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이라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자 “스릴러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영미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일 작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을 작년에 <아들의 방>으로 처음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 보니 명성이 결코 허명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권으로는 그에 대한 낯설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어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를 신작인 <용서할 수 없는(원제 Caught/비채/2012년 6월)>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아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고, 5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단숨에 읽고 난 후 어느새 나도 그의 “팬(Fan)"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빨간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채팅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어린 소녀 “차이나”에게서 집으로 얼른 와달라는 전화를 받고는 급히 차를 몰아 차이나의 집으로 온 “댄 머서”은 차이나 집의 빨간색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주저주저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무엇인가로 입이 틀어 막힌 듯 불분명하고 멀게만 들리는 차이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벌컥 밀어젖히고 집안으로 들어서 찾아보지만 목소리만 들릴 뿐 - 그것도 전혀 차이나의 목소리 같지 않은 - 차이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때 카메라를 든 남자와마이크를 든 남자들과 함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NTC 뉴스>의 “웬디 타인스”라고 밝히며 왜 여기에 있냐고 물어온다. 그녀는 바로 소아성애자들을 함정에 빠지도록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는 여자다. 그러면서 실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조명은 한층 더 밝아졌으며 카메라맨은 내 얼굴에 부딪칠 정도로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댄다. 여자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몇 번 달싹 거렸지만 모든 게 이미 끝나버렸다. 이틀 후 그 장면이 방송을 탔고 온 세상이 그 장면을 지켜봤으며, 빨간색 문에 접근하면서 어렴풋이 알아차렸던 대로 댄 머서의 인생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한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가정 주부 “마샤 맥웨이드”는 토요일 아침 고등학교 졸업반인 맏딸 “헤일리”를 깨우러 갔다가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빈 침대를 발견한다. 원래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이었는지 지라 별 생각 없이 돌아서서 나오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불안감)에 사로잡혀 헤일리의 빨래바구니를 뒤져봤지만 옷가지가 전혀 없었고 칫솔과 세면대, 샤워실에도 전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헤일리는 어젯밤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 “테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헤일리 친구들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해보지만 아무도 헤일 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밝혀지고 지역 경찰서에 실종 사실을 알린다. 신고 후 48 시간이 지나고 FBI가 개입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시간은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이 지나가 버린다. 과연 빈민가의 아이들을 돕는 청년인 댄은 정말로 추악한 소아성애자일까? 석 달이 지나도록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헤일리는 살아있을까? 전혀 별개의 사건인 줄 알았던 두 사건은 댄의 죽음과 함께 헤일리의 핸드폰이 댄의 숙소에서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고, 댄 때문에 해고된 여기자 웬디는 과거 댄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대학 동기들이 묘하게도 어떤 음모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댄의 과거에 숨은 진실을 추적하게 된다. 사건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주인공의 스릴 넘치는 활약과 액션이라는 기존 영미 스릴러 소설들과는 달리 치밀한 플롯과 트릭, 이야기 전개에 따라 탐정 - 이 책에서는 여기자 “웬디”가 탐정 역할을 한다 - 에 의해 차츰차츰 그 베일을 드러내는 숨겨진 비밀들,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의 결말과 함께 숨어 있는 반전이라는 “정통 추리 소설”에 가까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추리소설로서 구성과 재미도 탄탄하지만 이 책에서 눈여겨 볼 점은 바로 이 책의 주제, 즉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릴러 형식을 빌어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과 위기를 짚어내는 전작인 <아들의 방> 서평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의 모순과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일본 추리 소설 장르인 “사회파 추리소설”의 느낌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당신이라면 이 책의 등장인물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또는 그들을 “비난” 할 수 있겠느냐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즉 음주운전으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를 구해 온다면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 비록 사고라고는 하지만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남은 흉측한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사건에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결국 인생이 끝장나버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피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추문을 뒤집어 씌운 사람이 용서를 구해온다고 해서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를 우리들에게 물어온다. 결코 답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질문들인데 책 속 주인공들도 어떤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모든 걸 용서했다고 담담히 말하기도 하는 등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결국 그 해답은 각자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 정답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작가는 아들을 성추행한 남자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법망을 피해 무죄 선고를 받게 되자 그를 사적 처벌하는 남자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지, 학창시절 친구들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퇴학을 당했던 한 남자가 수 십 년 후 자신을 외면하는 친구들에게 복수를 하는 행동을 비난할 수 있을지, 한때는 사랑했었지만 이제는 범죄자의 오명을 쓰고 죽은 이혼한 남편에게 자신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죄를 뒤집어씌우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이처럼 책 속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사연들을 통한 수많은 물음과 함께 인터넷과 매스컴의 폐해, 소아 성추행, 청소년들의 비행, 조기 퇴직 문제, 결속력이 희미해진 가족 관계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또한 우리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수많은 사건들과 상황들을 나열하다 보면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고 겉돌게 느껴질 법도 한데, 전혀 별개의 사건처럼 여겨진 사건들을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얽어매어 하나의 이야기와 결말로 수렴해나가는 글솜씨가 왜 “할런 코벤”이 이야기꾼으로서 그렇게 갈채를 받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탄하고 치밀하다. 여기에 그의 전매특허라고 하는 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는 책을 읽어 가면서 화자(話者)의 시선과 심리에 저절로 동화(同化)되게 만들고,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어보게 만든다.

 

다만 추리소설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는데, 바로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사건의 얼개를 추리해 볼 이렇다 할 단서들, 즉 추리소설이 독자와 작가의 두뇌싸움이라는 고유의 전통에 걸맞게 사전에 독자가 결말을 예측해볼 수 있는 이렇다 할 사전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작가가 스릴러 소설 전문 작가여서 어쩌면 이런 추리소설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을 수 도 있을 테고, 또는 작가는 충분히 단서를 제공했음에도 영리하지 않은 독자인 내가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것일 수 도 있겠지만 말이다. 전자라면 굳이 왜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냐고 비판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 테고 후자라면 그렇게 추리 소설들을 읽었음에도 단서 하나 제대로 못 발견한 나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후자일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지만^^

 

두 권 만으로 할런 코벤을 정의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릴러 소설로서의 긴장감과 재미와 함께 묵직한 생각꺼리 또한 느껴볼 수 있는, 즉 재미와 주제 두 가지 모든 면에서 탁월한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할렌 코벤에 대한 낯설음은 이 책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책, 할런 코벤 전체 작품에서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팬이 되게 만든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끝으로 책을 통해 수차례 용서할 수 있겠냐고 물어온 작가는 과연 어떻게 답을 할까? 아마도 그 답은 책의 마지막 문장 - 어쩌면 작가는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위해 500 여 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그 답을 생략해야 할 것 같다^^ - 에 있을 것 같다. 아뭏튼 이 책, 시선을 확 끄는 첫 문장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문장, 처음과 끝 문장이 참 인상적인 책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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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975년부터 2003년까지 30 년 동안의 치열했던 멕시코 마약 전쟁(부제 Mexico Drug War 1975-2003)을 다룬 “돈 윈슬로”의 <개의 힘 1,2(원제 The Power of the Dog / 황금가지 / 2012년 4월)을 받아들고서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에서도 소개되는 데, “개의 힘”이란 구약성경 시편 22장 20절 구절인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원래는 다윗이 악의 세력 - 22장 앞구절에는 황소, 개, 악한 무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 에 둘러싸여 더 이상 도망할 곳도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멀리하지 말고 구원해달라는 간구를 그린 시(詩)인 데, 먼 훗날 예수께서 처할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도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성경 문맥으로 보면 “개의 힘” - 개의 세력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은 이 책에서 30년 동안 전쟁을 치룬 멕시코 마약 조직을 “악(惡)의 세력”으로 비유하는 단어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과연 1,2 권 합쳐 1,0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에 그려진 이 “악의 세력”의 실체는 어떨지 궁금함과 함께 책장을 펼쳐 들었다.

 

책은 첫장면(프롤로그)부터 1997년 멕시코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시작한다. 남자 열 명, 여자 세 명, 아이 여섯 명 등 발견된 시신만 열 아홉 구에 이르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피가 흘러 나와 고인 피 웅덩이, 온통 피투성인 벽과 잔디밭 등 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장은 시신이라면 지난 십 수 년 동안 마약 전쟁을 치루면서 숱하게 봐왔던 “아트 켈러”에게도 처음 본 그런 참혹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펼친 모종의 작전 때문에 이런 참상이 벌어졌다는 자책을 하는 아트는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와 아기 시신 위에 몸을 구부려 성호를 그린다 -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은 2권 후반부 쯤에 등장한다 - . 그러면서 책은 끝날 기약이 없는 이 끔찍한 전쟁의 첫 출발점인 1975년 멕시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린 1975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CIA 출신 “아트 켈러”는 설립된 지 갓 3년 된 새내기 기관인 “마약단속국(DEA)"에 발탁된다. 아트는 어려서부터 헤로인이 이웃사람들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직접 봐왔던 터라 “마약 전쟁”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꽃밭을 불태우고 멕시코 마약왕 체포 작전에 참여하게 된 아트는 그곳에서 앞으로 30년간 자신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될 인물인 “미겔 앙헬 바레라”, 일명 “티오”라는 사내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티오는 공식적으로는 멕시코 주지사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주지사의 교섭 창구이자 마약 밀매인으로 이 작전을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멕시코 마약왕이 이 작전으로 사살되자 힘의 공백을 틈타 멕시코 마약 시장을 장악한 티오는 미국으로 마약 공급량을 확대하고, 아트는 그런 티오와 그의 조카 “아단” 형제 - 아트와 잠깐 친구 사이기도 했다 - 를 예의 주시하면서 티오 세력의 마약 공급줄을 차단하기 위해 티오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미행을 하는 등 작전을 펼친다. 자신의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한 티오 일당은 아트의 동료를 납치해 모진 고문을 하고, 아트는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만 그 동료 형사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야 만다. 이때부터 아트의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고 동료를 살해한 주범들을 하나 둘씩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우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린 티오 또한 아트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삼촌을 대신해 조직을 접수한 아단 형제는 그 세(勢)를 더욱 키워나가고, 역시나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아트와 밀고 밀리는 전쟁을 벌인다. 이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은 결국 아트가 처음 작전에 나선지 약 30 년 후 인 2003년에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 책, 처음에는 워낙 많은 등장인물 - 백 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을 각 세력별로 요약 소개하는 자료가 별지로 제작되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 들과 저마다의 각각의 사연들 때문에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었다. 여기에 입에 쉽게 달라붙지 않은 스페인어식 지명과 인명, 이 책을 통해 거의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대부분인 멕시코 현대사 속 굵직굵직한 사건들 - 1985년 멕시코 대지진,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 마약 세력에 의해 자행된 멕시코 정치인들 암살 사건 등등 -도 책에 몰입하는 데 꽤나 방해가 되었던 요소들이었다. 그런데 책 페이지가 거듭되면서 차츰 이야기 맥락과 등장인물들에 익숙해지자 언제 그렇게 애를 먹었냐는 듯이 책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1권 중반 이후부터는 책에 파고 들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처박게 만들었고, 결국 처음에는 영 부담스럽기만 했던 1, 2권 1,000 여 페이지 분량을 불과 이틀 여 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이 책의 어떤 점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마약 단속국 요원 아트 켈러와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인 “아단” 형제와의 30 년에 걸친 치열하고 잔혹한 전쟁을 큰 맥락으로 하되, 하나하나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그런 큰 맥락과 겉돌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오히려 큰 맥락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의 삶의 역정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 마약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아버지 친구들의 성적 노리개가 된 그녀는 타고난 미모 덕에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급 매춘 클럽 여사장에게 발탁되어 매춘부의 길에 나선다. 매춘부로 첫 데뷔하던 날 숫기 없는 청년 “칼란” - 이 친구 또한 주인공급의 비중 있는 인물로 노라와 함께 결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녀가 마음에 든 막무가내 마피아 중간 간부가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파트너가 바뀌어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이제 클럽의 간판이 되어 버린 로라는 휴양 차 멕시코에 왔다가 멕시코 대지진을 겪게 되고, 지진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가 현장에서 같이 구조 활동을 벌이던 “후안” 신부를 만나 그와 수년간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후안 신부를 찾아온 “아단”의 정부(情婦)가 되는데, 후안 신부가 아단 조직에 의해 모종의 이유로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역시 신부를 통해 알게 된 아트와 손을 잡고 아단 조직의 무기 거래 정보를 건네준다. 숱한 우여곡절과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이 연속되고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는 시점에서 후안 신부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목도하고 신부가 유언으로 남긴 “하느님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입니다”라는 말에 자신의 삶에 큰 회의를 느끼고 있던 칼란과 노라는 재회하게 된다. 이처럼 각 등장인물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비중 있게 다루고는, 30년 마약 전쟁에 그들이 어떻게 연루되고 또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즉 전쟁 속에서의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삶의 여정을 겪게 되는지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해서 각자의 사연들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악으로 달리 평가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입체성 또한 꽤나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모양과 색깔도 각각 다르지만 한데 어우러져 결합할 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모형으로 완성되는 “블록 게임”과 같은 이 소설은 처음에는 각자 인물들의 사연들이 전체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지만, 큰 줄기의 결말로 수렴되는 과정에 각자의 이야기들도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그런 설득력이 다시금 큰 줄기의 이야기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상호작용”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책에는 30년 동안 벌어진 멕시코 마약 전쟁의 과정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는데,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멕시코 현대사 속 실제 사건들과 작가가 구상해낸 허구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그 경계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책 속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은 실존 인물들과 실제 사건을 토대로 구성해 냈다고 하는데, 그런 실제 사건과 인물들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 넣고, 마치 홍콩 느와르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잔인하면서도 생생한 폭력 장면 묘사, 크고 작은 극적 전개와 반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긴장감과 몰입도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해 내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꽉 붙들어 맨 것은 올곧이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식재료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재료들을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고 적절히 조미료를 가미하는 요리사의 실력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이런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치밀하고 꼼꼼한 작가의 구성력이 바로 이 틀 여 동안 꼼짝없이 이 책에 빠져 들게 만든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도 역시 “참 재미있다”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쓸데없는 말들만 잔뜩 늘어놓고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책, 마약의 폐해나 마약 전쟁을 둘러 싼 정치적 음모, 부폐와 비리로 얼룩진 사회 고발이라는 주제 의식을 일부러 새김질하지 않아도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뭏튼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된 “돈 윈슬로”,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그런 이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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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원맨쇼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2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플롯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피터 러브시”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권인 <마지막 형사>를 읽은 것이 작년(2011년) 4월이었으니 시리즈 2권인 <다이아몬드 원맨쇼(원제 Diamond Solitaire / 검은숲 / 2012년 4월)로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 된다. 시리즈 첫 편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피터 다이아몬드”의 “사람됨(?)”을 정의해보자면 곰 같은 체형에 고집불통, 안하무인, 거기에 까칠하기까지 한 “괴팍한” 인물인데다가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현 수사 형태를 비웃으며 직접 발로 뛰며 수사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한 구식 형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점들이 더 현실감 - 사실 천재적인 두뇌 솜씨에 얼굴 또한 미남 일색인 “미드” 속 형사들은 영 현실감 없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 있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서구 스릴러 소설들 속의 그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 추리 솜씨보다는 독특하고 괴팍한 성격으로 -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피터 다이아몬드”를 다시 만난다는 즐거움에 책을 받자마자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전작에서 그렇게 상사에게 대들더니만 결국 이번 편에서는 경찰에서 짤리고는 - 물론 자기 스스로 사표 던지고 뛰쳐나왔다고는 하지만, 이 양반 성격상 언제 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 백화점에서 야간 경비원 신세가 되고 만 전직 경정 “피터 다이아몬드”, 재수가 없을려니 하필 그가 근무하는 시간에 웬 여자 꼬마 아이가 숨어드는 바람에 다시 한번 실직자 신세가 되고야 만다. 다시 생활 정보지와 신문들을 펼쳐 “구인란”을 꼼꼼히 살펴 보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고, 집안 일 이랍시고 페인트칠에 나서지만 영 서툰 솜씨 때문에 집안만 잔뜩 어질러 놓기 일쑤이다. 그러던 중 방송에서 자신을 하루 아침에 실직자 신세로 만든 일본인으로 보이는 꼬마 소녀가 형사들의 질문에도 말문을 굳게 다물고 있으며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소녀를 돕기 위해 - 오지랖 참 넓은 탓이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집에서 놀고 앉아 있기가 마누라에게 영 면목이 없다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 소녀가 머물고 있는 보호소로 찾아간다. 그런데 범인들 윽박지르고 취조나 할 줄 알았지 덩치가 산만한 곰같은 사내인 피터는 “나오미” - 이름을 말하지 않아 임시로 붙여준 이름 - 에게 다가갔다가 코가 물리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한다. 그러나 피터는 끈질기게 나오미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쓰고, 그런 피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오미 또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결국 피터는 나오미를 데리고 실종 아동을 찾는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된다. 그런데 방송 다음날 보호소에 나오미 엄마라는 여자가 나타나 나오미를 데리고 미국으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이제 겨우 실낱같지만 나오미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고 생각했던 피터는 분기탱천해서 나오미 일행의 뒤를 쫓아 미국으로까지 건너가게 된다. 겨우 겨우 나오미 일행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지만 이런 웬걸 나오미는 다시 사라져 버리고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는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피터는 그런 나오미를 찾기 위해 현장에 달려온 미국 경찰들에게 영국에서 출장온 형사라고 사기 - 아직 피터의 여권에는 직업란에 “경찰”이라고 찍혀 있었다 - 까지 치게 된다. 단순히 여자 아이 유괴 사건 쯤으로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미국 굴지의 제약회사의 신약(新藥)을 둘러싼 음모로 비화되고, 피터의 활약은 영국, 미국, 일본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는 “나오미”라는 소녀 때문에 피터가 다시 실직하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에 뜬금없이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다국적 제약 회사 공장의 화재 사건과 제약 회사 회장의 투신 자살과 2세의 승계, 그리고 회사의 명운이 걸린 신약 개발 이야기가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어진다. 이야기가 튀는 것 같아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사건인줄만 알았던 두 이야기가 중반 이후 차츰 수렴되고 마침내 종반에 이르러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면서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 “피터 러브시”를 “플롯의 제왕”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이야기 구조(플롯)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플롯은 훌륭하지만 이 책, 추리 소설이라 부르기에는 트릭이나 반전이 영 밋밋해서 정통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영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재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 “피터 다이아몬드”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즉 그의 “원맨쇼” - 원제인 “Solitaire”의 뜻이 “혼자서 하는 카드놀이” 라고 하는데 “원맨쇼”라는 의역 제목이 더 절묘하고 기가 막히다 - 라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리즈 1편에서는 그래도 경정(警正) - 군대랑 달리 경찰 계급은 영 낯설기만 한데 우리나라 “경정”급이면 경찰서 과장급으로 수사반장(경감급)보다 한 직급 위란다 - 으로서 부하 직원들을 닦달해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제법 의젓한 형사의 면모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못된 성격 탓에 경찰서를 박차고 나와서는 영 변변한 모습 제대로 한번 보여주지 못하고 아내 눈치나 보며 사는 “찌질한” 모습 - 어쩌면 주인공 피터의 가장 큰 안티는 바로 “작가” 그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 마저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이렇게 상황이 영 “아니올시다” 라지만 전편에서의 괄괄하고 괴팍하기만 한 피터의 성격 어디 갈까 싶은데 이런 이런 곰 같기만 한 사내가 말문을 닫아버린 자폐증 소녀 앞에서는 그 불같던 피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 맥을 못 추고 쩔절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자신이 쥐어준 펜으로 스케치북에 자신의 이름인 “다이아몬드” 형태의 마름모 도형을 그리는 나오미의 행동 - 사실은 피터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그림이었지만 -과 피터의 굵은 손가락을 움켜 잡는 나오미의 조막만한 손에 감격해 마지 않는 피터의 모습에 마치 내가 피터가 된 것 마냥 감동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중반이후 나오미를 찾아 영국, 미국, 일본에까지 이르는 피터의 좌충우돌 활약상도 참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오미와 피터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한, 가히 이 책에서 “백미(白眉)”라 할 만한 그런 이야기로 꼽고 싶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거구의 사내 피터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나오미의 모습을, 특히 좋아서 얼굴 살짝 붉히며 입고리를 귀에 걸고 있을 피터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흐뭇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끔찍한 사건이나 복잡하기만 만 얼키고 설킨 플롯,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 없더라도 단순하더라도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정교하고 일관성 있는 플롯, 그리고 개성 만점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여느 추리소설보다도 더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겨우 시리즈 중 두 권 밖에 만나보지 않았지만 “피터 다이아몬드”, 그동안 만나본, 또한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수많은 추리소설 등장인물들 중에서 결코 흔하지 않을 참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라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그런 예감이 든다. 총 10권에 이른다는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끝으로 사족 하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인 <마지막 형사>와 <다이아몬드 원맨쇼> 각자 이야기가 다르니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없긴 한데 아직 이 시리즈를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시리즈 첫 권인 <마지막 형사>부터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다이아몬드 원맨쇼>에서의 피터 모습에서 의외성의 재미를 올곧이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두 권 중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전 편을 읽어서 괴팍하기만 한 피터 다이아몬드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아이에게 쩔쩔매는 그의 모습에 의외성의 재미를 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먼저 읽어본 독자들이라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오히려 정통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는 <마지막 형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런 이래저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광고로 끝을 맺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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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서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1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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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머 징크스(Sophomore Jinx)"

성공적인 첫 작품·활동에 비해 그에 이은 작품·활동이 부진한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로 영화에서는 히트한 영화들의 후속편이 전편만 못하다는 의미로, 가수의 경우에서도 첫 번째 앨범의 성공하지만 두 번째 앨범은 그 명성을 따르기 힘들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스포츠에서는 신인 때 뛰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2년차를 맞아서 부진했을 때 이 표현을 쓰는데 흔히들 “2년차 징크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데뷔작인 <고백(2008)>으로 일본 제29회 소설 추리 신인상 수상, 2009년 오리콘 차트 상반기 소설부문 1위, 2009년 일본 서점대상 수상작 등 각종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고, 100만 부 이상 팔려 밀리언셀러에 이름을 올렸던 일본 여류 추리소설 작가 “미나토 가나에”가 어쩌면 소설 부문에서 “소포머 징크스”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데뷔작 이후 그녀가 발표한 <소녀>,<속죄>,<야행관람차>들은 한 편 한 편 놓고 보면 참 훌륭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인데, 워낙 <고백>에서 보여준 충격과 재미가 엄청났던 탓에 이후 작품들은 데뷔작인 <고백>이라는 잣대에 의해 평가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후속작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할 수 밖 에 없었으며, 나또한 그런 독자들 중에 한 명이었다. 작가도 이런 독자들의 시선과 평가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느 인터뷰에서 "오 년 후에는 <고백>이 대표작이 아니길 바란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출간된 그녀의 신작 <왕복서간(원제 往復書簡/비채/2012년 5월)>은 과연 그녀의 차기 “대표작”이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출간년도로는 <고백> 이후 5년 만인 2012년이지만 현지 일본에서는 2010년에 출간되었으니 아직 그녀가 바랐던 데뷔 후 5년 이후 작품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니 아직 차기 대표작 운운하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악의”와 “복수”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그녀의 작품 경향에서 “화해”와 “용서”를 통한 “감동” 코드라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전환점(轉換點)”이 될 만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고 할 수 있겠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편지”라는 독특한 형식 - 서간문학(書簡文學) - 의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편인 <십년 뒤의 졸업문집>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십년 만에 학창시절 같은 방송반에서 활동했던 동창생끼리인 “고이치”와 “시즈카”의 결혼식에 참여하게 된 “다카쿠라 에쓰코”가 결혼식 때 찍은 사진과 함께 방송반 시절 각본을 담당했던 친구 “다니구치 아즈미”에게 손으로 쓴 편지를 보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편지에는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반가움과 함께 과거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추억들이 담겨있는데, 한가지 거슬리는 게 느껴진다. 바로 같은 방송반 친구이자 학창시절 고이치의 연인이었던 “지아키”의 소식이다. 대학 시절에도 고이치와 연인 관계를 지속했던 지아키는 오년 전 여름 사고를 당해 얼굴을 다쳤고, 그 일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져서 고이치와 헤어지고는 훌쩍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에쓰코와 아즈미의 편지는 계속되면서 5년 전 사고의 진실은 서서히 베일을 벗게 되고, 에쓰고는 이번 결혼의 당사자이자 지아키 사고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시즈카에게도 편지를 보내 사건의 진상을 캐게 된다. 결국 마지막 편지에서 의외의 진실이 밝혀지고,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던 “에쓰코” - 에쓰코를 가장한 다른 “누구”였지만 - 는 편지들과 사건의 진상들을 졸업 문집 형식으로 만들어 오해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배포하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이처럼 오고 가는 편지를 통해서 오래전에 벌어졌던 사건의 진실이 천천히 베일을 벗고 마침내 뜻밖의 결말을 맺게 되는 방식은 정년 퇴임을 앞둔 여 선생님이 자신의 제자를 통해 오래전 사건을 겪은 여섯 제자의 안녕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십 년 뒤의 숙제>와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오래된 연인이 남자가 외국으로 봉사 활동을 떠나면서 주고 받게 되는 편지를 통해 15년 전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의 진실을 고백하는 과정을 그린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세 편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사건들, 즉 자신이 짝사랑해온 남자를 독점하는 친구에 대해 악의를 품게 되는 친구, 물놀이 중 위험해 처한 제자와 남편 중 누구를 구해야 하냐는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선생, 15년 전 아직 철들기 전인 중학생 시절 화재 사고 속에 숨겨진 살인과 그것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거짓말 등 어쩌면 끔찍한 사건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특히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와 답장들을 통해 한 꺼풀 씩 벗겨지는 진실의 실체들에 조금씩 접근해 가는 과정이 꽤나 긴장감 있고 스릴 있어 절로 책에 몰입하게 만든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미나토 가나에” 소설들과 비슷한 그런 구성 - <고백>에서도 여러 등장인물들의 일기나 고백들을 통해서 진실에 접근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을 보여주고 있어 각 편 말미에는 뭔가 충격적인 반전과 복수로 결말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그런데 작가는 분명 그런 자극적인 결말 대신 “용서”와 “화해”, 그것도 위선적이고 부조리한 그런 “거짓”이 아니라 “진실”된 용서와 화해, 배려의 결말이라는 “의외성”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기에 각 단편을 읽고 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어떤 “훈훈한” 감동마저 느껴지게 만들고, 다 읽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이 책이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고백>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인가 싶어 다시 한번 책 표지에 있는 작가의 이름을 다시금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 내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점에서는 “미나토 가나에” 글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간의 그녀 작품들과 전혀 다른 경향의 결말에 그만 그녀의 이름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 이름과 <고백>이라는 중압감과 그늘 - 작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도 작품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고백>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 꽤나 부담이 된다 - 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으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런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재미가 없고, 밋밋하고 싱거운 느낌까지 드는 결말에 실망스러운 분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미나토 가나에” 식과는 구별되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어쩌면 이 책이 그녀가 앓고 있었을 “소포머 징크스”를 스스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우리들에게 털어 놓는 “고백”과도 같은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야구(野球)로 비유하자면 한가운데 빠른 직구만을 구사하던 2년차 투수가 이제 느린 커브와 변화구를 구사할 줄 알게 되면서 완급을 조절하고 보다 다채로운 투구를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해석일까? 그렇기에 “미나토 가나에”는 이미 정점을 찍어 갈수록 뒷걸음치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 또 다른 “완성”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녀의 바람대로 <고백>이후 오년 후인 2013년에는 <고백>을 능가하는 멋진 대표작을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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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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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 반(班)에 한 두 명 씩 있었던 “예체능(藝體能)”계열 아이들은 “우리” - 여기서 “우리”란 인문계, 자연계로 구분하여 수험 준비를 했던 일반 학생들을 말한다 - 와는 “다른”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보충수업에, 자율학습에 밤낮 없이 공부에 시달리던 우리들과는 달리 며칠씩 수업에 나오지 않다가 등교(登校)해서도 수업 시간에는 엎드려 잠을 자기 일쑤이고, 실기 시험 준비한다며 점심시간 이후에는 금세 사라져 버렸던 그 아이들은 부러움(憧憬)과 질시(嫉視)의 대상이자 앞서 말한 대로 우리와는 “다른” 그런 학생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던, 때로는 같은 반 친구이면서도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눠 본 친구가 없었을 정도로 존재감(存在感)이 약했던 친구들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만나는 동창생들 중에서 그 친구들의 근황을 묻거나 알고 있는 친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후지타니 오사무”의 음악 청춘 소설 <배를 타라 上,下(원제 船に乘れ /북폴리오 / 2012년 4월)>을 읽으면서 고등학교 시절 60 여 명의 학생들로 북적였던 교실 한 켠에서 유달리 말이 없고 조용했던, 지금은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아 졸업 앨범을 꺼내 놓고 한 참을 들여 봐야 찾을 수 있었던,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 친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친구가 우리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우리들 못지않게 고뇌와 방황, 그리고 외로움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는 것을 아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님을 제외하곤 외할아버지 내외와 외삼촌, 이모 모두 음악가인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나(“사토루”)는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하지만 “피아니스트”가 되기에는 역부족인 실력 탓에 (외)할아버님은 내게 중학생이면서도 체격이 좋고 가족 중에 아직 첼로 연주자는 없으니까 첼로를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나 또한 “명령”같기만 한 할아버님 말씀에 따라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음악을 하려면 예대에 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그 외 학교는 모두 이류라는 생각이 집안의 불문율과 같았기 때문에 당연히 예고 입시를 준비하지만 다른 학과 성적이 너무 나빠 그만 낙방하고는 할아버님이 음악 대학 학장으로 계셨던 “신세이” 대학 계열의 음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예고와는 비교가 안 되는 “3류” 수준의 음악 학교인지라 나의 첼로 실력은 1학년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나는 학교 연례행사인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하고 학교 축제 연주회에 참여하는 등 바쁜 학창 생활을 보낸다. 그러던 중 입학할 때부터 한 눈에 들어왔던,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동급 여학생 “미나미”와도 풋풋한 로맨스를 시작하게 된다. 어렵기만 했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을 미나미와 함께 연주하고, 오페라를 함께 관람하며 둘 만의 데이트를 하게 된다. 특히 신세이 고등학교에서는 드물다고 할 수 있는 예대 진학을 한 선배에게 자극받아 나와 미나미는 예대 진학을 목표로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둘의 사랑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할 줄 만 알았던 학창 시절은 2학년 여름방학 끝나고 나서부터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독일에서 거주하던 외삼촌과 숙모의 제의로 두 달 여 동안 독일에서 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그 누구보다 반가워 해줄 줄 알았던 미나미가 나의 시선을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도 답변을 하지 않는 미나미는 결국 학교를 그만둬 버리고, 사연을 알게 된 나는 깊은 절망감에 빠져 버린다. 그리고는 결국 나를 아껴줬던 선생님을 누명을 씌워 학교에서 내쫓게 만드는 일까지 저지르게 된다. 모든 것이 어그러진 상황, 3학년이 된 나는 결국 앞으로의 내 음악 인생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음악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어쩌면 나의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오케스트라와 3학년들 동급생들로 구성된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에 열중한다.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미니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는 날, 학교를 그만뒀던 미나미가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 교복을 다시 입고 공연장에 나타난다. 미나미 또한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연주가 될 지도 모르는 이 공연에 참석하고 싶어 친구를 통해 연습 테이프를 들어가며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공연 후 다시 사라져 버린 미나미에게서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편지를 받은 나는 이제야 미나미와 완전한 이별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함으로 학교를 그만 둔 선생님을 찾아가 사죄를 한다. 선생님은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이해는 하시겠다며 나에게 “배를 타라”로 시작되는 니체의 책 한 구절을 선물한다. 나의 청춘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처럼 책은 주인공인 사토루가 음악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을 그린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음악 소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악기 연주와 협연 장면들이 꽤나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취재를 통해서 구성한 것 같진 않고 혹시 작가가 실제로 음악을 전공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어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역시나 주인공처럼 실제로 센조쿠가쿠엔 고등학교 음악과를 전공했다고 한다. 또한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작가 스스로도 트라우마였기에 쉽게 들추어낼 수 없었다고 고백한, 자전적인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라고 하니 어쩌면 작가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아냈기에 오케스트라 연주나 협주, 그리고 첼로, 기타 악기들의 연주 모습을 이렇게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게 되었다. 또한 십대 후반 고등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시절의 방황과 고민, 불안한 심리 상태 등을 치밀하게 그려내는데, 이 또한 관찰자가 아닌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었기에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은밀한 즐거움과 함께 절로 감정이입이 되면서 주인공과 미나미의 풋풋한 사랑에 입가에 미소를 짓다가도 갑작스레 닥친 상황에 함께 가슴 아프고, 마지막 공연에 나타난 미나미의 모습에 주인공처럼 가슴 먹먹한 아픔을 느끼다 보니 어느새 800 여 페이지 가까운 만만치 않은 분량을 다 읽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는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 - 물론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 중 제대로 아는 음악은 거의 없었지만 - 의 여운에 한동안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의 일기장과 같은 이 글을, 스스로 트라우마처럼 여겼던 상처를 왜 이렇게 소설로 드러내야 했을까? 어쩌면 꼭꼭 숨겨둔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작가는 “배를 타라”라는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배를 타면 흔들린다. 파도에 흔들리기 때문에 뱃멀미를 한다.

뱃멀미를 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파도가 잦아들기 바라지만 파도는 잦아들지 않는다. 파도가 잦아들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바다가 평온해 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뱃멀미는 언제가 없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흔들림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뱃멀미가 사라졌을 때 배가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어른들의 거짓말이다. 어른은 거짓말을 그럴싸하게 한다. 그것도 자신보다 젊은 사람에게. 뱃멀미가 사라졌다고 해서 배가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해도 잊어서는 안 된다. - 하권 P. 362~363

 

인생은 흔들리는 배를 타는 것과 같다고, 처음에 나를 괴롭히던 멀미야 어느 순간 사라지겠지만 배는 계속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말라고, 청춘은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런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며 삶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고 책의 마지막 구절에서 말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인생을 쇠퇴시킬 뿐이라며 한탄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인생은 지금부터라든가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다는 경솔한 말을 입 밖에 낼 정도로 살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그 시절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됐다.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하권 P.368

 

그런데 이 마지막 구절을 읽자 의문이 하나 들었다. 과연 이렇게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계속되고 있는 항해의 최종 도착점은 어디일까? “트루먼”(짐 캐리 주연의 영화 <트루먼쇼>)처럼 거짓된 세계에서 벗어나 진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마주하게 될까 아니면 인생에서의 모든 고통과 번민을 벗어나 편안한 안식을 얻게 되는 일종의 “깨달음”의 경지일까? 그 항해의 목적지를 찾는 것은 바로 우리들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도 “그것으로 됐다”로 마무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음악 소설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주는 재미와 성장소설의 감동, 두 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었던,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귓가에 계속 맴도는 클래식 선율처럼 여운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다음에는 책 속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들을 맞춰 들으면서 읽어봐야겠다. 머릿 속으로 상상했던 음악과 실제 연주 음악은 어떻게 다른 지, 또한 어떤 감동을 줄 지 자못 기대가 된다.

 

끝으로 절친한 동창에게서 서두에서 언급했던 바이올린 전공했던 친구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진 터라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는 데, 음악은 대학 때 포기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간단한 근황이지만 그 근황 속에 그 친구도 만만치 않은 흔들림과 뱃멀미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다음 동창회 때 나오기로 약속했다니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는 셈이다. 학창 시절 변변히 이야기 한 번 못나눴던 내가 먼저 아는 척 하려니 머쓱하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배를 타고 인생을 항해하는 동지로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생각이다. 동창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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