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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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에..." 라고 살인의 이유를 말했던 사람이 있었다. 학창시절 내내 도서관에 틀여박혀 줄창 소설을 읽어대던 시절이 지나고, 제목도 작가도 주인공도 모두 희미해 졌지만 살인의 이유 만큼은 머릿속에서 떠나지지가 않았다. 그만큼 어이없기도 하고 쇼킹하기도 한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카뮈의 <이방인>에 등장하는, 모순되고 부조리한 인간형의 대명사로 너무나 유명한 뫼르소가 바로 주인공이다. 어머니의 죽음앞에서조차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고 장례식 다음날 해수욕장에 놀러가는 특이한 캐릭터다. 편하게 말하자면 '싸이코'다. 최근에 자주 쓰는 용어인 '싸이코 패스'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나폴레옹 놀이>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뵈를레도 역시 싸이코 패스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를 당구 큐대로 살해하고는 사람들 앞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등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범행 동기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재판부와 여론은 혼란에 빠지고, 뵈를레는 이 모든 상황을 즐기는듯 자신의 변호사에게 어쩔수 없는 상황임을, 삶을 위협하는 '치명적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해 달라고 요구한다. 뵈를레는 변호사가 자신을 변호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과 '뵈를레 사건'의 변론요지를 편지로 보낸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뵈를레가 직접 쓴 바로 그 편지다. 
 
뵈를레는 평범한 삶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인생을 '놀이'라고 규정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탕 공장 여공들에게 아기처럼 굴면서 성적쾌락을 느꼈던 고백이나 아버지의 넥타이를 찢어 놓고는 자신이 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오히려 이복동생을 의심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 맞아떨어진 부분을 보면서 어릴 때부터 조짐이 보였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부류가 머리는 엄청 좋다는 사실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주식을 해도 성공하고, 변호사도 개업하고, 정치판도 원하는대로 주무른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는 살인까지도 놀이의 범위안에 넣어 버린 것이다.

제약없이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를 들먹이면서 수치심도 죄의식도 없는, 완벽한 자유를 위한 '놀이'라고 주장할 텐가. 우습다. 자유롭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들의 놀이에도 얼마나 많은 규칙이 존재하는지 정녕 모른다는 것인지. 읽다보면 너무 기가막힌다. 어이 없기도 하고... 내용상으로는 굉장히 불편하다. 하지만 구성이나 스토리가 치밀하고, 주제나 내용면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다. <어쩌면 그곳은 아름다울지도>의 작가 야콥 하인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굉장히 기대했었는데 독일 현대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문득 그 '불편함'이 작가의 의도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뫼르소... 뵈를레... 두 인물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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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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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관심이 중국을 향하고 있다. 한때는 폐쇄적이고 가난한 공산국가로 각인되었던 중국이 이제는 명실상부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지난 10여년간 고유가등의 원인으로인한 경제 불황속에도 중국만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 냈고, 마침내 'MAED IN CHINA'가 세계를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이 잘 나가건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에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다. 지저분함, 무질서함, 부패(인권문제 포함)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차에 동북공정까지 더해져서 더욱 그렇다. 그러저나 '만만디'라고 우습게 보았더니 지난 10여년간 치밀하게 동북공정을 진행해 왔다는 사실을 보면 아무 생각없이 손 놓고 있었던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많았다는 반성을 한다. 어쨌거나 궁금하다. 중국인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었다.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 책은 중국인이 쓴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인 이중톈 교수는 중국내에서도 '역사의 대중화'를 개척하여 고전의 르네상스를 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인데 우리로 말하자면 김용옥 교수와 비교하면 좋을듯 하다. 책에는 음식, 의복, 체면, 인정, 가정... 등 총 9가지 단락으로 중국인을 말하고 있는데 모두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중국인의 생각을 잘 알 수 있도록 되어있다. 특이한 것은 고문을 인용하면서도 현재를 사는 중국인과 거리감없이 연결시킨 점이나 <아Q정전>,<홍루몽>같은 문학속에 담긴 중국인을 끄집어 냄으로써 구성이 짜임새 있고, 내용 전개가 흥미롭다는 점이다. 

읽을 수록 놀랍다. 한국인과 너무 닮아서...  만나면 첫인사로 하는 "밥 먹었냐"는 말, 중국인도 똑같이 인사한단다. 음식과 관련된 문화는 정치,경제,문화 전반적인 면에 영향을 미쳤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자녀중심적인 생활방식도 공감간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자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는 빚을 내서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어 하는데 자녀의 성공이 곧 여성(어머니)의 성공이라고 믿었던 것에서 비롯된 원인이 크다. 체면과 인정에 대한 부분에서도 "아무개 얼굴을 봐서..."라고 부탁할 때 '안면'을 봐서 무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 하여간 낯익은 풍경이 많이 등장한다.

중국의 경제의 거품이 서서히 걷히고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참, 최근에 알게된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손요가 말해준 것인데 중국에서는 물건을 사러가면 던져서 주고 받는 것이 예사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물건을 던지는 행위는 상대방을 모욕하는 의도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인데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부분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왜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는고 하니 세계적인 유통업체가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한국의 '덤'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말이 나온 것 처럼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문화가 사실은 중요한 승패를 좌우할 열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중국을 따라 잡고 뛰어 넘고 싶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중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화사상' 이다. 그냥 잘난척 하는 정도가 아니라 타문화에 대해 배타적이고 과격하기까지 한 사상이 얄밉긴 하지만, 서양의 경우 고대 문화를 이야기를 할 때 그리스, 로마를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중국의 문화는 사실상 아시아의 문화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더라도 근대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영향을 벗어났던 적이 없으며 그런 과정에서 우리 스스로가 동국공정의 빌미를 제공하였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되 얼마나 독자적인 문화의 꽃을 피웠는가 증명해내는 것 또한 이 땅을 지켜낸 조상에 대한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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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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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이 너무 팍팍해 지는 것 같다. 이따금씩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현실에 발이 묶여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결국은 책이 쌓인 작은 방으로 들어가 무작정 눈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 읽곤 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마음이 평온해 지고 행복해 진다. ^^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목이 너무나도 근사하다. 코를 들이대고 책 냄새를 맡아 본다. 종이 냄새가 참 좋다.  고서점의 귀퉁이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셰익스피어&컴퍼니'의 문을 두드린다.  

 
인생은... 그런 것 같다. 뒤돌아 본다는 것은 고사하고 옆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뜻하지 않게 덜미를 잡혀 버둥거리게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는 사실. 물론 책의 저자인 제레미 머서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한 점 부끄럼 있는 생활을 하여 스스로 자초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름 잘나가던 사회부 기자였던 그는 범죄 서적을 집필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범죄자와의 약속을 깨고 너무 많은 내용을 책에 실음으로써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 이른다. 우선은 몸을 피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캐나다에서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지만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노숙자 신세가 되게 생겼다. 그에게 '고서점'은 선택이 여지가 없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이 서점은 안식처 같은 곳이에요. 조지는 여기서 사람들이 공짜로 살게 해주죠. "
이브는 그 방에 나를 홀로 남겨두고 나갔다. 나는 사진을 바라보변서 내 운명에 놀라고 있었다. p.36
 
'셰익스피어&컴퍼니' 이 서점은 뭐랄까... 한마디로는 정의내리기가 불가능한 특별함이 있는 공간이다. 100여년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은데 2000년 1월 즈음을 기준으로 4만명이 자고 갔다는 문구를 읽을 때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가난한 작가지망생이나 시인들은 서점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면서 창작 활동을 하였고, 주기적으로 낭독회를 가졌는데 그로인해 고서점은 항상 열정과 새로움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열악한 주거환경부터 개발업자가 서점에 눈독들인다는 점. 더욱 심각한 것은 조지를 이어 서점을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등 이상적인 면과 현실적인 고민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장 슬픈 일은 도둑들 대부분이 자기가 훔친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거야. 그냥 다른 서점으로 가서 책을 팔아 빨리 돈을 손에 쥐려고만 하지." p.130 
 
조지의 사연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할아버지들이 역사적으로 힘든 시기를 견디어 온 것처럼 외국의 할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지는 먹다 남은 피클즙이나 기름 튄 비닐봉지 조차도 버리지 않을 만큼 절약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다. 하지만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위해 서점의 한 귀퉁이를 내어줄뿐만 아니라 그들을 믿고 카운터를 맡긴다든지 예고없이 잠적했다가 나타나기도 하는등 독특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조지는 진짜 '공산주의'다.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고 또 아끼면서 책을 읽지 않는 책도둑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는 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이 책은 애서가라면 누구나 소장하고프게 생겼다. 제목도 그렇고 
오래된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장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책 소개를 보면 영화 <비포선셋>으로 잘 알려진 명소라고 되어있는데 안타깝게도 그 영화를 보지는 못했고, 솔직히 이 책을 통해서 '셰익스피어&컴퍼니'라는 서점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이 더욱 고맙다. ^^ 파리에 갔던 사람들은 더러 이런말을 하긴 하더라. 에펠탑은 철근 덩어리고 몽마르뜨 언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도 상관없다. 난 파리에 갈거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이 곳 '셰익스피어&컴퍼니'에도 꼭 들르리라 다짐한다. 
 
 
덧붙임...  한가지 궁금한 것은 표지의 접힌 부분을 펼치면 고양이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뿐인 것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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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2008-04-2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제가 아는 푸른바다님이 맞나요? ^^

푸른바다 2008-04-2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 ^^ 감사합니다. ^^
 
바이바이 베스파
박형동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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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베스파가 있었던가? 한동안 멍~ 한 상태로 있었다. 만화라는 특징 때문인지 30여분만에 책을 다 읽었다. 하지만, 그 여운은 참 길다.십수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전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슬픈이유는... 추억을 떠올리려 애쓰다보면 머리에 쥐가 나려한다는 것이다. ^ ^;; 수고를 덜기위해 창고가 되어버린 작은방에 들어가 내 '보물상자'를 끄집어 냈다. 학창시절의 앨범을 들여다보는 횟수만큼 가끔씩 아주 가끔씩 꺼내보는 나만의 '추억상자'이자 '행복상자' 이다. 



내가 처음 본 뮤지컬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1994년' 였다. 당시 차인표와의 열애설로 주목받던 신애라씨가 열연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1993년도 대전엑스포 유치 기념으로 전국순회홍보공연할때 알바했던 기념으로 가지고 있던 출입증, 고등학교때 교내 신문기자로 활동했던 흔적 '기자증', 남편과의 연애시절 95년도 쯤인 것 같다. 처음 놀이공원 갔던 기념으로 간직한 경주월드 입장권과 우리가 함께 타고 다녔던 남편의 중고자동차 세피아 책임보험영수증 딱지(90년대까지는 책임보험료 딱지를 차 앞에다 붙이고 다녔다), 나의 자필 글씨로 직접 만든 교회 행사 초대장 91년-93년도, 본사(서울) 교육 갔다가 난생 처음 지하철 탔던 기념으로 간직한 1995년도 지하철영수증. 비용은 350원이었다. ^^ 
 
하지만 보물상자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981년도라고 적힌 초등 2학년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다. 언니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에게 전할 카드를 만들던 초등시절로 돌아가보면...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돌맹이를 모아 '많은 공기'를 하고, 일요일 아침 칼같이(?) 챙겨보던 '들장미 소녀 캔디'가 생각나고, 이종환 아저씨의 '밤의 디스크쇼'도 생각난다. 특히나 공개방송 하는 날이면 배를 잡고 얼마나 뒹굴었던지. 그랬던 철부지가 90년대 초에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신입 시절이란 게 너무 힘들어 남몰래 눈물 흘리는 날도 많았었는데 사직서를 써가지고는 항상 가방에 넣고 다녔었다. 그 직장을 올해로 16년째 다니고 있으니 산다는 게 무언지.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

이거야 원... 서평인지 주절거림인지... ^ ^;;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 자체가 끝없이 향수를 자극하는 것 같다는 어설픈 핑계를 대본다. 어쨌거나 추억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책으로 돌아가 보자. 빨간색 베스파가 질주하고 있다. 파란색과 흰색의 바탕이 어우러져 가슴이 탁 트이는듯 시원스럽다. . ^^ 책을 처음 본 순간 표지의 그림풍이 왠지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알고보니 <리버보이> <플라이 대디 플라이> <아둔의 기억>등의 표지를 그린 박형동님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만화책을 내셨다. 

 <바이바이 베스파> 굳이 표현하자면 '성장소설'에 견줄만한 '성장만화'라고 해두자.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자아'라는 주제를 담은 만큼 고민하는 '젊음'이 느껴진다. "청춘은 한 대의 베스파와 작별하는 것. 질주하는 스쿠터에서 언젠가는 내려야 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른 따위'라고 말하지 않기를. 기타 연주를 그만 두어야 하고, 지켜주고 싶은 여자친구를 떠나보내야만 하고, 마지막 남은 스쿠터마저 팔아야 하는 상황일지라도... 삶에 있어 가장 힘겨운 순간이 나를 가장 어른스럽게 만들었다는 사실 그것 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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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보리스!
캐리 웨스턴 글, 팀 원스 그림, 송주은 옮김 / 예림당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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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치원에 새로운 친구 보리스가 오는 날이에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신이 났네요. ^^ 토끼는 예쁜 분홍색 아기 곰을, 두더지는 갈색 아기 곰을, 생쥐는 멋쟁이 아기 곰을 상상했어요. 하지만 꼬꼬댁 선생님이 보리스를 데리고 들어오자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왜냐구요? 보리스는 작고 귀여운 곰이 아니라 크고 무시무시한 털복숭이 곰이었거든요! 친구들은 보리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도 않았고, 함께 점심을 먹지도, 말도 걸어주지 않았어요. 보리스는 너무나 외로워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어요. 친구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보리스는 멀리 떨어져 따라가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깡패 쥐 일당이 나타났어요. 친구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때마침 나타난 보리스는 깡패 쥐들이 새로운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는 최대한 화알짝 미소를 지어 보였어요. 깡패 쥐들은 보리스를 보고 털복숭이 무서운 곰이라고 외치면서 도망쳐 버렸어요. 친구들이 보리스를 위해 노래를 불렀어요. "보리스가 우리 친구라서 좋아요" 그러자 보리스도 부끄러워하며 따라 불렀어요. "곰 친구를 사귀려면 나처럼 털 많고 무시무시한 곰이 좋아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긴장감은 어른이나 아이가 모두 비슷할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의 첫인상만 보고 섣부르게 편견을 가진다든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새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작고 귀여운 '아기 곰'이 올거라고 생각했지만 보리스는 친구들이 기대했던 외모를 가지지 않았어요. 의자에 앉으려다 의자를 부시고, 환하게 웃을 때마다 뾰족한 이빨이 드러났던 보리스는 친구들에게 너무나도 무섭게만 보였던 것이죠. 보리스는 남들보다 튀는 외모때문에 친구들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어요. 

다행히 우연찮게 찾아온 위기가 보리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네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할말이 많아요. 아무리 동화라지만 유치원 아이들끼리만 집으로 보낸다는 설정이 좀 무리가 있다 싶어요. 실제로 유치원에서는 보호자가 마중나오지 않으면 아이를 다시 유치원으로 데려가는 것이 원칙일만큼 철저하거든요. 요즘 사회적으로 너무나 어수선한 분위기여서 조금 민감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나쁜 쥐'가 아닌 '깡패 쥐'로 직접적인 표현을 쓴 것도 좀 그렇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곱살인 우리 아이는 이 부분에 유난히 관심을 보입니다. 특히 깡패 쥐의 등장부터 행동 하나하나까지 따라할 정도네요. 그리고는 보리스의 환한 웃음도 흉내냅니다. ^ ^;; 
 
 사실 일곱살 정도 되면 동화책을 읽고 곧바로 "또 읽어줘~!! 다시 읽어줘~!!" 하는 책을 만나기가 상당히 힘들답니다. 그런데 <오, 보리스!> 이 책은 몇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몰라요. 아이들은 또래보다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센 친구를 닮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주인공인 보리스와 깡패 쥐들에게 자꾸만 시선을 가는 것 같아요. 책을 덮자 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네요. '새친구를 사귀며 적응해 가는 보리스를 응원해 주세요.' 라구요. 그러자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리스에게 화이팅을 외칩니다. "대~한 민 국~!! 짝짝짝 짝짝, 오~ 보리스! 짝짝짝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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