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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그 생각이 딱 떠오른 건 새 틀니를 하던 날이었다."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지 볼링은 이름보다는 '패티(뚱보)'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다. 그는 두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아내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현재 그는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돌보고 돈을 벌어오는 일상의 과정으로 인해 숨 쉴 틈조차 없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기회가 찾아온다. 뜻하지 않게 17파운드라는 돈을 얻은 것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숨 쉴 기회'였기 때문에, 조지 볼링은 당황한다.  

 새 틀니를 하여 하루를 쉬는 바람에 조지 볼링은 거리를 여유롭게 누빈다. 하지만 그에게 전쟁의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영국에는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참을 수 없는 불안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신문 광고 포스터를 보고는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한다. 

 이후, 2부는 볼링이 과거를 독백조로 회상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볼링의 이야기이자, 조지 오웰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로어빈필드를 배경으로, 과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그의 과거를 이루는 것은 '낚시'에 대한 경험으로, 그는 어른들에게 혼이 나면서도 즐거워 하며 낚시를 했었다. 책도 많이 읽으면서 교양도 쌓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어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의 아름다운 옛날은 사라져 간다. 전쟁 이후, 그의 일상은 숨 쉴 틈 없이 지나가버린다.  

 조지 볼링은 힐다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여자들은 결혼 후에 너무나 빨리 망가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처녀였던 힐다는, 2~3년이 지나자 추악한 아줌마가 되었고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속물'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고향 로어빈필드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곳은 "벽돌의 바다"와 "현대"라는 괴물에 묻혀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버렸다. 건물들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마저 변했다. 그의 옛 연인 엘시는 완전히 늙어버린 노파로 변해있었고, 성당의 신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그렇다. 그도 변한 것이다). 또한, 어릴 적의 추억이 있었던 낚시조차 오염된 물로 인해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못 역시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있었다. 그 때, SOS에 힐다가 위독하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볼링은 그것을 무시하고 사흘 더 있다가 가려고 했지만....... 마을이 폭탄에 맞자 미련 없이 그 곳을 떠나버린다. 결국 그가 돌아온 곳은 '숨 막히는' 일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조지 오웰이 묘사하고자 한 평범한 중년 남자의 비극이다.  

 

 모든 현대인들은 죽었다. 그들은 "변화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저 몸만 움직일 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묘사했던 사람들, 곧 '죽은 사람들'이다.  

 조지 볼링도 죽었다. '그는 죽었다.' ........ "하지만 누워 있지 않으려 하네." 현대는 사람들의 정신을 모두 먹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현대 세계를 깨물어보고 그게 정말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게 된 느낌이었다. 요즘 우리 사는 꼴이 그런 식이다. 모든 게 매끈매끈하고 유선형이며, 모든 게 엉뚱한 무엇인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하지만 본질에 다가가 단단한 그것을 깨물어볼 때 느껴지는 것, 그건 다른 무엇이다. 고무 같은 껍질에 든 썩은 생선이요, 입 속에서 터지는 오물인 것이다." 현대는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은 각 시대의 '현대인'이니까. 

 현대라는 괴물은 볼링에게 절망만 남겨주었다. "벽돌의 바다"에 묻혀버린 과거의 로어빈필드를 묘사하는 장면은 참으로 참담하다. 현대는 개인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친다. 앞으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과거에 남겨진 순수한 상태를 상징한다. 결국 전쟁 끝에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대라는 괴물은 한 명의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숨 쉬러 나가다』에서 전쟁의 장면뿐만이 아니라, 전쟁 그 이후의 장면까지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장면들은 『1984』의 장면들과 비슷한 것이 너무나 많다. "폭탄, 식량배급줄, 경찰봉, 철조망, 무슨 색 셔츠단, 슬로건, 거대한 얼굴 포스터, 침실 창 밖으로 갈겨대는 기관총." 이미 이 때부터 그의 작가 의식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숨 막힐 텐데, 그 때에는 얼마나 숨이 막힐까? 그러나 그 일은 원스턴 스미스에게 맡겨두기로 하자.  

 조지 볼링이여, 당신이 A, B, C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 말하라. 원스턴 스미스가 만난 노인이 당신인지, 아닌지. 그 때에는 현대보다 더 무서운 현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대가, 조지 볼링이 살던 현대보다 더욱 숨 막히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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