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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평점 :
자식을 다 키우시고 뒤늦게 이웃들과 여행계를 만들어서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지신 친정엄마, 이름하여 '전국일주계', '해외여행계', '등산동호회' 가입한 모임만 서너개는 되시는 것 같다. 최근에 3박 4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오신 엄마의 소감인즉, "여행도 젊을 때 다녀야 하는데... 힘들다." 하는 것이다. 함께 다녀오신 계원들 대부분이 60대 이시다보니 지병인 고혈압,당뇨,신경통등 장기 복용하는 약 한가지쯤 없는 분이 없고, 여행이란 것이 즐거움과 함께 약간의 스트레스도 동반하는지라 갑자기 뒷골이 땡긴다는 분도 계셔서 일행들이 모두 초긴장을 하셨다고 한다. 어머니 세대의 '효도관광'은 힘겨웠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요 노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행도 젊을 때 해야한다는 엄마의 말에 절대 공감한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 다가올 미래에 대한, 삶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밤중의 행진> 이 책은 두려움 없는 세 젊은이의 질주를 그린 내용이다. 한몫 잡아서 키리바시 공화국으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가진 미타 소이치로, 뜬구름 같은 꿈을 꾸어도 황당하지 않은 사기꾼의 기질과 천재적인 두뇌를 모두 갖춘 케릭터다.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요코야마 겐지, 너무 이른 나이부터 어두운 세계에 발을 담근 말하자면 양아치 같은 인생을 살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구로가와 치에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아버지의 돈을 훔치려는 계획을 세운 당찬 케릭터다. 아버지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그저 그렇게 괜찮아 보이는 생활을 선택하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 우연한 계기로 뭉친 세사람이 야쿠자와 중국계 조폭과 함께 거액의 돈을 둘러싸고 벌이는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내용이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치명적으로 다친 사람이 없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끝맺음이 좋았다. 전체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달라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낯설지 않은 구성임에도 여전히 특이하고 신선한 느낌이다. 가끔식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감은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서술형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유쾌한 반전을 상상하면서 읽은 사람이라면 약간 실망했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거칠것이 없는 세 청년이 질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속이 시원했다.
젊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솔직히 스물 다섯에 무얼 했었는지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 스물 다섯은 오래전 흘러가버린 시간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젊음' 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절대적'인 잣대로 젊다 아니다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극단적인 예로 들리긴 하겠지만, 지난 설날에 시집의 친척 할머니댁에 인사를 갔었다. 그분이 내 어머니의 연세를 물으시길래 예순 몇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60대면 한창때구먼~ 내가 지금 80이 넘었는데 60이면 한창때지 암... " 이라고 하시는데 순간 웃음이 터져나와 곤란했던 기억이 있다.
하루하루... '지금'이 지나버리면 언젠가 이때가 막연한 그리움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비를 맞아도 궁상스러워 보이지 않고, 시내를 질주하여도 이상하기보다 생기 넘쳐 보이는 그런 젊음은 없지만 여전히 푸르름을 간직한 싱싱한 나무다. 화려한 꽃이 지고 난 뒤, 더욱 윤기나는 잎을 가졌고 어느새 열매를 맺은 나무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젊음'은 특정 나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젊게 살고, 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돌아오는 주말에는 남편과 팔짱을 끼고 시내를 활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