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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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면 물리학에 관련된 책처럼 보이지만, 제레미 리프킨은 아니나 다를까 인류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열역학 제1법칙(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따라서 창조될 수도 없다"와 제2법칙(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변한다)을 이용해 세상의 법칙을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어찌 보면 대담하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복잡성이 가속화되는 21세기에도 그는 불변의 법칙을 정립하여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다. 엔트로피 법칙은 무질서를 없애기 위해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은 무질서를 더할 뿐이라는, 허무주의적인 접근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이 무용지물이라니,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니, 얼마나 절망적인가?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이 맞으면 좋겠다. 20세기 말미에 나온 이 책의 예측이 틀렸으면 좋겠다. 그러나 리프킨의 예측이 점점 맞아 떨어지는 것은 왜일까? 엔트로피 법칙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계가 걷잡을 수 없는 잘못된 것은 아닌가?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세상은 안녕한가? 인류의 지식이 이토록 축적된 적이 없는데, 이제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알 것 같아서 두려워 한다. 무질서를 불러일으킬 요소는 더욱 많아진다. 팬데믹, 세계대전, 자원 고갈, 태양 폭풍, 인공지능....... 디스토피아를 초래할 수 있는 변수는 예측할 수 없이 늘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류학자가 지적하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자원 고갈이다. 그는 전 인류가 쓸 수 있는 자원이 50년도 채 남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앞으로의 인구 증가를 감안하면 석유나 석탄뿐만 아니라 식량도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낙관주의자들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나 친환경 에너지를 내세우지만, 앞으로의 인류가 소모할 자원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들도 안다. 지구에 쌓인 엔트로피가 절정에 달할 때, 그로 인해 발생할 무질서를 무엇이 막을 수 있을까? 정말로 인류는 다가올 재앙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일어나지 않기를 어렴풋이 바랄 뿐일까?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은 없을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이제 남아 있지 않을까?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대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저자는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를 쓰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잠재적 변수를 담아 놓았다. 정답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교육'과 '노동'에 대한 그의 태도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본다. 쓸모없음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다. 시험 기간에 엔트로피를 최대로 축적했다가 끝나고 나면 모두 비워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소모적이다. 그러한 교육이 반복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필요한 정보만 취하려고 하는 선별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그들은 다가오는 모든 정보에 회의적으로 변한다. "그게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데?" 다시 말해, 정보에게 자신의 쓸모를 따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식은 아무 것도 대답하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은 모든 것을 취사 선택하려는 어른으로 자란다. 하지만 누가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할까? 다른 어른들 역시 "너의 성공"이 중요하다고 주입 당하면서 자라온 것을. 누군가의 성공에는 다른 이의 실패가 전제되어 있고, 누군가의 휴식은 또 다른 사람의 노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을. 수십 년간, 아니 수천 년간 인류를 지탱해 온 그 잘난 이기심의 법칙이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을 뿐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이타심이라는, 와 닿지도 않는 교훈을 내세우지 않겠다. 대신 '엔트로피의 순환'이라는 가치를 믿고 싶다. 정말로 물질과 에너지가 한 방향으로만 간다면, 나의 엔트로피를 필요 이상으로 축적할 때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물질의 총량이 지나치게 축적되었다면,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방식은 쇼핑, 기부, 콘서트 가기, 도서 구매, 후배에게 밥 사주기 등 다양한 방식이 될 것이다. 지식의 총량이 필요 이상으로 있다면, 그것을 나누어야 한다. 글쓰기나 강의, 아니면 대화와 경청이 좋은 방법이 되리라. 행복의 총량이 나에게 넘친다면, 기꺼이 흘러 보내야 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자. 그리고 누군가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보자. 나를 떠난 엔트로피가 어떤 식으로 역사를 작동시킬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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