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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생각 수업
강욱 지음, 채원경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선생님은 그냥 그리면 된다고 하는데 뭘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어."
겨우 다섯살이었던 아이가 처음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를때는 정말 아무런 기대감없이 그냥 그리고, 만들고, 오리고, 붙이고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으면 하는 바램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보름도채 다니지 않아 아이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이유를 물으니 무엇을 그려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일요일 무엇을 했는지, 어린이날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등 주제를 정해주면 어떤 장면을 그려야할지 틀을 잡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섯살 아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한 장의 도화지에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버거울 수 밖에요.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표현하기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 특별한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요. ^^
까마귀는 정말 검기만 할까? 솔직히 저는 한번도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없습니다. 까마귀는 검기때문에 까마귀고 까마귀가 검지 않으면 어떻게 이름을 까마귀라고 지었을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연암선생은 아무리 까만 까마귀라도 어뜻 보면 엷은 노란빛이 감돌고, 연한 녹색일 때도 있으며 햇빛에 따라 푸르고 붉기도 하다고 주장합니다. 선입견에 사로잡힌 사람을 꾸짖으며, 좋은 문학은 결코 고정된 틀에서 한정된 모습을 띠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위의 글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연암선생은 관찰력이 상당히 뛰어난 분이셨습니다. 중국에 여행갔을 때 수레와 코끼리를 설명해 놓은 부분은 참으로 세세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무렵 조선은 수레가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형이라고 하여 수레를 적극 활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만 연암선생은 수레가 다니면 곧 길이 될터이라고 하며 뒤집어 생각하기 즉, 생각의 전환을 시도하셨던 것이죠. 또한 코끼리(당시에는 무척 귀한 동물이었답니다)를 통해 철학적 사고를 끌어낸 선생의 생각하기에 또다시 놀랐답니다.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하는 물음에는 조금의 주저함이 없이 '양반'들을 호통치는 것으로 시작하셨어요. <양반전>과 <호질>은 너무나도 유명하죠. 오히려 똥을 퍼는 직업을 가졌던 엄행수를 '예덕 선생'이라고 불렀어요. 엄행수는 정말로 마음속에 도둑질할 뜻이 없는 사람이며, 이것을 확장하면 성인의 경지라도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요. 정이 많고 의로운 거지 광문에 대한 이야기와 실력이 뛰어나지만 통역관밖에 하지 못했던 우상 선생에 대한 안타까움을 통해 연암 선생이 추구했던 가치에 대해 알 수 있었어요.
'<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생각수업' 이 책은 어떻게 글을 쓰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생각의 틀을 만들고,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생각'하도록 도와줍니다. <열하일기>라는 책은 상당히 어려운 책이랍니다. 저두 제대로 된 <열하일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글쓴이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이 책을 쓰셨다고 해요.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듯 구어체로 된 문장이 편하게 다가오네요. 연암 선생에게붙여준 '뚱보 선생'이라는 별명도 친근감이 느껴져요. ^^
여섯살이 된 아이는 올 여름에 다시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미술이 참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리기 수업이 있는 날이면 수업시간의 많은 부분을 이야기를 하면서 보낸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빠는 어떻게 하고 있었고, 엄마는 어디쯤 서서 무엇을 하고 있었고, 표정은 어떻다는등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대화를 하면서 아이의 생각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말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어른들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하지만 표현에 앞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생각 수업'이 필요한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