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박스 안에 모셔두었던 빚들을 청산하고자 한다. 이 청산은 구입을 위한 청산이 아니라, 기억과 자기 만족을 위한 정리 정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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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개의 사물에 대한 이야기. 언더그라운드 팝아티스트들이 화자로 등장해 사물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물에 관해 탐구하는 것, 특히 구체적인 탐구는 나를 언제나 설레게 한다. 한 권의 극장에 50개의 연극이 상영되는구나.
『아틀라스』에 대한 각별한 관심. 2700쪽에 가까운 페이지이지만 난 겁먹지 않는다. 거인은 원래 크기 때문이다. 거인을 소인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작품을 망칠 뿐이다. 때로는 아주 긴 것이 필요하다. I am John Galt, Altas is shrugging. 움츠려드는 아틀라스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몰락하는 미국 자본주의인가? 아니면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 존 골트인가? 누군가는 무너진다. 누군가는 떠오른다.
『작가란 무엇인가』와 <파리 리뷰>지는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전해준다. 작가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이고, 존중받아야 하는지, 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작가 역시 한 명의 인격체이고, 따라서 작가는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이다. 센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정의를 정의했는가? 마찬가지로, 소설가, 작가가 무엇인지 질문해도 결코 답은 얻을 수 없다. 단지 그 과정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의식이다. 빅토르의 의식이 곧 소설의 내용이자 주제이다. 사건의 전개는 그저 표상일 뿐이다. 상당히 어려워 보이지만, 또 다른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나에게 그 이유를 가르쳐주시오.
요즘 이윤기가 쓴 『하늘의 문』과 이윤기와 딸 이다희가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있다. 그의 스타일은 깊고 매력 있다. 모든 내용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내용이 합쳐지면 이윤기가 쌓은 지혜가 보인다. 이윤기,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단연 『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의 번역은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글 역시 읽고 있다. 난 그의 태도를 존경한다. 과시가 아닌 소통, 바로 그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일상적인 질문들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 우리가 잘 몰랐던 것들을 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나는 몰랐다. 시간이 뒤로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 않나?
베케트에 관한 두 가지 책.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작가는 실비아 플라스이다. 언젠가 그녀의 소설과 시 전집을 읽어보고 싶다.
아무리 그녀의 삶이 유명하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입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시와 소설이 아닌가? 더 찾아보니, 그녀의 일기와 드로잉집도 있는데 이것 역시 관심이 간다.
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글쟁이로서 당연한 소유욕 아닌가?
빚 다 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