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도 오늘로서 끝이다. 하지만 The end is only the beginning. 끝은 곧 시작이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나는 마무리한다. 그 전에 5월에 출간된 책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마존에서 116주, 뉴욕 타임스 109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책갈피에 써져 있는 것들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베스트셀러이면 어떨 것인가, 결국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중요한 것인데. 어쨌든 2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했다는 것은 '소설의 재규정'이라는 찬사가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하다. 헬프, 즉 '도움'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분명히 나의 눈길을 끄는 책이다. 

 

  

 이번에는 국내 소설들을 살펴보고 싶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불리는 최인호 작가가 암투병을 하며 지어낸 소설이다. 소설은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이, '낯익음'과 '흐릿함', 즉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기 위해(영화 <핸드폰>을 연상시킨다)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들과 진실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프카의 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K'는 작품의 또 다른 부조리를 더할 것이다.

 한편, 『미칠 수 있겠니』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인숙 작가의 새로운 장편소설이다. 책갈피에는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어디선가 표지가 낯익다 했더니, 『7년의 밤』과 비슷한 부류의 소설이었다. 게다가 『7년의 밤』처럼 '7년' 사이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서 더 흥미롭다. 

 

     

 오랜만에 '글쓰는 법'에 관한 책이 나왔다.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는 딱 나를 위한 책 같다. 나도 첫 문장을 쓰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가 아니라,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이 나의 그 두려움을 해결해줄지 내심 기대하고 있다. 『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은 '인생의 제 2막'을 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인생 후반기에 권하는 일로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일단 저자가 내세우는 원칙은 '무조건 써 봐라'라는 것이다. 과연 200쪽 안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나는 선집보다 전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전집(complet-e work-s)'은 영단어에 암시되어 있듯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전집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모든 작품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그래서 '단편전집'이라는 말에 끌린다. 아서 클라크라는 SF 거장의 104개의 단편을 모두 즐겁게 맛보시길. 나도 기회가 된다면 시도해보리라.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했다. 그런데 약간 '진부하게만' 여겨졌던 문학 전집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 분야가 전혀 다른 시리즈가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한겨례출판과 점필재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한겨례역사 인물 평전'이다. 내가 여기서 관심이 가는 것은 그 평전의 종류도 안중근, 김좌진, 김구와 같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위인'들만 다루는 게 아니라 '이완용', '최남선' 같은 반역자이자 매국노 역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새로운 차별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역적'으로만 보았던 이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는 동시에 지금까지도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나아가서 '나는 무엇인가?',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어 골치 아프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문학이라는, 상대적으로 철학보다 가벼운 학문을 사용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물론 『캉디드』와 같은 철학소설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가 책 속에서 펼쳐놓은 주장이 워낙 독특해서 나는 '문학' 쪽에 이 책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 스파르타쿠스! 『반역(Rebellion)』을 번역하고 있는 나를 아주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반역자의 상징으로, 부정한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투쟁을 이끄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역사에 기록된 이후,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일부 작가들은 그의 전쟁을 소설로 펼쳐놓기도 했다(이소영 작가의 『반역』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드라마로 나오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자연스레 대중들은 스파르타쿠스의 전쟁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반역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책들도 있다. 특히나 이 책은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전쟁을 여러 문헌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는 그를 답사와 분석을 통해 완전한 역사로 되살려 냈다. 이 역사서를 통해 나는 스파르타쿠스를 서양의 역사에서 그냥 간과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남긴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광대 샬리마르』로 유명한 살만 루슈디의 새로운 작품 『피렌체의 여마법사』가 출간되었다. 주로 '두 상반된 세계'의 만남과 충돌을 다루고 있는 그의 소설은 여기서 그것을 한데 묶어놓았다. 피렌체는 중세 시대의 두 세계 중 한 세계. 전장은 바로 그것이다. 충돌은 이미 시작되었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의 처녀작인『절망』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로 들어갔다. 문학전집, 하니까 다른 출판사의 문학작품도 생각난다. 예컨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번,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 공교롭게도 두 작가 모두 아시아권 작가다(루슈디는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이다). 

  

  

 『주석달린 월든』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다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똑같은 말을 두 번 할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나는 한국에 버지니아 울프 학회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또 기뻤다(사실 내가 주의깊게 보지 않은 탓이지만). 이번에는 울프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다. 소설가에 대해서, 우리는 소설에서 그의 의식을 보고, 에세이에서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래, 이번엔 버지니아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자. 

 내가 『내 이름은 망고』에 주목하게 된 것은 큰 이유가 없다. 단지 이 책이『완득이』, 『위자드 베이커리』, 『싱커』와 같은 주옥같은 청소년 문학을 배출한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을 많은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중 최초로 슬픈 얼굴을 내놓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그래도 기대해 본다. 위의 세 작품들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이느냐다. 

     

 여러모로, 이번 달에는 유난히 외국소설이 많이 출판된 것 같다. 『죽음의 선고』는 모리스 블랑쇼 선집 첫 번째 시리즈(이것도 시리즈군)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그의 언어관과 문학관을 엿보게 할 수 있는 걸작이다. 『언런던』은 일종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런던과 정반대의 세계,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런던과 비슷한 un-런던에 대해 그리고 있다. 언젠가 '언서울' 같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반성하게 하니까 말이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전해졌으면 좋곘다. 마지막으로 『윙스』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나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장르인데, 왠지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책이겠구나. 그 때까지 널 기억할지, 노력해볼게. 

  

 조정래다. 나에게는 조정래가 『허수아비 춤』의 작가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태백산맥』의 작가, 『한강』의 작가, 『아리랑』의 작가 등이겠지. 사실 소설은 1999년, 그의 전집에 있었던 한 단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작가의 개작을 통해 다듬어진 장편으로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개작의 힘이 얼마나 큰지(『장마』라는 작품이 최고지만), 조정래의 작가의식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그가 펼쳐놓은 '슬픈 연극'들을 맛보자.

 

 

 

 

 

 이제야 내가 왜 힘을 들여서까지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렇게 해 놓으면 한 달 동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모두 볼 수 있고, 나의 관심 정도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도 몰랐던 책들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기쁘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들지 못한 많은 책들에게(특히 『북학의』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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