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 현실에 대한 통합적 비전의 등장
에르빈 라슬로 지음, 변경옥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연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었다. 주말내내 이불빨래며 눅눅해진 집안을 말리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소파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며 커피한잔을 마시다 보니 그제서야 어깨죽지가 욱신거린다. 일기예보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기상청도 지금쯤 한숨 돌리고 있겠지. 지질 특성상 비가 내리기 무섭게 지하로 빠져버린다는 제주도에서조차 유례없는 물난리를 겪었다고 할 정도니 이번 장마아닌 장마가 특이하긴 한가 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는 10여전 전부터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미 예견되어진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견되어진 상황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렇다쳐도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대책있는 예견'을 기대해 본다.  

 과학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광범위해서 명쾌하게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저자는 과학에 대해 관찰을 하고, 측정하거나 계산하여 기록하는 학문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였다. "과학은 인간이 세계와 세계속의 자신을 이해하려는, 영원한 추구의 일환이다. p158 " 라는 주장인데 한마디로 과학은 '의미'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대한 과학자들, 현대 과학의 창시자들은 대부분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신학,문학,예술등 다방면에 능통했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영성과 과학 두 분야있어서 통합적 사고를 한 사람들이었다. "의식과 정보가 스며들어 있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으로 진화하는 우주, 이것이 다시 마법에 걸린 우주다. p.160"

흔히 인체를 '소우주'라고 표현한다. 인체의 신비스러움과 긴밀성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생각한다. 우주 또한 놀라운 긴밀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기하게도 인간(특히 인간의 마음)과 우주 사이에는 더 큰 긴밀성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사물들을 연결하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아카샤' 라고 이름지었다. 아카샤는 창조가 시작될 때 유일하게 존재하였던 만물의 기초가 되는, 만물이 되는 매질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생애의 흔적들이 아카샤장에 보존됨은 물론이고, 인간의 의식이 아카샤장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들에게 열린 상태', '영계 소통', '환생'에 이르기까지 초우주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책의 반정도를 차지하는데 상당한 이해력을 요하고 있다.    

우리 인간을 '거대한 생명공동체'의 일부로 보았을 때,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가 맡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그것의 본절적 가치를 위해, 다른 것들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를 파괴한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의 무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쟁점은 인간-지구-우주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에 대한 것으로 영성과 철학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였다.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대해 기본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책 읽는 내내 이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했다.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다다르니 결국은 '현실', 우리앞에 직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희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 기후'라는 말도 자꾸 듣다보니 익숙해지려 한다. 그것이 두렵다. 바닷가에 해파리가 넘쳐나고, 가끔씩 거대오징어 같은 특이한 바다 생물의 출현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이상의 파괴를 멈추고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리 후손을 위해 이 행성을 보존해야 겠다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식을 다 키우시고 뒤늦게 이웃들과 여행계를 만들어서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지신 친정엄마, 이름하여 '전국일주계', '해외여행계', '등산동호회' 가입한 모임만 서너개는 되시는 것 같다. 최근에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오신 엄마의 소감인즉,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하는데... 힘들다." 하는 것이다. 함께 다녀오신 계원들 대부분이 60대 이시다보니 지병인 고혈압,당뇨,신경통등 장기 복용하는 약 한가지쯤 없는 분이 없고, 여행이란 것이 즐거움과 함께 약간의 스트레스도 동반하는지라 갑자기 뒷골이 땡긴다는 분도 계셔서 일행들이 모두 초긴장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 세대의 '효도관광'은 힘겨웠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요 노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도 젊을 때 해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절대 공감한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 다가올 미래에 대한, 삶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의 행진> 이 책은 두려움 없는 세 젊은이의 질주를 그린 내용이다. 한몫 잡아서 키리바시 공화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미타 소이치로, 뜬구름 같은 꿈을 꾸어도 황당하지 않은 사기꾼의 기질과 천재적인 두뇌를 모두 갖춘 케릭터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요코야마 겐지, 너무 이른 나이부터 어두운 세계에 발을 담근 말하자면 양아치 같은 인생을 살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구로가와 치에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아버지의 돈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 당찬 케릭터다. 아버지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그저 그렇게 괜찮아 보이는 생활을 선택하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 우연한 계기로 뭉친 세사람이 야쿠자와 중국계 조폭과 함께 거액의 돈을 둘러싸고 벌이는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내용이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치명적으로 다친 사람이 없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끝맺음이 좋았다. 전체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낯설지 않은 구성임에도 여전히 특이하고 신선한 느낌이다. 가끔식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은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서술형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유쾌한 반전을 상상하면서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거칠것이 없는 세 청년이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속이 시원했다.  

젊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솔직히 스물 다섯에 무얼 했었는지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 스물 다섯은 오래전 흘러가버린 시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젊음' 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절대적'인 잣대로 젊다 아니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인 예로 들리긴 하겠지만, 지난 설날에 시집의 친척 할머니댁에 인사를 갔었다. 그분이 내 어머니의 연세를 물으시길래 예순 몇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60대면 한창때구먼~ 내가 지금 80이 넘었는데 60이면 한창때지 암... " 이라고 하시는데 순간 웃음이 터져나와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하루... '지금'이 지나버리면 언젠가 이때가 막연한 그리움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비를 맞아도 궁상스러워 보이지 않고, 시내를 질주하여도 이상하기보다 생기 넘쳐 보이는 그런 젊음은 없지만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한 싱싱한 나무다. 화려한 꽃이 지고 난 뒤, 더욱 윤기나는 잎을 가졌고 어느새 열매를 맺은 나무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젊음'은 특정 나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젊게 살고,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돌아오는 주말에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시내를 활보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카소 : 무한한 창조의 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5
프란체스코 갈루치 지음, 김소라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뜬금없이 유명한 화가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피카소나 고흐,밀레,모네... 이런식으로 대답이 나올 것 같다. 너무나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은 화가 피카소, 하지만 유명세에 비해 그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는 대중은 얼마나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피카소의 그림은 너무 난해하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얼굴과 형체조차 분명하지 않은 그림을 대할때면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란 여간 여려운 일이 아니다. 그림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결국 그림이 그려지게된 배경과 화가의 내면세계등 그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짐작대로 피카소의 작품이 처음부터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초기작품에는 궁핍했던 그의 생활, 암울했던 상황이 '블루'톤으로 그려졌는데 이 시기를 '청색시대'라고 부른다. 놀랍게도 왜곡되지 않은 멀쩡한 형체의 인물화와 자화상도 다수 보인다. 후에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몽마르뜨 언덕 중턱에 '세탁선'이라는 목조건물에서 작품활동을 하였다. 이로써 점차 청색시대를 벗어나 '장밋빛 시대'를 열었다. 밥은 굶어도 서커스 구경은 매일가다시피 하였다는 일화를 통해 서커스를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한 구경거리보다는 서커스 단원들과 그들의 일상을 다양한 색조변화를 통해 신비스럽게 표현하였다. 

피카소는 한마디로 다재다능하면서 실험정신이 강한 예술가였다. 문학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으로 시 쓰기를 즐겼다는 점도 특이하거니와 미술 분야에 있어서도 조각 작품과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노년에 가장 돋보이는 작품 활동은 바로 '모사화'를 그린 점이다. 거의 강박적이라고 표현해도 좋은 만큼 작업실에 틀어박혀 회화사를 통째로 빨아들여 섭렵하려는 시도처럼 많은 모사화를 쏟아내었다. 거장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살짝 옮겨도 보고 주제를 바꾸기도 하는등 작품을 새롭게 재편성하여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았다.

피카소의 작품에는 철학이 담겨 있다. "진실이란 캔버스 저 너머에서 형상화되는 것이다. 결코 캔버스 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진실은 캔버스와 현실의 관계 속에 드러난다."p.86 피카소의 작품속 주인공들이 입체적이면서 뒤틀린 형태로 보이는 것은 사실주의적인 작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만 그린 것이 아니라 실체를 다각도에서 본 형상을 평면에 담아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인에게 난해하기만한 피카소의 작품이 미술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점이 바로 사실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회화세계를 열었다는 것이다. 

<피카소- 무한한 창조의 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피카소의 일생을 담고 있다. 세계 미술사에 굵은 획을 그은 긴 설명이 필요없는 예술가의 삶 답게 화보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품 중심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무명시절의 우울함에서 자신감 넘치는 전성기, 그리고 불후의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눈'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작품과 시대적 배경에 충실하다보니 피카소의 인간적인 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은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고, 또한 다양한 양식을 시험하고 있어 비평가들로 부터 일관성이 없고 변덕스럽다는 혹평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생전에 이미 예술가로서의 무한한 명예를 얻었으면서도 생을 통틀어 단 한순간도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의 열정은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큰 자극이 되고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배경은 1958년 일본 도쿄의 한 달동네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12달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인류 공통의 적을 만들어 인간들끼리의 전쟁을 없어지게 함으로써 지구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아이들, 집에 하나뿐인 우산을 잃어버리고 하루 종일 우산을 찾아 헤메는 소년, 문학공모전에 매번 떨어져 낙심해 있다가 잡지에 연재하던 아동소설의 팬을 만나면서 글 쓰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소설가등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낯익고 친숙하다. 책읽는 중간중간 '연탄길'이나 'TV소설'이 떠오르면서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소설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용을 음미하면 할수록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향수'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 온다. 

8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치코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네 아이를 키우는 억척맘이다. 그녀의 이웃인  빵집 아주머니는 팔다 남은 빵을 마치코에게 건네며 언젠가 마치코의 아이들이 출세하면 아주머니의 가게에서 빵을 사먹으라며 시원스레 웃는다. 두부 가게 할아버지는 부서진 두부만 반값 이하에 팔곤 했는데 가끔씩은 멀쩡한 두부를 일부러 부셔서 도저히 돈 받고는 못팔겠다며 건네주곤 한다.  마치코의 이웃들은 그녀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낫다뿐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은 아닐것이다. 뒷장면에서 마치코는 셋째 아들을 시아주버님댁으로 입양보내야하는 선택을 하게되는데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치코의 심정과, 혼자만 큰아버지댁에 남아야 하는 셋째, 그리고 형제와 헤어지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다. 하지만, 헤어짐이 부각되어 막연하게 '슬픈' 내용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이르다. 마치코는 떠나보낸 아이와 남은 가족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아픔을 딛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12월에 등장하는 야마구치 시로와 미에코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운명에 이끌린 것처럼 서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키워갈 때쯤 두 사람다 '낯익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신뢰를 느낀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디서 본듯한 낯익은 모습이라면 왠지 서먹함보다는 대화가 쉽게 풀리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이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사랑하는 연인들은 실제로 오누이처럼 보일만큼 닮은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도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 결과적으로 미에코는 야마구치 시로에 대한 낯익음이 어릴때 마음을 주면서 키웠던 소중한 강아지 '시로'임을 깨닫게 되고, 야마구치 시로는 미에코를 통해 어렸을 때 키운 고양이를 떠올린다. 첫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애완동물은 정말 심하지 않나. 거의 반전이라해도 좋은만큼 기발한 결말이었다. 

이듬해 1월의 이야기, 시게루는 사촌인 켄타형으로부터 야구 캐러멜에 들어있는 득점 카드를 선물로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점수를 채운 시게루는 경품을 받기위해 우편함에 득점카드를 넣고 날마다 망원경이 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뜻밖에도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며칠동안 풀이 죽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다. 어느날 제과회사 직원이라는 아저씨가 직접 망원경을 들고 찾아온다. 회사가 도산되어 정리하던 중이었지만 득점 카드를 모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아저씨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어린아이지만 고객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회사가 다시 재건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책임있는 기업인의 모습,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무장한 일본의 모습이 지금의 경제를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릴때마다 부정적인 편견을 많이 가졌었는데 책을 통해 두 나라의 정서가 얼마나 비슷한지 깨닫고는 많이 놀랐다. 굳이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지 않아도 소설책 한권으로 이토록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니.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 과거의 힘든 기억들은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남의 나라가 어떤 어려움을 이겨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일본 또한 패전국가로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을지, 그들의 노력과 성과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당시 도쿄의 어디서든 도쿄타워가 지어지는 모습이 훤히 보였고,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던 서민들에게 도쿄타워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 주었다. 석양은 스러짐이 아니라 오늘을 마감하는 작은 행복이며, 내일을 향한 희망인 것이다. 

  "세상이 어찌 될려고...  이런일이...  먹고 살기 힘들었어도 예전이 살기는 좋았는데... " 피죽도 배불리 못먹었다던 시절이 뭐이 그렇게 살기 좋았다는건지 예순을 훌쩍 넘긴 친정 엄마의 말을 이해하려면 아직 더 많은 세월을 살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패륜범죄가 넘치고 이웃과 이웃이 정없이 사는 요즘, 먹고 사는 것은 과거보다 더 풍족함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늘었다는 사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월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삶에 있어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되새겨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주는 축소지향의 일본인 세트 - 전2권 - 우리 아이들을 위한 지식의 샘
이어령 지음, 김준연 그림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2007.7.31일 미하원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반가운 마음이야 당연하지만 한국도 일본도 아닌 미하원에서 어찌 결의안이 채택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다. 알고보니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고 당장 뭔가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란다. 그러나, '위안부 결의안'은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다.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일본의 잘못이 크다는 의미, 비록 돈칠이긴 해도 국제사회에서 한목소리 하는 일본에게 가장 큰 우방인 미국이 일침을 가한다는 의미, 일본으로서는 분명 압박을 느낄 것이다. '위안부 결의안'을 위해 애써주신 많은 분들과 오랫동안 고통속에 사셨던 할머니들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셨기를 바란다. 

 한일합방 직후에 태어나신 조부모님과 해방둥이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일본이란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라고 하였던가. 요즘 말로는 '악플'보다 더 무서운게 '무플'이라고 한다던데...  솔직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10년도 훨씬 전에 우연히 이어령님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 책이 이번에 청소년판으로 나왔다고 하여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독자의 마음을 벌써 알고 있다는 듯이 책의 첫머리부터 다독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운 상대라도 알아야 한다고,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한국인은 경치 좋은 곳을 발견하면 정자부터 짓고, 일본인은 풍경 그대로를 마당에 재현한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일본식 정원으로도 모자라 분재와 분석, 꽃꽃이를 통해 풍경을 축소화하였다. 자연물에 나타난 축소문화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을 손안에 움켜쥠으로써 지배하고자하는 욕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문학에 있어서는 6센티의 '작은 거인'이 등장하는 전래동화와, 시조의 1/3 길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하이쿠라는 시, 그리고 '길다는 뜻'의 '장편'이 아닌 손바닥에 들어갈만큼 짧다는 의미의 '장편'을 소개하였다. 원고지 2-3매 분량의 초단편 소설이 존재하는 나라 일본, 정말 신기하다.  

일본인이 축소지향적인 면으로 인해 대박을 터트린 예를 보자.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간 둥근 부채는 일본인에 의해 쥘부채로 새롭게 태어났다. 작은 부채를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긴장과 집약의 미, 축소지향의 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독일에서 들여온 우산은 접이식으로 바뀌었다가 삼단으로까지 축소되어 역수출 되었다. 뿐만아니라 미국에서 발명된 트렌지스터를 휴대용으로 새롭게 생산하여 누구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전자제품으로 만든 만든 사람도 일본인이다. 일본하면 '모방의 나라'로 일컫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서양 문물을 일찌기 받아들여 필요한 것만 철저히 자기것으로 만든 나라, 정말 대단하다.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여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로써 축소지향의 일본이 확대지향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된다. 잘못된 확대는 '태평양 전쟁'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고 다시 '확대지향은 일본의 길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본인은 자신들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철저히 반성하고 칼로 혹은 돈으로 이루려는 확대지향을 버려야 한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이 책은 80년대초 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어 그들의 공감을 얻어냈고, 일본과 일본인을 알기 위한 추천도서로까지 인정받은 책이다. 일본식 고유명사가 낯설고 어렵기는 하지만 초등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전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다고 본다. 단락이 끝날때마다 만화로 핵심을 짚어주는등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기위한 구성과 편집이 돋보인다. 내용면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일본이 축소지향적이며 또한 축소지향적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또한 일제시대를 경험한 때문인지 이따금씩 과격한 말투와 강하게 밀어붙이는 듯한 주장도 보인다. 그러나, 무조건 깍아내리고 흠집을 내려한 것이 아님을 또한 편협한 시선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관점이 '축소지향적' 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작년 8.15때 고이즈미 일본전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다는 소식에 안그래도 더운 날씨에 황당하기까지 하였다. 한중 양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재임기간 툭하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더니 정말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데 꼭 그래야만 했었는지. 그러나, 노련한 정치가는 분명히 꿰뚫고 있었다. 다수의 일본인이 자신을 주시하며 지지하고 있음을. 그런 행위가 일본인을 더욱 결속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당시 일본의 여론은 역대 어느 총리보다 고이즈미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내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은 아직도 '확대지향의 실패'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아니 도리어 지나치게 당당하다.  


 한국을 마치 피해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듯이 매도하는 일본, 50년전 할아버지의 잘못을 들춰내가며 죄없는 손자에게 느닷없이 죄를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잘못이 조금도 없다하고,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고 있으니 '과거지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과거로 부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을 자극해 온 것이 누구였던가 떠올려보라. 요즘은 '민족'이라는 말을 못쓰게 한다지만 수많은 외세의 침략속에서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 것은 바로 굳건한 '민족의식'을 이었음을. 그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는 민족주의를 계승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포용적인 '진화된 민족주의'를 말함이다. 일본도 그들만의 문화적 본질을 이해하고 더 커기지위해 작아질 줄 아는 '진화된 축소지향'을 꿈꾸었으면 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08-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으로 다시 나왔군요.저는 1982년 출간된 재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애들 읽어보라고 사야 할 것 같군요.
20년도 더 전에 '축소지향' 읽으며 이어령씨는 참 분석력이 뛰어나다 감탄했어요.
리뷰 잘 읽고 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