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1장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모든 기예와 탐구,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p.13)."

  

 

 이 문장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문장은 단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음을 모든 것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옳게 추구해왔다(p.13)."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모든 기예와 탐구", 그리고 기예와 탐구와 같은 말인 "모든 행위와 선택"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예는 일종의 '예술'이라고 할 때, 그리고 행위가 기예와 같은 것이라고 할 때, 예술은 행위, 곧 행동과 같다는 것이 된다. 이것은 예술(Art)와 활동(Act)간의 말장난이 아니다. 모든 예술은 행위적이다 또는 모든 행위는 예술적이다, 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탐구는 물론 연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선택은 곧 결정이다. 어떤 좋음은 선이므로, 우리는 인간의 모든 행위와 예술과 결정과 연구는 모두 '선'을 목적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추구되는 여러 목적들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것들의 경우 그 목적은 활동이며, 다른 것들의 경우에는 활동과는 구별되는 어떤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행위와 구별되는 목적이 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그 성과물이 본성적으로 활동보다 더 낫다(p.13)."

 여기서 우리는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목적이 수단보다 더 좋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목적의 수단인 '행위'는 목적보다 낮은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활동(Action)'과 '행위(Act)'가 서로 다른 개념이라고 할 때, 행위는 활동의 목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행위의 경우에는 나뉘어지는 행위보다 궁극적인 목적인 '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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