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 제1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권오단 지음 / 포럼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왜와 우리나라 사이에 큰 바다가 버티고 있는데 무슨 수로 우리나라를 침입해오겠습니까?"
"왜인들이 수천 척의 배를 몰고 침입해온다면?"
"에이,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습니까?" p.30(징조)
우리 역사를 되짚어 볼 때, 당시 군왕이나 정치를 이끌었던 무리들이 참으로 갑갑하게 느껴질때가 종종있다. 오늘날 재조명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불만스러운 유교를 시작으로 당쟁과 신분제도등 그에 파생된 정치 권력의 세습, 부패, 관리 등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토록 바로잡기 힘든 상황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찌하여 선견지명을 가지고 난세를 뚫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극히 드물며, 그들의 외침은 당파싸움 소리에 묻히고, 군주의 외면에 빛을 잃고 마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난(亂)' 이 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9년전, 북방에서 일어났던 야인들의 난이 일어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율곡은 이미 남쪽의 왜국과 북쪽 누르하치의 세력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율곡의 주장은 설마하는 황당함으로 들릴 뿐이었고, 때마침 북방에서는 '이탕개의 난'이 일어난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책적으로 야인을 앞세워 야인을 막는 방법을 써왔으나 국내 정세가 불안정한 틈을 노려 이탕개가 난을 일으킨 것이다. 북방에서 난이 일어나자 조정은 들끓기 시작한다. 대책을 마련하여 신속히 난을 진압하려 애쓰기보다는 북방수비를 맡은 총책임자가 누구의 천거를 받은 자인가를 가린다든지, 목숨 걸고 싸우는 장수를 도성으로 불러들여 죄를 물으라는등 한심한 작태를 보이고 있었다.
난세(亂世)에는 영웅이 나게 마련이다. 책에서는 백손과 바우 두 인물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배경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사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그려졌다면 백손과 바우는 말 그대로 허구의 인물들이다. 난세를 극복하려는 율곡의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조선을 지탱했다고 한다면 백손과 바우는 율곡의 명을 받들어 직접 난을 진압하는데 뛰어든 무장으로 책의 이야기는 이들에 의해 큰 줄기가 형성된다. 다만 안타까운것은 백손과 바우가 북방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도 미천한 신분이 드러나자 병졸들마저 그들을 욕하고 무시하였다는 점이다. 신분제도의 틀에 얽매여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를 통틀어 얼마나 큰 손실이었던가마는 그 뿌리깊은 악습은 군왕에부터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를 감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백손과 바우가 떠나고 적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을때, 땅을 치며 후회하는 모습이 어찌 그리 어리석고도 불쌍한지.
이탕개의 난이 평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율곡 이이는 시무 6조에 이은 십만양병에 대한 상소를 올린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짐작컨데 십만양병설은 어찌보면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었다. 군력 증강을 위해 군포와 세금을 충당키위해서 결국 피폐해진 민생을 쥐어짜는 방법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던 신분의 변화를 통한 군력의 증강, 다시말해 백손과 바우같은 이들을 찾아내는 것조차 '신분제'의 한계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율곡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유성룡이 천거하려한 '이순신'이란 인재를 훗날을 위해 숨겨두라고 한 것과 한달에 한번씩 '화석정' 기둥에 기름칠 하도록 유언을 남긴 것 두가지 뿐이었다.
'아! 경은 죽어서까지 충성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는구려.' 임금이 고개를 돌려 불타고 있는 화석정을 바라보았다. 억수 같은 빗줄기에도 꺼지지 않는 화석정의 불빛이 용안을 따라 흐르는 두 줄기 눈물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p.241 (후회)
임진년에 앞서 야인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정은 분열되어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우는데 급급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난을 진압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었기에 왜인들에 대한 경계가 느슨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을 불러온 빌미가 되고 말았다. 먼 미래에 대한 정책을 구축하기에 조선은 이미 '난세'에 접어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우리 역사에 언제 태평성대가 있었나 싶다. 세종시대와 영,정조시대를 제하고 나면 항상 난세였다. 근대사도 마찬가지고 현재도 다를바가 없다. 난세인지 말세인지 하여간 서민들 살기는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때마침 목전에 닥친 '수능'과 '대선'을 떠올리며 더욱 생각이 많아진 책이었다.
책의 시작은 닥쳐올 위기의 '징조'였고, 책의 마지막은 선조가 율곡 이이를 떠올리며 '후회'하는 장면이다. 역사를 되풀이 할 것인가. 역사를 새로 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