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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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듯한 교육을 받고, 반듯한 직장과 가정을 가진 남자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의 인생에 대해 무난하다, 평범하다, 혹은 성공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삶에는 치명적인 균열이 있다. 남들이 절대 감지하지 못하는 비밀로 인해 그는 무너진다. 남자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유년 시절에 목격했던 폭력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한다. 평범하지 않은 요소가 자신을 침범할것이 두려워 도망쳤지만, 이미 폭력은 남자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시대 상황 역시 그러한 인식을 바꿔놓았음도 드러난다. 물론 카렐 차페크는 이 작품에서 남자의 내면을 그리는 데에 더 집중한다. 


 『평범한 인생』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지점은 20장부터이다. 지극히 평범하다고 여겨진 남자의 삶에 균열이 시작되고,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그동안의 삶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평범한 인생이 대체 무엇인가?"이다. 20장이 시작하자마자 서술자는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올바르고 유일한 목표란 가능한 한 출세하여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기뻐하는 것"이라고 쓰고, 바로 그 부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서전을 쓰고 있는 남자는 철도 공무원에서 시작하여 고위 관료의 지위까지 얻는다. 하지만 승진, 나아가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사건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어쩌면 남들보다 우월해지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 때문에 높은 지위를 향해 달려갔던 것일까? 


 액자 소설 속의 주인공은 분명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철도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이고 명예로운 지위를 가졌고, 역장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사랑과 사회적 평판을 모두 얻었다. 평범하다는 말에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함축되어 있다. 즉,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어떤 이에게 평범한 인생은 과분하고, 또 다른 이에게 평범한 인생은 모욕이다. 서술자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특별한 것이 없는 인생으로 생각할까? 아니면 괴물과도 같은 사람이었으나 세상 속에 어떻게든 조화롭게 지낸 사람으로 여길까? 적어도 또 다른 자아와 싸우는 장면만 보면 후자로 보인다.


 카렐 차페크는 후기를 통해 형제애와 다양성을 외쳤고, '나'가 아닌 '우리'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평범한 인생』은 분명 따뜻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액자의 바깥에는 정원이 있고 담당 의사는 진심을 다해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세상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SF 문학의 대가로 여긴 카렐 차페크의 새로운 면이 담긴 소설이기도 하다. 특별한 소재가 없어도, 인간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여러 모로 씁쓸한 면이 남는다. 유년 시절의 어긋난 기억이 끝내 개인을 괴롭히는 모습이 그렇고, 또 다른 자아가 마치 완벽한 타인처럼 남자를 얽매는 묘사들이 그렇다. 그것이 평범한 인생이라면, 인간의 삶은 얼마나 더 절망적이어야 할까?


 타인을 이해하는 시작점은 결국 자신에게 있는 법이다. 아무리 감정을 이입하고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다 해도, 상상력의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을 배제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우리' 안에는 반드시 내가 있다. 나를 뺀다면 '너희'나 '그들'일 뿐, '우리'가 아니다. 자신이 아무리 미워도, 타인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보여도 어떻게든 자신과 함께 가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타인의 모습이 곧 나의 일부이다. 누군가를 항상 용서할 필요는 없어도, 그들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본다면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삶이란 두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니까. 그 싸움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려면 자신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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