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상점 -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5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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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존경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장르가 나에겐 다소 낯설었다.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문학은 보통의 문학과는 구별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본문 뒤에 실린 심사평들은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은 10년 전에 비해 청소년 문학의 지평이 꽤 넓어졌고, 응모작도 그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들이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심사평을 보면 『시간을 파는 상점』이 선택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소년을 위한 소설도 일반적인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세상에 대해 조금 더 거칠고 솔직한 시선이 발견된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었던 온조와 그녀의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 성장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과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동시에 읽었다. 어른을 위한 문학, 청소년을 위한 문학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어렵다'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주인공의 성별이나 나이는 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은 어디에나 돋보였다. 어린 시절 한국 문학에 대해 지녔던 따분했던 편견은 어느새 사라졌다. 조만간 서평을 남기겠지만, 단편소설에 담긴 깊은 사유는 꽤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편소설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분석했다. 청소년 소설에서는 어떤 어휘를 쓰고, 대화를 할 때는 문장에 무엇을 채워넣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시간을 파는 상점'이라는 판타지를 어떻게 구현했을지 확인하고 싶었다.


 "시간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라는 심사평이 지배적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소설은 말을 아낀다는 것이었다. 온조는 시간을 파는 상점의 주인이지만, 시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의뢰인들이 생각하는 '시간'을 실천한 것이 전부였다. 모든 관계가 한 번에 풀리지 않았다. 한 아이의 미래에 대해 함부로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 억지스러운 만남을 추구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작가는 수수께끼를 여백에 남겨두었다.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여기서 『시간을 파는 상점』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청소년에게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 역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의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이것은 어머니가 딸을 위해 바치는 선물이다. 만약 이 소설이 상에 당선되지 않았다 해도, 적어도 작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리라.


 『당신의 정원』을 완성한 후에 『시간을 파는 상점』을 보았다. 나는 그 소설을 내가 쓴 최초의 청소년 소설이라고 구분했다. 처음부터 청소년을 위해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담아내다 보니 작가 자신이 치유되었고, 그 기쁨의 순간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검증된 작품을 읽고 나니, 내 습작의 완성도는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우선 심사평에서 강력하게 지적한 사항을 위반했다. "청소년문학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은, 등장인물인 청소년의 입을 통해 작가의 설교를 듣게 되는 것이다." 즉, 등장인물인 청소년을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닌 작가의 대변인으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이것은 어떠한 소설에서도 적용되는 부분이다. 교훈을 전달하려고 하는 순간, 그것은 문학이 아닌 우화가 되고 만다. 나는 우화를 그리고 있었다. 


 같은 범주 안에서 두 작품에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창작자로서는 신비한 경험이었지만, 독자에게는 분명 반갑지는 않은 상황이리라. 이미 수없이 많은 청소년 문학에 등장한 요소들이 반복되니까 말이다. 온조에게 홍난주가 있었듯이, 루이에게는 김원주가 있었다. 들꽃자유가 꽃들의 이름을 보내주었듯 아이들은 사계절의 꽃들과 함께 했다. 바람의 언덕에서 그 아이를 만났듯, 당신의 정원에서 기적은 일어났다. 그러나 온조와 루이는 다른 인물이다. 오히려 전자는 온의 어린 시절 모습과 유사하다. '딸을 위해', 즉 '온조를 위해' 작가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개업했다. 나는 루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어떤 평가를 받든 간에 『당신의 정원』은 나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루이를 통해 다시 한 번 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루이를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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