)
미치 앨봄 지음 / Hyperion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고 가는 매력을 지녔다. 그 이야기의 속성이 무엇이든 독자는 찰스 칙 베네토의 증언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존경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가 나에겐 다소 낯설었다.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문학은 보통의 문학과는 구별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본문 뒤에 실린 심사평들은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10년 전에 비해 청소년 문학의 지평이 꽤 넓어졌고, 응모작도 그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심사평을 보면 『시간을 파는 상점』이 선택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소설도 일반적인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거칠고 솔직한 시선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었던 온조와 그녀의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 성장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동시에 읽었다. 어른을 위한 문학, 청소년을 위한 문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어렵다'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주인공의 성별이나 나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은 어디에나 돋보였다. 어린 시절 한국 문학에 대해 지녔던 따분했던 편견은 어느새 사라졌다. 조만간 서평을 남기겠지만, 단편소설에 담긴 깊은 사유는 꽤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편소설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분석했다. 청소년 소설에서는 어떤 어휘를 쓰고, 대화를 할 때는 문장에 무엇을 채워넣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판타지를 어떻게 구현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라는 심사평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은 말을 아낀다는 것이었다.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지만, 시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의뢰인들이 생각하는 '시간'을 실천한 것이 전부였다. 모든 관계가 한 번에 풀리지 않았다. 한 아이의 미래에 대해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만남을 추구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작가는 수수께끼를 여백에 남겨두었다.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시간을 파는 상점』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청소년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 역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위해 바치는 선물이다. 만약 이 소설이 상에 당선되지 않았다 해도, 적어도 작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당신의 정원』을 완성한 후에 『시간을 파는 상점』을 보았다. 나는 그 소설을 내가 쓴 최초의 청소년 소설이라고 구분했다. 처음부터 청소년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담아내다 보니 작가 자신이 치유되었고, 그 기쁨의 순간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검증된 작품을 읽고 나니, 내 습작의 완성도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우선 심사평에서 강력하게 지적한 사항을 위반했다. "청소년문학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은, 등장인물인 청소년의 입을 통해 작가의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다." 즉, 등장인물인 청소년을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닌 작가의 대변인으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소설에서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문학이 아닌 우화가 되고 만다. 나는 우화를 그리고 있었다. 


 같은 범주 안에서 두 작품에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창작자로서는 신비한 경험이었지만, 독자에게는 분명 반갑지는 않은 상황이리라. 이미 수없이 많은 청소년 문학에 등장한 요소들이 반복되니까 말이다. 온조에게 홍난주가 있었듯이, 루이에게는 김원주가 있었다. 들꽃자유가 꽃들의 이름을 보내주었듯 아이들은 사계절의 꽃들과 함께 했다. 바람의 언덕에서 그 아이를 만났듯, 당신의 정원에서 기적은 일어났다. 그러나 온조와 루이는 다른 인물이다. 오히려 전자는 온의 어린 시절 모습과 유사하다. '딸을 위해', 즉 '온조를 위해' 작가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개업했다. 나는 루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어떤 평가를 받든 간에 『당신의 정원』은 나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루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루이를 위해 기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문선 출판사의 『현대영미희곡선 3』에 수록된 네 편의 작품, 즉 Mary, Mary by Jean Kerr, Rain by William Somerset Maugham, Verdict by Agatha Christie, 그리고 The Disposal by William Inge을 감상했다. 원어로 표기한 이유는 번역된 제목이 원제의 분위기와 맞지 않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네 작품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딘선가 본 것들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이후의 현대극에 상당한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Rain은 『타이스』라는 소설이 절로 떠올랐다. 정신적으로 타락한 여자와 그녀를 구원하기 위한 성직자가 등장한다. 세상은 여자를 추방하려고 하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 여자는 회심한다. 그러나 성직자는 그녀와 정반대의 길을 택한다. 낯익은 서사를 희곡의 형식 속에 녹여내니 꽤 새로운 체험이 되었다. 


 Mary, Mary는 네 작품들 중 가장 현대적인 감성에 가깝다. 가장 반대편에 위치한 것이 Agatha Christie의 희곡으로, 소설과 다름없는 추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으며 그 과정을 풀어내는 방식이 20세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와 배우, 출판업자 등 뉴욕과 할리우드의 문화계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들이 극을 펼쳐낸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었든 그들의 대사가 상당히 세련되었다고 느꼈다.


 The Disposal은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극이었다. 제스, 아키, 룩크는 남아 있는 삶의 기간을 세어야 하는 사형수이고, 그들의 대화는 당연히 가시가 돋혀 있다. 그 속에서 죽음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 본연의 불안이 보인다. 제스의 아버지가 찾아오는 장면부터 마지막까지 극은 특별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다. 제스는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그를 적극적으로 반기지만, 아버지는 그와 같은 마음이 아님을 모두가 알고 있다. 제스는 마지막까지 목사의 말에 설득되지 않고, 남들과 똑같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행적을 평가하기도 전에 또 다른 사형수 조가 죽음의 행렬에 동참한다. 나는 원제를 '처분'이라고 번역하고 싶다. 인간을 마치 물건을 폐기하듯이 다루는 사형장의 분위기를 전달해 주는 듯 하다. 물론, '마지막 포옹'도 훌륭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간 여행은 언제나 관찰된다. 시간 여행은 언제나 특정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지점, 즉 현재에서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과거로 향하거나 미래로 나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현재에 얽매인 인간은 시간이 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없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시간 여행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이율배반을 허용한다. 과거의 변화가 곧 미래의 변화로 직결되며, 그때마다 등장인물의 운명이 뒤바뀌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홉 번이나 시간 여행을 한 엘리엇은 독백한다. 그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나에게 가장 아이러니하게 다가온 순간은 일리나가 골든 게이트에서 몸을 던졌을 때였다. 엘리엇은 운명이 어떻게든 그들을 파멸로 이끈다고 좌절하지만, 모든 것을 관조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시간 여행자가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그리고 젊은 의사가 연인에게 진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처럼 보인다. 어찌 됐든 두 주인공은 생사를 뛰어넘어 재회한다. 원래 2007년 1월 이후로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야 했지만, 열 차례의 시간 여행 끝에 그들은 다른 미래를 겪게 된다. 작가는 이미 엘리엇의 독백을 통해 '다중 세계'를 암시했다. 어떤 세계에서 일리나는 1976년에 죽지 않았고, 어떤 세계에서 엘리엇은 1976년에 죽었으리라. 그 모든 세계를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선택된 세계의 장면들만 적절히 배치하면 된다.


 한 명의 관찰자로서 평하자면, 시간 여행은 이른바 운명이라 불리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경험이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선고를 뛰어넘어 생명이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그리하여 모든 시간 여행자는 특별하다. 미래의 자신과 만났으며, 이것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시간 여행자가 여행 이전에 죽는 일은 시간의 모순에 의해 불가능하니까. 어쩌면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상상이거나 끔찍한 저주이리라. 


 나는 글을 쓸 때, 시간 여행을 차용하지 않는 편이다. 공간의 이동은 종종 일어나지만, 과거로 어떤 물질이 역행하는 것은 세계의 질서를 통째로 뒤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에게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주는 일은 익숙하다. 그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든 커다란 힘은 그에게 고통을 선사한다. 결국 주인공은 그 능력을 기꺼이 포기하거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기어코 걷는다. 그러니 '운명'이라는 세계의 규칙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운명이 인격체였다면, 캄보디아 노인이 준 알약을 이용해 자신을 열 차례나 농락하는 시간 여행자들에게 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았으리라. 


 마침내 일리나와 엘리엇, 엘리엇과 매트는 엇갈린 절반의 생애를 지나 다시 만난다. 세 사람 모두 똑같은 공간, 똑같은 시간에 만나 평행선을 걸어 왔지만 마침내 종착점에서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는 알 도리가 없다. 관찰자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나는 그저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불사하고 만나려고 했던 여인보다, 하룻밤 보낸 여인 사이에서 난 딸이 더 소중하다는 진실. 인간이 의도한 것은 언제나 간단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각 장 앞머리에 달린 인용문이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작가의 역량에 감사드린다.

 

당신 앞에 여러 갈래 길이 펼쳐지는데, 어떤 길을 선택할지 모를 때, 무턱대고 아무 길이나 택하지 마라. 차분히 앉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꼼짝하지 마라. 입을 다물고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그러다가 가슴이 당신에게 말할 때, 그때 일어나 가슴이 이끄는 길로 가라. -수잔나 타마로 - P3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우제 - 이지훈 희곡집
이지훈 지음 / 평민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연극의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그녀의 실험적인 형식과 선구적인 내용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기대했던 「조카스타」와 「마태」의 서사적 힘이 떨어지는 것은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