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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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배경은 1958년 일본 도쿄의 한 달동네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12달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인류 공통의 적을 만들어 인간들끼리의 전쟁을 없어지게 함으로써 지구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순수한 아이들, 집에 하나뿐인 우산을 잃어버리고 하루 종일 우산을 찾아 헤메는 소년, 문학공모전에 매번 떨어져 낙심해 있다가 잡지에 연재하던 아동소설의 팬을 만나면서 글 쓰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소설가등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낯익고 친숙하다. 책읽는 중간중간 '연탄길'이나 'TV소설'이 떠오르면서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소설의 이야기는 결코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용을 음미하면 할수록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향수'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 온다. 

8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마치코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네 아이를 키우는 억척맘이다. 그녀의 이웃인  빵집 아주머니는 팔다 남은 빵을 마치코에게 건네며 언젠가 마치코의 아이들이 출세하면 아주머니의 가게에서 빵을 사먹으라며 시원스레 웃는다. 두부 가게 할아버지는 부서진 두부만 반값 이하에 팔곤 했는데 가끔씩은 멀쩡한 두부를 일부러 부셔서 도저히 돈 받고는 못팔겠다며 건네주곤 한다.  마치코의 이웃들은 그녀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낫다뿐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은 아닐것이다. 뒷장면에서 마치코는 셋째 아들을 시아주버님댁으로 입양보내야하는 선택을 하게되는데 자식을 떠나보내는 마치코의 심정과, 혼자만 큰아버지댁에 남아야 하는 셋째, 그리고 형제와 헤어지게 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찡하다. 하지만, 헤어짐이 부각되어 막연하게 '슬픈' 내용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이르다. 마치코는 떠나보낸 아이와 남은 가족을 위해, 이웃들을 위해 아픔을 딛고 더욱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12월에 등장하는 야마구치 시로와 미에코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떤 운명에 이끌린 것처럼 서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키워갈 때쯤 두 사람다 '낯익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고, 신뢰를 느낀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디서 본듯한 낯익은 모습이라면 왠지 서먹함보다는 대화가 쉽게 풀리는 것과도 같다. 이것은 이성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사랑하는 연인들은 실제로 오누이처럼 보일만큼 닮은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도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 결과적으로 미에코는 야마구치 시로에 대한 낯익음이 어릴때 마음을 주면서 키웠던 소중한 강아지 '시로'임을 깨닫게 되고, 야마구치 시로는 미에코를 통해 어렸을 때 키운 고양이를 떠올린다. 첫사랑까진 아니더라도 애완동물은 정말 심하지 않나. 거의 반전이라해도 좋은만큼 기발한 결말이었다. 

이듬해 1월의 이야기, 시게루는 사촌인 켄타형으로부터 야구 캐러멜에 들어있는 득점 카드를 선물로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나머지 점수를 채운 시게루는 경품을 받기위해 우편함에 득점카드를 넣고 날마다 망원경이 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뜻밖에도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며칠동안 풀이 죽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된다. 어느날 제과회사 직원이라는 아저씨가 직접 망원경을 들고 찾아온다. 회사가 도산되어 정리하던 중이었지만 득점 카드를 모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아저씨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낀다. 어린아이지만 고객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회사가 다시 재건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준 책임있는 기업인의 모습,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무장한 일본의 모습이 지금의 경제를 이끈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라는 나라를 떠올릴때마다 부정적인 편견을 많이 가졌었는데 책을 통해 두 나라의 정서가 얼마나 비슷한지 깨닫고는 많이 놀랐다. 굳이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지 않아도 소설책 한권으로 이토록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다니. 지금의 우리를 있게한 과거의 힘든 기억들은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남의 나라가 어떤 어려움을 이겨냈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일본 또한 패전국가로서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을지, 그들의 노력과 성과만큼은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당시 도쿄의 어디서든 도쿄타워가 지어지는 모습이 훤히 보였고,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던 서민들에게 도쿄타워는 '희망'의 상징이 되어 주었다. 석양은 스러짐이 아니라 오늘을 마감하는 작은 행복이며, 내일을 향한 희망인 것이다. 

  "세상이 어찌 될려고...  이런일이...  먹고 살기 힘들었어도 예전이 살기는 좋았는데... " 피죽도 배불리 못먹었다던 시절이 뭐이 그렇게 살기 좋았다는건지 예순을 훌쩍 넘긴 친정 엄마의 말을 이해하려면 아직 더 많은 세월을 살아보아야 할 것 같다. 다만,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패륜범죄가 넘치고 이웃과 이웃이 정없이 사는 요즘, 먹고 사는 것은 과거보다 더 풍족함에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늘었다는 사실이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월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이고 삶에 있어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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