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늘어나 있었다. 그의 작품의 칼날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설마 무뎌진 것은 아닐까? (문득 왜 예전에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아직까지 그 힘이 살아 있는 책이다. 그의 세 대하소설을 끝으로, 더 이상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지만, 이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작품을 빚도록 했다. 그의 대하소설이 그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혀지지 않은 까닭은 붓칼의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고, 그 시대 역시 쉽게 베였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이 그의 손에서 또 다시 나올까 싶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해냄출판사'의 덕이 컸다. 위의 대하소설 세트도, 조정래 작가 초기의 문학을 모은 '조정래 문학전집'도, 이 출판사가 간행했기 때문이다. 『어떤 솔거의 죽음』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그의 단편소설 14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창 개발 중이었던 1970년대에서 얻은 것 대신 잃은 것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마술의 손』,『그림자 접목』 역시 단편집이다. 결국 이 세 책은 작가의 풍성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에서 못 푼 이야기를 어떻게 압축하여 풀어내고 있을까? 역시, 나는 이런 짓을 하다 보면 그 작가의 작품이 읽고 싶어진다니까. 알고 보면, 이 짓은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유형의 땅』은 그의 중단편집 중에서 조금 특별하다. 이 작품은 그의 중단편집 중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으로는 『The Land of the Banished』이다. 'banish'가 '유형을 보내다'라는 뜻이 있으니, 작품의 제목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엔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상실의 풍경』도 여기에 담아본다. 이것 역시 단편집이니까. 여기까지 오니, 나는 조정래 작가의 단편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편이 넘는 이야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아가보자. 조정래도 인간이기에, 그리고 소설에서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기에 그는 일종의 '뒷담화' 같은 책들을 몇몇 출간했다. 물론 뒷담화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지만 말이다. 특히, 『황홀한 글감옥』은 그의 에세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작가가 직접 알려주는 '소설 쓰는 법'이 담겨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것도 좋지만 조정래의 인간적인 이야기도 경청해주었으면 한다.  

   

 이제, 드디어 조정래 작가의 단편소설도, 대하소설도 아닌 '장편소설'로 들어가본다. 내 생각엔 요즘 조정래 작가의 문학 스타일이 장편소설로 바뀐 것 같다. 물론 대부분 예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왜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개정판이 나오는 걸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의 칼날은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인 걸까? 그 두가지에 더불어 하나 추가해본다. 조정래 작가 자신도 작품을 끝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황토』는 중편이었지만 그의 손길으로 장편으로 태어났다. 『사람의 탈』은 『오 하느님』이라는 제목이었지만 전자로 바뀌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정래 작가는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 시대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아까 전에 다룬 조정래 문학전집에 중복으로 다뤄질 수 있다. 그런데 해냄출판사라는 운율이 있지 않은가? 조정래의 얼굴을 계속 본다. 『비탈진 음지』와 같은 형식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모두가 장편소설이라고 대문짝에 써 놓았고, 문간 구석에 조정래 작가의 얼굴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허수아비 춤』이 그의 가장 최신작이다. 『상실의 풍경』이나 『비탈진 음지』와 같은 신간들은 모두 예전 작품에 대한 개정판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약 10개월 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수아비가 아직도 춤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돈의 허수아비가 된 인간들과 그에 맞서려는 인간들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보고 나서 아직도 조정래 작가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모든 칼은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무뎌지는 법이다. 붓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칼을 쥐고 있는 자가 계속 칼을 갈고 다듬으면 그 칼은 오랫동안 그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결코 그는 이전 작품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언젠가 이 책도 더 다듬어질까. 어쨌든 그는 그 당시 시대에 대한 책을 출판한다. 모든 시대에 유효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듬는다. 언젠가 그의 작품들 중에서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맞는 보편적인 걸작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을 다 써 보고 나니 조정래의 책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단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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