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엔 이런 말이 나온다.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 칼로써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 세상은 뒤채이며 무너져갔고, 죽어서 돌아서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무책이었다.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 벨 수는 없었다."

 

 지난 30일에 있은, 세간에서 '윤 일병'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에 대한 재판은 위의 말을 몸소 느끼게 한다. 사건의 명명 역시 피해자로써 적들의 식별을 혼란스럽게 한다. 피해 사실은 유형으로 다가오지만 가해 사실은 무엇도 지목할 수 없는, 오직 무엇으로도 지목할 수 없음만을 지시하는 무형성처럼 숱한 가명과 익명, 알력의 이름으로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번 재판의 결정에 대해 역시 유감이라는 마음은 같지만 판결에 맞춰진 이슈로 인해 잊히는 군의 일상성, 알면서도 어쩌 못하는 그 되풀이들, 무기명의 가해와 그것들이 빚어내는 숱한 결정들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이번도 군은 심판의 주체였지 심판의 대상은 아니었다. "군대 가서 참으면 윤 일병 되는 거고, 못 참으면 임 병장이 되는 현실"의 선택지는 가해라는 무리 속에 자신을 기입하도록 안내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전제 자체를 조금 더 큰 차원에 그리는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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