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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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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총각·도시처녀 백여 명 합동 맞선(동아일보, 1982.7.14.)

농촌총각 도시처녀 어우러진 짝짓기 ‘함박웃음’(한겨레, 1990.2.6.)

‘짝’ 25기 농어촌 총각들과 도시 처녀들의 이야기(머니투데이, 2012.3.15.)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골 총각들의 결혼 문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위의 기사들처럼 지방자치단체나 TV에서 주최하는 시골총각과 도시처녀들의 대규모 맞선이 화제꺼리가 되기도 하는데, 그다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다. 요즈음 들어 도시에서 살다가 농촌으로 이사하는 “귀농(歸農)”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도시 여성들에게 “시골”에 대한 이미지는 모 개그 프로그램처럼 하루 종일 힘들게 소·돼지 키우고, 논일, 밭일에 매달린다는 이미지가 큰 것 같다. 위의 세 번째 기사에서 맞선 프로그램에 나온 한 남성이 “사실 이 직업이 시원찮다. 농업 한다고 하면 여자들이 배우자로 좋아하질 않는다”며 “시골에 산다는 것을 자체를 싫어한다, 말 그대로 자기가 소를 자신이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기사가 바로 이런 인식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에 스웨덴 소설 “카타리나 마세티”의 <옆 무덤의 남자(원제 Grabben i graven bredvid/문학동네/2012년 2월)>을 읽어보니 말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결혼 5년 만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후 졸지에 30대 독신녀가 된 “데시레”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주중에는 몇 번씩, 그리고 주말에도 최소한 한 번은 남편의 무덤을 찾아가 한 시간씩은 머물다 간다. 억지로라도 슬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지만 사실은 그곳에 머무는 시간의 반은 남편에 대한 분노로 보낸다. 그런데 몇 주 전, 남편의 무덤 옆에서 한 남자를 본다.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촌스러운 누빔 점퍼에 귀마개를 덧댄 두툼한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무덤 주위의 흙을 고르고 화단을 청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자에 쓰인 “산림조합”이라는 글자 때문에 산림조합원 남자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벤치 옆자리에 앉아 흘끗거리며 날 관찰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요상한 냄새를 풍겼고, 왼손에 손가락이 세 개 밖에 없었다.

 

도시에서 차로 30, 40분 거리의 시골마을에서 소를 키우는 30대 미혼 남성인 “벤니”는 농장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머니 묘지를 찾아와 땅을 고르고 화초를 심고 부지런히 할 일을 마친 다음 겨우 앉아서 쉬는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저 베이지 색 옷을 입은 여인이 영 못마땅하다. 최근 몇 년간 어머니는 그에게 ‘나가서’ 여자를 만나라며 성화셨지만 어머니는 ‘시골 농장에 사는 매력적인 독신남’의 아내가 되는 꿈을 꾸는 젋은 여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못했다. 여자들은 보육교사나 간호사가 되기 위해 모두 도시로 떠나 기계공이나 판매사원과 결혼하여 도시에 예쁜 집을 장만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혼자서 농장 일이며 그동안 어머니가 돌봐온 집안일까지 모두 떠맡아 하고 있는 그는 단 몇 주 만이라도 저 여자 없이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던 두 남녀에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다. 평소처럼 벤치에 앉아 남편의 무덤을 바라보는 그녀는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무시한 채 손가방에서 꺼낸 수첩에 시(詩)를 적고 있었다. 그런데 산림조합원 남자의 무덤 바로 옆 무덤에 찾아온 어린 소녀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 짓는 그녀와 역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길이 마주치게 된다. 그 순간 여자는 둘 사이로 무지개 같은 환한 빛이 솟아 오르고, 여자는 자신의 난자(卵子)가 펄쩍펄쩍 뛰어오르더니 찰랑찰랑 공중제비를 돌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는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별 만족을 못 느꼈던 그녀에게는 정말 놀라운 느낌이었다. 남자 또한 그녀의 미소에 가슴이 환해지는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자신이 애써 짜낸 우유를 그녀 때문에 모두 버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며칠 후 남자는 여자가 일하는 도서관에 찾아가게 되고, 사랑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결코 쉽지가 않다. 자신의 가정을 돌보면서 같이 젖소를 키워줄 “아내”를 원하는 남자와 도시에 살면서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라캉”의 시에 대해 토론하길 원하는 여자 사이에는 너무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하는 두 사람. 과연 이 로맨스의 끝은 어딜까?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만남과 로맨스를 그린 이 책, 사실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두 남녀가 우연찮게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이 현실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고 말 것이라는 결말이 너무 쉽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물과 기름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다리 사이 난자가 요동치고 공중제비를 돌 정도로 찰떡궁합 같은 둘의 사랑으로 매일 한 가지씩 견디면서 지내는 법을 배우며 계속 이렇게 지내기를 바래보지만,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충고처럼 들려주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오래된 격언인 “연애는 이상(理想)이지만 결혼은 현실(現實)”이라는 식상한 말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셈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책,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재미있으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글솜씨만큼은 결코 범상치가 않다.

 

책에는 매 챕터를 남녀 주인공이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꽤나 현실감있고 섬세하게 그려내어, 읽으면서 내가 남자이다 보니 가정을 원하는 남자의 평범한 바램에 공감을 느끼다가도, 나라도 이제 겨우 자리 잡은 직장과 나서 자란 도시 생활을 모두 버리고, 시골에 살라고 한다면 역시나 쉽게 결론내리지 못할 것 같아 여자의 망설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처럼 두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일견 남녀간의 로맨스를 마치 심리학 서적이나 철학책을 읽는 것 마냥 너무나도 시시콜콜히 해체하고 분석하던 “알랭드 보통”의 글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그보다는 덜 부담스럽고 훨씬 현실감 있고 피부에 와닿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기에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직설적으로, 그렇다고 외설적(猥褻的)이지 않게 적절히 표현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가 막히고 기발한 표현이라면 역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주인공이 남자와의 만남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느꼈을 때를 “난자가 찰랑찰랑 공중제비 도는” 이란 말로 표현한 것을 들 수 있겠다. 남자 없이 살다보니 이렇게 될 수 도 있겠지 하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여자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도 상상해보면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게 만드는 그런 표현이라고 하겠다. 작가는 결말에도 작은 “반전(反轉)”을 숨겨 놓았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말할 수 는 없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헤어지고야 마는 두 남녀의 사랑이 아직은 끝나지 않았고 다른 양상으로 계속 이어간다는 그런 결말이라고만 밝혀둬야겠다. 그런데, 이 결말이 심정적으로 올곧이 이해가 되진 않는다. 아마도 속편이라는 <가족무덤>까지 읽고 나서야 그네들의 “선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두에서 시골 남자와 도시 여자의 결혼 문제로 이 글을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다 보니 이 책의 로맨스를 그 문제로만 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처럼 서로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고 또는 극복해내는 연인들의 로맨스는 국가, 인종, 종교, 이념, 빈부·신분 격차 등 수많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뭏튼 이 책,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이별하는, 어쩌면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셀 수 없는 많은 사랑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재미있는 책 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의 두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결말을 맺는지 속편인 <가족무덤> 또한 곧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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