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으로 이제는 낯설지 않은 작가가 된 “미우라 시온”의 신작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원제 神去なあなあ日常/알에이치 코리아/2012년 4월)>을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표지의 노란색 띠지에 눈길이 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 더 읽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評) - 어쩌면 작가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연배도 있으신 분이 이런 평을 해줬으니 작가로서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 이다 보니 관심이 절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가벼운 미소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평할 만큼 극적인 재미는 없었는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발견한 재미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함과 기대감에 서둘러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적당히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려고 생각했던 19세 청년인 “나(히라노 유키)”는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담임에게서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바로 내 취직자리를 잡아놨다는 것. 이미 부모님과는 이야기가 다 끝나 버렸는지 어머니는 갈아입을 옷이랑 소지품은 어딘지도 모를 “가무사리(神去)” 마을로 보냈다며 나에게 3만 엔을 “축하금”으로 쥐어 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임업 쪽에 취업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내주는 “녹색 고용” 제도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접수시켜 진행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속았다는 느낌으로 시작한 나의 연수생 생활은 시작부터 까마득하다. 신칸센, 전철, 시골 노선 열차를 갈아타며 골짜기와 강을 지나 주변 풍경이라고는 온통 삼나무 투성이의 숲 속 종착역에 내린 나를 마중 나온 남자(요키)는 휴대전화부터 달래더니 배터리를 빼내서는 통화권을 벗어나 필요 없다며 무성한 풀숲으로 집어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곳에는 절대 있고 싶지 않아 다시 역사로 발길을 돌리지만 이미 막차는 끊겨 버렸고 하는 수 없이 남자를 따라 나서게 되었다. 역시나 더욱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가량을 달려 마을 회관 같은 “삼림조합 사무실” 건물 앞에서 내린 나는 그곳에서 각종 용어며 전기톱 다루기 등 임업에 대한 20여 일 간의 초기 연수를 마치고는 요키의 트럭을 타고 30여 분을 더 타고 들어가 산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가 100 명 정도의 작은 부락인 “가무사리 지구”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팔자에도 없는 임업에 본격적으로 종사하게 된다. 이 글은 파란만장까지는 아니지만 소소하면서도 즐거웠던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써 본 글이다. 그렇다고 내가 쓴 글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저 “일기(日記)”인 셈이다.

 

 

내가 주인공처럼 영문도 모른 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심심산골에서 팔자에도 없는 “임업(林業)”에 강제로 종사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하고 분통이 터져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도입부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주인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견디지 못하고 가열(?)차게 탈출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일대 소동과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 소설이거나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에 동화되어 어느새 몸과 마음이 한 뼘 이상 자라는 잔잔한 재미와 감동의 “성장(成長)”소설 말이다. 역시 전작들을 통해서 “휴먼” 감동 스토리 전문 작가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미우라 시온”식 특유의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담은 성장소설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 - 이런 짐작이 미우라 시온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할 수 있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작품 읽는 내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읽고 나서도 격하지는 않지만 훈훈한 감동에 흐뭇한 기분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 전작들과는 다른 몇가지 “특별함”이 있었다.

 

 

먼저 주인공이 1년 사계절(四季節) 동안 체험하게 되는 깊은 산속에서의 임업 활동에 대해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그려낸 점을 들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취재를 했거나 또는 직접 임업에 종사한 경험을 토대로 쓴 줄 알았었다. 그런데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을 보니 신문 인터뷰에서 외조부가 소설의 무대인 미에 현에서 임업에 종사해, 어렸을 때부터 100년 후에 팔릴 나무를 기르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고 한다. 모티브야 외조부에게서 따 왔겠지만 빽빽하고 짙푸른 나무 숲 속에서 작업을 하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이미지를 사진이나 영화처럼 머릿 속에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세세하고 생생한 묘사들은 그만큼 작가가 꽤나 공을 들여 조사하고 체험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기에 외딴 시골 마을 특유의 행사나 어투 -책 첫 시작에서 가무사리 마을의 대표적 말투로 “나아나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 들에 대한 묘사 또한 이 글의 리얼리티를 부각시키는데 꽤나 큰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이런 사실감 넘치는 묘사와는 별도로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신비로운 장면들을 배치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의 어린 아들의 실종 사건이나 산을 휘감아 내려오는 짙은 안개 속에서의 이상한 체험, 이 소설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책 결말 부분 마을 전통 축제 행사인 “메도잡이” 장면에서의 체험 등은 가무사리 마을이 단순히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심심산골 마을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과 전설이 공존하는 일종의 “별세계(別世界)”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재미가 바로 이런 점들에 있지 않을까?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휴먼 감동 스토리. 여기에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들이 한껏 담겨 있는 이 작품을 그래서 그가 그렇게 격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 책, 전작의 감동 코드들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전혀 이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사실감과 신비로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참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지금까지 만난 세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 미우라 시온,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 같다는 내 예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히라노 유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 - 특히 그의 수줍은 로맨스가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될지 가장 궁금하다 - 한데 후속편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도 유키의 가무사리 마을에서의 삶은, 그의 로맨스는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마 이대로 가무사리 마을에 계속 살 것이다. 임업이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마을에 있다 보면 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지 않다. 나오키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여자들이 많은 요코하마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가무사리 마을에 대해,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산일에 대해 더많이 알고 싶다. 확실한 건 가무사리 마을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변함없이 여기에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가무사리 마을 사람들은 "나아나아"라고 말하면서 산과 강과 나무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지낸다. 벌레. 새, 산짐승 그리고 신까지 가무사리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즐겁고 약간은 엉뚱하게.

 

혹시 그럴 마음이 생기면 가무사리 마을에 들러주기 바란다. 언제나 대환영이다. 대환영이라니? 이 기록은 다른 사람한테 안보여주기로 했는데 자꾸 깜빡한다 헤헤. 그런 다시 만날 때 까지! - p.326~327

 

 

왠지 이 마지막 글을 읽으니 유키를 만나로 가무사리 마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혹시 "유키"처럼 가무사리 마을에서 임업활동하면서 느긋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는 않냐고? 에이 설마^^ 아무리 산골 생활이 좋다고 해도 난 그냥.......도시에서 지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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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한낮에는 햇살이 뜨거울 정도로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봄이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여름이 시작되는 설레임이 교차하는 그런 5월이네요. 이번에 새로 시작한 신간평가단 11월 소설 부문 첫 페이퍼를 작성하려고 신간들 검색해보니 눈에 띄는 작품이 참 많아 무얼 고를지 고민이 되네요.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하는 것을 보니 신간평가단에 선정된 게 실감이 납니다^^ 이번에 첫 선정되는 책들은 6월에 만나게 될 테니 올 여름 시작을 함께 할 그런 책들이 되겠네요.

 

1. 1994년 어느 늦은 밤(유현산 저/네오픽션/2012-04-23)

 

 

제목만 보고는 가수 장혜진의 노래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추리소설이네요. 작가의 전작인 <살인자의 편지>를 꽤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간 출간 소식을 보고 만나고 싶은 책 첫 순위로 올려 봅니다. 1990년 온 나라를 들썩였던 끔찍한 사건인 "지존파"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하니 다소 무겁고 어두울 수 도 있겠지만 전작보다 더 나은 스릴과 재미를 보여주었기를 기대해봅니다.

 

2. 매니지먼트 1,2(권남기 저/도모북스/2012-04-26)

 

 

그동안 신간평가단 활동하면서 2권 연작 소설은 한번도 선정된 적이 없어서 이 책을 리스트에 올릴까 망설였는데 그래도 소신껏 추천(?)해 봅니다. 화려하기 그지 없어 누구나 다 꿈꾸는 곳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 어떤 곳보다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는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특히 작가가 엔터테인먼트 계통에서 20년 이상 일하고 있고 현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감독이라니 연예계 숨은 속살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그래서 그만큼 최상의 사실감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3. 연애의 품격(신노 다케시 저/월북/2012-4-30)

 

 

 작가의 전작인 <공항의 품격>을 10기 소설 부문 책으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책의 후속작이 벌써 나왔네요^^ 전작에서 연애에는 영 숙맥이던 아포양 - 공항근무자를 일컫는 말 -  "엔도"가 이번에는 일 뿐만 아니라 사랑에 어떻게 성공하는지 궁금하네요. 직장인 성장 소설 쯤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책, 이번 11기 신간평가단에서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4. 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조이스 캐롤 오츠/포레/2012-04-20)

 

 

앞서 추천 페이퍼 올리신 분들 리스트에 가장 많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이번 11기 소설부문 첫 추천 리스트에서 가장 "핫(HOT)"한 책일 것 같네요. "밀워키의 식인귀"라 불렸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제프리 다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공포소설이라니 꽤나 더울 6월 초여름 더위를 잊게 하는 데는 제격일 소설같네요.

 

이번에는이렇게 4편을 추천해봅니다. 저중 어떤 책이 선정될지, 아니면 한 권도 되지 않을 가능성도 높겠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11기에 새롭게 만나볼 첫 소설들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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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캣 2012-05-05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미르님 ^ㅡ^ 축하드려요

레드미르 2012-05-06 05:43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리고 러브캣님도 11기 연임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신간평가단 10기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알라딘 신간 평가단으로 활동하면서 매번 느끼는 생각이 6개월이 참 짧다는 것입니다. 12권의 소설들이 하나같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보니 더 짧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1.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좋았던 책

 

 

 

 

 

 

 

 

 

 

 

 

 

 

 

 

 

 

원래는 "스노우맨"을 선정하려고 했는데, 신간 평가단 책 당첨 전에 미리 읽었던 터라 제외하고 "대니얼 G.윌슨"의 <로보포칼립스(문학수첩)>을 골라봤습니다. 이 책, 정신없이 책에 빠져들게 하는 재미와 함께 다 읽고 나서도 뭔가 곱씹어 보게 만드는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그동안 만나본 “로봇 반란” 소재의 소설과 영화들 중에서 단연 발군이라고 할 정도로 멋진 SF소설이었습니다. 물론 설정에서 억지스러운 점이 없지 않고 소재도 진부하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SF 소설만의 상상력과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던 인상깊은 책이었습니다.

 

http://blog.aladin.co.kr/754445166/5443725

 

 

2. 10기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베스트 5!

 

1) 우선 가장 좋았던 책으로 꼽은 <로보포 칼립스>

 

2) "히가시노 게이고"의 <새벽 거리에서>

http://blog.aladin.co.kr/754445166/5187227

미스터리 보다는 남녀 주인공의 불륜에 더욱 관심이 끌렸던, 그동안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어느 작품보다도 몰입감이 뛰어났던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3) "김훈"의 <흑산>

 http://blog.aladin.co.kr/754445166/5280063

김훈이라는 작가가 앞으로도 여전히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불편한” 작가로 계속 남을 것 같다는 느낌을 다시금 확인케 해준 책입니다. 그러나 불쾌하지 않은 기분 좋은 불편함 때문에 앞으로도 그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4)"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측 증인>

http://blog.aladin.co.kr/754445166/5267615

이 책, 서술트릭이 사용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책 말미에 실린 “미치오 슈스케”의 서평도 일부러 읽지 않고 나름 주의 깊게 읽었음에도 작가의 속임수에 깜빡 속고야 말았던 제대로 뒷통수 한방 맞은 그런 소설이었습니다.추리소설이 작가와 독자의 두뇌싸움이라고는 하지만 작가가 작정을 하고 속인다면 독자는 항상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더군요.

 

5) "요 네스뵈"의 <스노우 맨>

http://blog.aladin.co.kr/754445166/5476611

미리 읽었던 터라 가장 좋았던 책에는 아쉽게도(?) 탈락이 되었지만 10기 12권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서구 스릴러 소설들 그다지 즐겨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고의 소설로 인정하고 있는 "스티크 라그손"의 <밀레니엄> 과 견주어 볼 만한, 저에게 있어 <밀레니엄>과 함께 서구 스릴러 소설의 평가 기준이 될 그런 책이었습니다.

 

지난 6개월간 참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런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염치없게도 11기에 지원했었는데 다행히 선정되어 2012년을 계속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네요^^ 11기에도 열심히 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신간평가단 종료 페이퍼를 쓰면서 마지막 인사로 남기는 인사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분홍색 글귀가 가슴에 꽂히는 그런 느낌의 멋진 인사말입니다. 예전 신간평가단 담당자님의 인사글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계속 표절하고 있습니다^^

그간 너무 고마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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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2-05-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그 신간평가단 담당자는 여전히 저인데요.
꽃분홍 댓글을 남길 수 없어서 슬프네요. ㅠㅠ

고생 많으셨습니다 :) 늘 고맙습니다.

레드미르 2012-05-24 11:28   좋아요 0 | URL
아....여전히 신간평가단 맡고 계시는군요^^ 전 꽃분홍 마지막 인사글이 없어져서 다른 부서로 옮기신 줄 알았습니다^^
 
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요즈음 나에게 있어 서구 스릴러 소설 선택은 아무래도 비영어권(非英語圈)으로 넘어간 듯 하다. 내 독서 목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추리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퍼트리샤 콘웰” 등 영미권 인기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들 한 두 권씩은 꼭 챙겨 봤었는데, 요즈음에는 그들 작품보다도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스웨덴)>,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독일)>,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노르웨이)> 등 비영어권 중북부 유럽 스릴러 소설들이 눈에 더 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영어권,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해외에서 '스칸디나비아 느와르'라고 불리며 선풍을 일으키는 북유럽 스릴러 소설들이 국내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가 분위기가 어둡고 플롯이 복잡하기 때문이며, 모 출판사 관계자는 “사건 자체가 흉악한 데다 등장인물의 과거 상처나 기억과 얽혀들고 사회성이 짙다”며 “쉽게 읽히는 영미권 작가들에게 익숙한 국내 독자들이 어렵고 따분하게 느낀다”고 말한다(“북유럽 스릴러 소설 왜 국내에선 안 뜰까”. 경향신문. 2012.3.4.). 그런데 관계자의 말 중 흉악하고 사회성 짙은 사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명과 지명, 사회·문화적 정서 때문에 “어렵다”는 말까지는 인정하겠는데, “따분하다”는 말 만큼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세 권 모두 손에 땀을 쥐고 가슴 떨리게 만드는 최고의 스릴과 재미 때문에 따분함을 느낄 겨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스릴과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저 세 작품 외에는 없지 않냐고 되물으실 분들도 있을 텐데,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선뜻 내놓을 만한 멋진 북유럽 스릴러 소설을 최근에 만났다. 이미 작년(2011년)에 <비스트(검은숲/2011년 8월)>로 국내에서 첫 인사를 했던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공저의 최근 출간작 <쓰리 세컨즈(원제 Tre Sekunder/검은숲/2012년 3월)>가 바로 그 책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市) 베스트만나가탄 대로 79번가에 자리한 근사한 아파트 5층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입구(射入口)는 하나인데 사출구(射出口)는 두 개인 이상한 총상을 머리에 입고 죽은 남자의 신원은 엉뚱하게도 이웃 덴마크 경찰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바로 덴마크 경찰이 마약 조직에 심어 놓은 끄나풀이었던 것이다. 이 살인 사건을 전화로 경찰에 제보한 익명의 남자는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던 “피에트 호프만”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갖고 있는 행복한 집안의 가장이자 다국적 보안 회사 임원이지만, 속으로는 폴란드 마피아의 조직원으로 마약 밀거래를 전담하는 흉악한 범죄자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신분이 있었으니 살해당한 남자처럼 스웨덴 경찰 비밀정보원인 암호명 “파울라”라는 신분이다. 9년 째 해온 이 비밀스러운 임무를 드디어 끝내게 될 위험천만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 바로 스웨덴 교도소 마약 시장을 장악하려는 조직이 그를 적임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경찰청 비선(秘線) 라인에 마피아 음모를 알리고는 법무부 장관에게서 사후 자신의 신분과 안전을 보장받은 호프만은 계획대로 마약 은닉죄로 긴급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고, 교도소 내 잠입해 있던 조직원들과 함께 기존 마약 조직을 제거하고 은밀히 반입해 온 마약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이 일이 급반전을 맞게 된다. 바로 비선 라인의 경찰 고위 관료들이 79번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에베트 그랜스” 경정이 호프만을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올리자 그만 자신들의 계획이 탄로날까봐 호프만을 지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호프만이 경찰 끄나풀(“스투카치”)인 줄 알게 된 교도소 내 조직원들은 그를 죽이려 달려들고, 독방(獨房)을 자청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호프만은 경찰 비선 라인에 연락을 취해보지만 그들은 호프만의 구명(求命)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를 일반 감방으로 내려 보내는, 즉 그를 죽이려는 수감자들에게 던져 놓으려고 한다. 호프만은 결국 그가 미리 준비해 놓은 최후의 계획을 시행한다. 제목이기도 한 너무나도 짧은 시간인 “3초”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2 권 8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책, 1 권 중반까지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특히 책 첫 부문 마약을 집어넣은 콘돔을 삼켜서 운반하는 “인간 컨테이너”들이 구토로 뱉어내는 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욕지기까지 느껴져 금세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그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경찰 정보 요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노경찰인 “에베트 그랜스” 경정은 이 책이 “그랜스 형사 시리즈” - 첫 편이 앞에서 언급한 <비스트>이고 이 책은 다섯 번째라고 한다 - 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미 - 어느 여가수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듯 한데 어떤 사연이었는지 이렇다 할 자세한 설명은 없다 - 하게 느껴지고, 호프만이 교도소로 잠입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장면들, 즉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빌려 그 안에 마약과 작은 권총을 분해해서 담고, 교도소장에게 보내는 튜울립 화분에 마약을 숨겨 담으며, 교도소 인근 교회 종탑에 도청기를 장치하는 장면들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드디어 호프만이 교도소에 입감(入監)되면서부터 이야기는 흐름이 급격하게 빨라진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호프만의 계획이 믿었던 경찰 고위층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그 어느 곳보다도 폐쇄된 공간인 교도소에서 그를 노리는 살인자들의 숨결이 내 뒷목에도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페이지를 넘길 수 록 호흡이 가빠지고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야기는 호프만이 교도관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조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극을 벌이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르고 비로소 그 의도를 모르겠던 호프만의 사전 준비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긴장감과 스릴 또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결국 자신의 가족을 위해 죽음을 택하게 되는 호프만의 선택에 일견 가슴 아프다가도 나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여기서 “3초”의 의미가 나온다. 호프만이 인질극을 벌이는 교도소와 저격수가 유일하게 총을 겨눌 수 있는 장소인 높은 위치인 교회 종탑까지의 거리는 1.5km, 종탑에서 발사한 총알이 호프만의 머리에 와 닿는 시간이 바로 “3초”였던 것이다. 결국 호프만의 죽음으로 긴장감이 일거에 해소하게 되는데, 이런 후일담을 다루기에는 2권의 남은 분량이 많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이다!

 

이때부터 1권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호프만 인질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저격 명령을 내렸던 그랜스 경정에게 호프만이 자신의 비밀이 담긴 자료를 보내오면서 그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다시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한다. 경정이 해결하기에는 법무부장관까지 연루된 이 사건의 크기와 무게가 너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권력에 의해 무산되고 영원한 비밀로 묻혀 버리는 결론이 났을 텐데 이 책은 통쾌함이 다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까발려지고 호프만을 죽음에 몰아넣은 경찰 비선 조직은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특히 호프만이 투옥되었던 교도소에 고위 경찰을 위한 특별 감호소를 만들겠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가슴 시원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두 번의 큰 흐름이 지나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분량에 세 번째 반전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그런 충격은 아니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하는, 제목인 “3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결말로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3번에 걸쳐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긴장감과 스릴에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책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을 더 펼쳐 보다가 결국 진한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이 책, 이처럼 최고의 스릴과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멋진 책이었다.

 

이처럼 스릴 만점의 이야기에 작가는 어디까지나 허구이고 사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있다. 작가는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통해서 이 작품에서의 허구와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건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경찰이 비밀 정보원을 운영하는 점이나 교도소가 마약 소굴이라는 점, 책 속에서 호프만이 마약을 교도소에 밀반입하는 방법 - 작가들이 실제 실험을 해서 증명했다고 한다 - 들은 “사실”이고 등장인물들과 교도소는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큰 허구는 앞서 말한대로 경찰 비밀 정보원을 이끌었던 비선 조직, 즉 법무부 장관과 치안총감, 총경 등 고위 권력층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대목일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했던 작가들이 왜 이런 비현실적인 결말을 써낸 것일까? 그건 북유럽 스릴러의 특징이라는 “사회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경찰이 범죄자를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리고 더 중대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묵인하고 덮어주는 것이, 또한 그런 비밀 정보원 활용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그 해답이 결코 쉽지 않은 물음을 우리들에게 던진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 이렇게 답을 내린다.

 

범죄자가 경찰수사를 돕는다니, 이런 빌어먹을 시스템이 또 어디 있습니까, 형사님. 정작 그 인간들이 벌인 범죄는 위장되고 묻혀버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또 다른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정작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에게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니, 이런 젠장, 이게 민주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형사님?

 

여기에 그렇게 이용해 먹은 비밀 정보원들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는, 작가 말대로 민주사회에서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고, 그런 일들의 전말이 권력에 의해 감춰져 버리고 또는 왜곡되고 있기에 작가는 비록 허구로나마 그들의 단죄(斷罪)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 현실 세계의 사회 문제와 모순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대표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그런 작품이라고 하겠다.

 

스릴 넘치고 통쾌한 이야기와 반전, 극한의 리얼리티, 묵직한 주제 의식 등 스릴러 소설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책, 어느 독자의 평처럼 “걸작(Masterpiece)"이라는 표현이 딱 제격인 최고의 스릴러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이 작품 못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는 작가의 전작인 갖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비스트>를 내처 읽을 셈이다. 어느 글에서 서구 스릴러 소설 평가를 앞에서 언급한 <밀레니엄>과 <스노우맨>으로 기준 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이 책을 세 번째 기준으로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세 책 중 어느 책이 가장 재미있냐고 물어오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해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참 난감한 질문이다^^ 그냥 세 책 모두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느 책을 읽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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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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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총각·도시처녀 백여 명 합동 맞선(동아일보, 1982.7.14.)

농촌총각 도시처녀 어우러진 짝짓기 ‘함박웃음’(한겨레, 1990.2.6.)

‘짝’ 25기 농어촌 총각들과 도시 처녀들의 이야기(머니투데이, 2012.3.15.)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골 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위의 기사들처럼 지방자치단체나 TV에서 주최하는 시골총각과 도시처녀들의 대규모 맞선이 화제꺼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요즈음 들어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으로 이사하는 “귀농(歸農)”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 여성들에게 “시골”에 대한 이미지는 모 개그 프로그램처럼 하루 종일 힘들게 소·돼지 키우고, 논일, 밭일에 매달린다는 이미지가 큰 것 같다. 위의 세 번째 기사에서 맞선 프로그램에 나온 한 남성이 “사실 이 직업이 시원찮다. 농업 한다고 하면 여자들이 배우자로 좋아하질 않는다”며 “시골에 산다는 것을 자체를 싫어한다, 말 그대로 자기가 소를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기사가 바로 이런 인식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스웨덴 소설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원제 Grabben i graven bredvid/문학동네/2012년 2월)>을 읽어보니 말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5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졸지에 30대 독신녀가 된 “데시레”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중에는 몇 번씩, 그리고 주말에도 최소한 한 번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한 시간씩은 머물다 간다. 억지로라도 슬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곳에 머무는 시간의 반은 남편에 대한 분노로 보낸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의 무덤 옆에서 한 남자를 본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촌스러운 누빔 점퍼에 귀마개를 덧댄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무덤 주위의 흙을 고르고 화단을 청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자에 쓰인 “산림조합”이라는 글자 때문에 산림조합원 남자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벤치 옆자리에 앉아 흘끗거리며 날 관찰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요상한 냄새를 풍겼고, 왼손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차로 30, 40분 거리의 시골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30대 미혼 남성인 “벤니”는 농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머니 묘지를 찾아와 땅을 고르고 화초를 심고 부지런히 할 일을 마친 다음 겨우 앉아서 쉬는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 베이지 색 옷을 입은 여인이 영 못마땅하다. 최근 몇 년간 어머니는 그에게 ‘나가서’ 여자를 만나라며 성화셨지만 어머니는 ‘시골 농장에 사는 매력적인 독신남’의 아내가 되는 꿈을 꾸는 젋은 여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여자들은 보육교사나 간호사가 되기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 기계공이나 판매사원과 결혼하여 도시에 예쁜 집을 장만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혼자서 농장 일이며 그동안 어머니가 돌봐온 집안일까지 모두 떠맡아 하고 있는 그는 단 몇 주 만이라도 저 여자 없이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두 남녀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벤치에 앉아 남편의 무덤을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손가방에서 꺼낸 수첩에 시(詩)를 적고 있었다. 그런데 산림조합원 남자의 무덤 바로 옆 무덤에 찾아온 어린 소녀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짓는 그녀와 역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길이 마주치게 된다. 그 순간 여자는 둘 사이로 무지개 같은 환한 빛이 솟아 오르고, 여자는 자신의 난자(卵子)가 펄쩍펄쩍 뛰어오르더니 찰랑찰랑 공중제비를 돌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별 만족을 못 느꼈던 그녀에게는 정말 놀라운 느낌이었다. 남자 또한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환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자신이 애써 짜낸 우유를 그녀 때문에 모두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며칠 후 남자는 여자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가게 되고,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결코 쉽지가 않다. 자신의 가정을 돌보면서 같이 젖소를 키워줄 “아내”를 원하는 남자와 도시에 살면서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라캉”의 시에 대해 토론하길 원하는 여자 사이에는 너무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두 사람. 과연 이 로맨스의 끝은 어딜까?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만남과 로맨스를 그린 이 책, 사실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두 남녀가 우연찮게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이 현실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말 것이라는 결말이 너무 쉽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다리 사이 난자가 요동치고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찰떡궁합 같은 둘의 사랑으로 매일 한 가지씩 견디면서 지내는 법을 배우며 계속 이렇게 지내기를 바래보지만,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충고처럼 들려주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오래된 격언인 “연애는 이상(理想)이지만 결혼은 현실(現實)”이라는 식상한 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셈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책,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재미있으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결코 범상치가 않다.

 

책에는 매 챕터를 남녀 주인공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꽤나 현실감있고 섬세하게 그려내어, 읽으면서 내가 남자이다 보니 가정을 원하는 남자의 평범한 바램에 공감을 느끼다가도, 나라도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직장과 나서 자란 도시 생활을 모두 버리고, 시골에 살라고 한다면 역시나 쉽게 결론내리지 못할 것 같아 여자의 망설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두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일견 남녀간의 로맨스를 마치 심리학 서적이나 철학책을 읽는 것 마냥 너무나도 시시콜콜히 해체하고 분석하던 “알랭드 보통”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훨씬 현실감 있고 피부에 와닿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에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그렇다고 외설적(猥褻的)이지 않게 적절히 표현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가 막히고 기발한 표현이라면 역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주인공이 남자와의 만남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느꼈을 때를 “난자가 찰랑찰랑 공중제비 도는” 이란 말로 표현한 것을 들 수 있겠다. 남자 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될 수 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여자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도 상상해보면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게 만드는 그런 표현이라고 하겠다. 작가는 결말에도 작은 “반전(反轉)”을 숨겨 놓았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할 수 는 없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헤어지고야 마는 두 남녀의 사랑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고 다른 양상으로 계속 이어간다는 그런 결말이라고만 밝혀둬야겠다. 그런데, 이 결말이 심정적으로 올곧이 이해가 되진 않는다. 아마도 속편이라는 <가족무덤>까지 읽고 나서야 그네들의 “선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에서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결혼 문제로 이 글을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다 보니 이 책의 로맨스를 그 문제로만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처럼 서로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또는 극복해내는 연인들의 로맨스는 국가, 인종, 종교, 이념, 빈부·신분 격차 등 수많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뭏튼 이 책,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는, 어쩌면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셀 수 없는 많은 사랑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재미있는 책 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의 두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 속편인 <가족무덤> 또한 곧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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