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
-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ㅣ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옛말에 열재주가 있는 사람은 처자식을 굶겨도 한가지 바른 재주가 있는 사람은 끼니 걱정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말 그대로 '옛말'이 되어버렸다. 책의 저자인 김병종화백은 화가인지 작가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화려한 필력을 자랑한다. 이분이 조선시대 태어났더라면 뛰어난 문인화를 그려내는 사대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산수화를 그려내고 고운 시조한수 곁들인 한폭의 문인화를 완성했으리라.
김병종화백이 화첩기행을 위해 선택한 곳은 남미다. 남미하면 '정열적인'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연상될만큼 강열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거리의 악사, 카니발, 축구, 삼바와 탱고등 무엇을 하든 열정적으로... 거리의 악사들은 왠종일 연주하면서도 지칠줄 모르고,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들은 마치 축제를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것처럼 원없이 카니발을 즐긴다. 너덜너덜한 축구공을 차면서도 얼굴가득 웃음이 가득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피곤에 찌들었을지언정 삼바와 탱고 리듬에 몸을 맡기면 생기가 솟는다. 남미의 태양은 다른 곳보다 더욱 뜨거운 것일까.
"이곳에는 가솔린이 없지만 차는 굴러다닌다. 식료품 가게에 먹거리는 없지만 모두 저녁식사를 차려낸다. 그들은 돈이 없고 가진 게 없다. 하지만 럼주를 마시거나 춤을 추러 간다. 난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p.103"
'정열'로 표출되는 남미의 이면에는 극심한 경제난에 허덕이는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엿보게 된다. 이른바 '쿠바 유머' 중 하나로 미국 스파이가 쿠바의 상황을 설명한 보고서라고 한다. 유머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슬픈 일상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하지만 삶이 힘겨울수록 끼니조차 잇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사람들의 표정은 밝기만하고 거기에다 노래하고 춤추기까지 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즐길줄아는, 삶의 애환조차 예술로 승화시키는 그것이 바로 남미인들의 삶의 방식이다.
처음 몇페이지를 읽어내려갈때는 솔직히 흐린날 선글라스를 낀듯한 느낌이었다. 기존의 여행서에 익숙해서인지 그림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보다 자꾸만 실사를 확인하고픈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곧바로 여행지의 풍경을 담아낸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작가의 풍부한 인문학적, 예술적 지식에 감탄을 하게되었다. '화첩기행'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통해 남미의 문화와 예술에 흠뻑 빠져들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이 책은 알라딘 서평단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