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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마음 - 아름다움에 대한 스물여섯 편의 에세이
이남호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일요일만 되면 왠종일 방에서 뒹굴뒹굴 거리고, 그러다가 컴터 게임하고, 다시 TV 보고 어휴 꼴보기 싫어. 못살아~~" 친구들과 모여 수다떨던중 한 친구가 남편에 대한 불만을 털어 놓는다. 대학 다닐때만 해도 과대표를 맡아 솔선수범하는등 매사에 의욕적이었던 친구다. 결혼은 선택일 뿐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고야 말겠다던 그 친구는 전업주부로 둘째를 임신중이고,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부르짖던 나는... 여전히 일에 매달려 산다. 인생은 왜 이토록 잔혹한 것일까? 아니면 아이러니한 것일까?
하여간 시부모님 모시고 두돌배기 딸아이 키우며 주말만큼은 숨통을 좀 트고 싶은데 남편이란 사람은 왠종일 피곤하다며 방바닥만 긁고 있다는 것이다. 진짜 피곤하다면 죽은 듯이 잠이라도 자던가 하지. 입맛 다실것 대령하라는둥, 방금 옆에 있던 리모컨 못봤냐는둥 사람을 귀찮게 한다는 것이다. 친구의 입장은 전적으로 이해가 된다. 그녀의 남편은 변화가 필요하며 내 친구는 위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친구의 남편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내가 꿈꾸는 주말의 풍경이 그와같기 때문이다. 주말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 소망하건데 일주일 밀린 빨래 제쳐두고, 대청소 미루고,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때우면서, 배깔고 뒹굴뒹굴 책 읽으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
<일요일의 마음> 이 책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의 번잡스러움 뒤에 선물처럼 다가온 일요일, 세상일로부터 한걸음 물러서서 마음이 고요해지는 '일요일의 마음'으로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 보았다. "내가 만난 아름다움들은 대개 '강가의 맑은 바람이나 산속의 밝은 달 같은 것이어서 아무도 금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써도 다함이 없는, 소동파 <적벽부>' 것들이다. p.227 " 그렇다!! 일요일의 마음으로 돌아본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다름아닌 시와 그림과 음악, 소설, 영화와 같은 평범한 일상과 연결된 것들이었다. 때로는 고요함, 상상력, 슬픔조차도 아름다움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산과 암자, 나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오월의 어느 하루는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무위의 시간이었지만, 나의 모든 감각과 사유와 내면은 활발하게 움직인 바쁜 하루였다. 아마도 감각과 사유와 내면에도 피부가 있다면, 그 피부는 열탕에서 갓 나온 것처럼 발갛게 상기되었을 것이다. p.35" 사람은 저마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과 충전하는 방식이 다르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대중에게 주목받으면서 힘을 얻고, 집에 있으면 오히려 에너지가 소비된다. 반대로 내성적인 사람은 바깥활동을 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조용히 쉬는 시간에 에너지가 충전된다. 어느 한쪽으로 성향이 분명하더라도 때로는 타협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타협이란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세상과 타협하라는 말은 더더구나 아니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가족을 위해 조금만 배려를 해달라는 것이다.
집안일을 덮어두고라도 소망하는 일요일을 보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기전 우리 부부에게는 '주말 오전'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정오가 지나서야 항상 눈이 떠지곤 했으니 말이다. ^^;; 하지만, 아이들은 확실하게도 에너지가 넘치는 존재다. 녀석은 이번 주말에도 어김없이 우리 식구들중 가장 먼저 일어나 내 눈꺼풀을 들어올리면서 "엄마, 물~~" 혹은 밥줘, 똥~!! 이라고 외치면서 나를 깨울 것이다. 그리고, 주중에 어디 갈거냐고 꼬치꼬치 묻고 다짐 받은 사항들을 모조리 기억해 내어 당일의 행선지를 읊을 것이다. 그래, 내 새끼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 이번 주말에도 무거운 눈꺼풀을 힘껏 들어올려 보자!! 아이의 웃는 모습이야말로 가장 성능좋은 충전기이며, 세상을 밝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빛이다.
"장욱진 화백의 후기 그림들은 유치원 아이들의 그림과 흡사하다. <원두막>이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지고 귀하다고 할말 수 있다면, 그것은 이 그림이 어른들이 그린 그림의 높은 경지를 지나서 도달한 천진함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p.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