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으로 이제는 낯설지 않은 작가가 된 “미우라 시온”의 신작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원제 神去なあなあ日常/알에이치 코리아/2012년 4월)>을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표지의 노란색 띠지에 눈길이 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 더 읽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評) - 어쩌면 작가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연배도 있으신 분이 이런 평을 해줬으니 작가로서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 이다 보니 관심이 절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가벼운 미소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평할 만큼 극적인 재미는 없었는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발견한 재미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함과 기대감에 서둘러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적당히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려고 생각했던 19세 청년인 “나(히라노 유키)”는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담임에게서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바로 내 취직자리를 잡아놨다는 것. 이미 부모님과는 이야기가 다 끝나 버렸는지 어머니는 갈아입을 옷이랑 소지품은 어딘지도 모를 “가무사리(神去)” 마을로 보냈다며 나에게 3만 엔을 “축하금”으로 쥐어 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임업 쪽에 취업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내주는 “녹색 고용” 제도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접수시켜 진행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속았다는 느낌으로 시작한 나의 연수생 생활은 시작부터 까마득하다. 신칸센, 전철, 시골 노선 열차를 갈아타며 골짜기와 강을 지나 주변 풍경이라고는 온통 삼나무 투성이의 숲 속 종착역에 내린 나를 마중 나온 남자(요키)는 휴대전화부터 달래더니 배터리를 빼내서는 통화권을 벗어나 필요 없다며 무성한 풀숲으로 집어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곳에는 절대 있고 싶지 않아 다시 역사로 발길을 돌리지만 이미 막차는 끊겨 버렸고 하는 수 없이 남자를 따라 나서게 되었다. 역시나 더욱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가량을 달려 마을 회관 같은 “삼림조합 사무실” 건물 앞에서 내린 나는 그곳에서 각종 용어며 전기톱 다루기 등 임업에 대한 20여 일 간의 초기 연수를 마치고는 요키의 트럭을 타고 30여 분을 더 타고 들어가 산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가 100 명 정도의 작은 부락인 “가무사리 지구”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팔자에도 없는 임업에 본격적으로 종사하게 된다. 이 글은 파란만장까지는 아니지만 소소하면서도 즐거웠던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써 본 글이다. 그렇다고 내가 쓴 글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저 “일기(日記)”인 셈이다.

 

 

내가 주인공처럼 영문도 모른 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심심산골에서 팔자에도 없는 “임업(林業)”에 강제로 종사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하고 분통이 터져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도입부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주인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견디지 못하고 가열(?)차게 탈출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일대 소동과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 소설이거나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에 동화되어 어느새 몸과 마음이 한 뼘 이상 자라는 잔잔한 재미와 감동의 “성장(成長)”소설 말이다. 역시 전작들을 통해서 “휴먼” 감동 스토리 전문 작가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미우라 시온”식 특유의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담은 성장소설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 - 이런 짐작이 미우라 시온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할 수 있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작품 읽는 내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읽고 나서도 격하지는 않지만 훈훈한 감동에 흐뭇한 기분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 전작들과는 다른 몇가지 “특별함”이 있었다.

 

 

먼저 주인공이 1년 사계절(四季節) 동안 체험하게 되는 깊은 산속에서의 임업 활동에 대해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그려낸 점을 들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취재를 했거나 또는 직접 임업에 종사한 경험을 토대로 쓴 줄 알았었다. 그런데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을 보니 신문 인터뷰에서 외조부가 소설의 무대인 미에 현에서 임업에 종사해, 어렸을 때부터 100년 후에 팔릴 나무를 기르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고 한다. 모티브야 외조부에게서 따 왔겠지만 빽빽하고 짙푸른 나무 숲 속에서 작업을 하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이미지를 사진이나 영화처럼 머릿 속에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세세하고 생생한 묘사들은 그만큼 작가가 꽤나 공을 들여 조사하고 체험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기에 외딴 시골 마을 특유의 행사나 어투 -책 첫 시작에서 가무사리 마을의 대표적 말투로 “나아나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 들에 대한 묘사 또한 이 글의 리얼리티를 부각시키는데 꽤나 큰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이런 사실감 넘치는 묘사와는 별도로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신비로운 장면들을 배치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의 어린 아들의 실종 사건이나 산을 휘감아 내려오는 짙은 안개 속에서의 이상한 체험, 이 소설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책 결말 부분 마을 전통 축제 행사인 “메도잡이” 장면에서의 체험 등은 가무사리 마을이 단순히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심심산골 마을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과 전설이 공존하는 일종의 “별세계(別世界)”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재미가 바로 이런 점들에 있지 않을까?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휴먼 감동 스토리. 여기에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들이 한껏 담겨 있는 이 작품을 그래서 그가 그렇게 격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 책, 전작의 감동 코드들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전혀 이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사실감과 신비로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참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지금까지 만난 세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 미우라 시온,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 같다는 내 예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히라노 유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 - 특히 그의 수줍은 로맨스가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될지 가장 궁금하다 - 한데 후속편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도 유키의 가무사리 마을에서의 삶은, 그의 로맨스는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마 이대로 가무사리 마을에 계속 살 것이다. 임업이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마을에 있다 보면 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지 않다. 나오키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여자들이 많은 요코하마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가무사리 마을에 대해,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산일에 대해 더많이 알고 싶다. 확실한 건 가무사리 마을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변함없이 여기에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가무사리 마을 사람들은 "나아나아"라고 말하면서 산과 강과 나무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지낸다. 벌레. 새, 산짐승 그리고 신까지 가무사리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즐겁고 약간은 엉뚱하게.

 

혹시 그럴 마음이 생기면 가무사리 마을에 들러주기 바란다. 언제나 대환영이다. 대환영이라니? 이 기록은 다른 사람한테 안보여주기로 했는데 자꾸 깜빡한다 헤헤. 그런 다시 만날 때 까지! - p.326~327

 

 

왠지 이 마지막 글을 읽으니 유키를 만나로 가무사리 마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혹시 "유키"처럼 가무사리 마을에서 임업활동하면서 느긋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는 않냐고? 에이 설마^^ 아무리 산골 생활이 좋다고 해도 난 그냥.......도시에서 지금처럼 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