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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몇년전 본사에 교육갔을 때 일이다. 업무상 교육받는 이들이 거의 여직원이었는데 점심시간에 저마다 지갑을 꺼내든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명품장지갑에서 키티지갑까지 ^^;; 지갑은 돈이나 카드를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악세사리였다.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내 지갑을 보고 한마디씩 하였다. "왠만하면 지갑하나 새로 장만하시죠."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다. 10년도 넘게 써서 낡을대로 낡은 검정색 중지갑. 몇번인가 새로운 지갑을 장만했었는데 녀석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새지갑은 나를 떠나고 늘 서랍에 처박아둔 낡은 지갑을 다시 꺼내 들게 되었던 것이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돈이 아까운게 아니라 '지갑' 자체가 아깝다는 우스겟소리처럼 나의 낡은 지갑에 눈독을 들이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속편하다. 남들에겐 궁상맞아 보이기도 할것이고, 때론 센스없는 아줌마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나와 함께 해온 세월이 얼마던가.
<꽃밭> 이 책은 표지와 삽화가 너무 이뻐서 첫눈에 끌린 책이다. 저자 최인호, 굉장히 낯익은 이름인데 누구였더라.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겨울여자> <상도> <해신>... 이쯤되면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을까. 예전에 <별들의 고향>이 100만부가 팔려나갈 무렵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책의 뒷표지에 작가의 사진을 실었는데 이것이 작가 사진이 게재된 최초의 사례였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그림을 그린 김점선님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저자인 최인호님과 나란히 이름 석자로 표지를 장식한 점이 눈에 띈다. '책머리'는 저자가, 책의 말미는 '그린이의 말'로 끝맺음 했을 정도로 저자와 그림을 그린이의 긴밀함이 돋보이는, 글과 삽화가 잘 어우러진 책이다.
'수필'은 계획적이지 않고, 형식이 없는 인간이 활자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분야의 글이다. 소재에 있어서도 가릴 것이 없다. 아내와 함께 불렀던 노래, 물과 태양, 편지, 한강, 미술관, 서재등 일상의 모든 것이 소재가 된다. 놀라운 것은 평범하던 일상도, 무의미하게만 생각되던 소재들도 글 쓰는 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하는 시의 한부분처럼,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길들여 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처럼 사람과 나, 사물과 내가 특별한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음을 의미한다. '수필적 관점'에서 보면 낡은 지갑도 나와 인연을 맺은 소중한 존재가 된다.
인연에 대해 말하자면 누가 뭐라해도 사람과 맺은 인연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으랴? 수많은 작품을 통해 부와 명예를 이루었을 작가가 60평생을 막 지난 즈음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는 '아내'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여성예찬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책의 주된 내용 속에는 항상 '아내'가 등장한다. 너무 당연한가? ^^ 남편과 만난지 15년째, 이달에 결혼 8주년을 맞이 하였다. 남편은 예고도 없이 마줌마틱한 굵은 줄의 목걸이를 내 놓았다. 때맞추어 아파트 중도금 납입날짜가 겹치다시피 한데다 지난달에 라섹 수술비 카드 긁은게 청구되었구만 어디다가 돈쓰냐고 한소리 할려다가 말았다. 결혼할 때 심플한 커플링으로 시작하는대신 살면서 하나씩 해준다더니 이제서야 약속을 지킨다며... 그 말을 듣는 순간 잔소리 안하길 잘했다 싶었다. ^^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인생이란 신이 내려준 정원에 심은 찬란한 꽃들이 아니겠는가"
처음 책을 받았을때부터 띠지에 적힌 이 한마디가 자꾸만 머리속을 맴돈다. 수필은 일상의 시시콜콜함을 기록한 개인적인 감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필적 관점과 사고는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해주고, 밝고 아름답게 비추어 준다.
자~ 자~ 인생 별것 있어? 수필적으로 한번 이야기해 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