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원맨쇼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2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 검은숲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플롯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피터 러브시”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1권인 <마지막 형사>를 읽은 것이 작년(2011년) 4월이었으니 시리즈 2권인 <다이아몬드 원맨쇼(원제 Diamond Solitaire / 검은숲 / 2012년 4월)로 근 1년 만에 다시 만난 셈이 된다. 시리즈 첫 편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피터 다이아몬드”의 “사람됨(?)”을 정의해보자면 곰 같은 체형에 고집불통, 안하무인, 거기에 까칠하기까지 한 “괴팍한” 인물인데다가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현 수사 형태를 비웃으며 직접 발로 뛰며 수사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한 구식 형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이런 점들이 더 현실감 - 사실 천재적인 두뇌 솜씨에 얼굴 또한 미남 일색인 “미드” 속 형사들은 영 현실감 없는 그런 캐릭터들이다 - 있고 인간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서구 스릴러 소설들 속의 그 많은 캐릭터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 추리 솜씨보다는 독특하고 괴팍한 성격으로 -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피터 다이아몬드”를 다시 만난다는 즐거움에 책을 받자마자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전작에서 그렇게 상사에게 대들더니만 결국 이번 편에서는 경찰에서 짤리고는 - 물론 자기 스스로 사표 던지고 뛰쳐나왔다고는 하지만, 이 양반 성격상 언제 짤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 백화점에서 야간 경비원 신세가 되고 만 전직 경정 “피터 다이아몬드”, 재수가 없을려니 하필 그가 근무하는 시간에 웬 여자 꼬마 아이가 숨어드는 바람에 다시 한번 실직자 신세가 되고야 만다. 다시 생활 정보지와 신문들을 펼쳐 “구인란”을 꼼꼼히 살펴 보지만 마땅한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고, 집안 일 이랍시고 페인트칠에 나서지만 영 서툰 솜씨 때문에 집안만 잔뜩 어질러 놓기 일쑤이다. 그러던 중 방송에서 자신을 하루 아침에 실직자 신세로 만든 일본인으로 보이는 꼬마 소녀가 형사들의 질문에도 말문을 굳게 다물고 있으며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소녀를 돕기 위해 - 오지랖 참 넓은 탓이기도 하지만 하루하루 집에서 놀고 앉아 있기가 마누라에게 영 면목이 없다는 이유가 더 클 것이다 - 소녀가 머물고 있는 보호소로 찾아간다. 그런데 범인들 윽박지르고 취조나 할 줄 알았지 덩치가 산만한 곰같은 사내인 피터는 “나오미” - 이름을 말하지 않아 임시로 붙여준 이름 - 에게 다가갔다가 코가 물리는 등 온갖 수모를 당한다. 그러나 피터는 끈질기게 나오미의 마음을 열기 위해 애쓰고, 그런 피터가 마음에 들었는지 나오미 또한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고 결국 피터는 나오미를 데리고 실종 아동을 찾는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된다. 그런데 방송 다음날 보호소에 나오미 엄마라는 여자가 나타나 나오미를 데리고 미국으로 달아나 버리고 만다. 이제 겨우 실낱같지만 나오미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고 있다고 생각했던 피터는 분기탱천해서 나오미 일행의 뒤를 쫓아 미국으로까지 건너가게 된다. 겨우 겨우 나오미 일행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지만 이런 웬걸 나오미는 다시 사라져 버리고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는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피터는 그런 나오미를 찾기 위해 현장에 달려온 미국 경찰들에게 영국에서 출장온 형사라고 사기 - 아직 피터의 여권에는 직업란에 “경찰”이라고 찍혀 있었다 - 까지 치게 된다. 단순히 여자 아이 유괴 사건 쯤으로 끝날 줄 알았던 사건은 미국 굴지의 제약회사의 신약(新藥)을 둘러싼 음모로 비화되고, 피터의 활약은 영국, 미국, 일본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점입가경에 이르게 된다.

 

처음에는 “나오미”라는 소녀 때문에 피터가 다시 실직하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여기에 뜬금없이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다국적 제약 회사 공장의 화재 사건과 제약 회사 회장의 투신 자살과 2세의 승계, 그리고 회사의 명운이 걸린 신약 개발 이야기가 적지 않은 분량으로 이어진다. 이야기가 튀는 것 같아 솔직히 당황스럽기까지 했는데,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사건인줄만 알았던 두 이야기가 중반 이후 차츰 수렴되고 마침내 종반에 이르러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면서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 “피터 러브시”를 “플롯의 제왕”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는 이야기 구조(플롯)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플롯은 훌륭하지만 이 책, 추리 소설이라 부르기에는 트릭이나 반전이 영 밋밋해서 정통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독자들이라면 영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재미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인공 “피터 다이아몬드”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즉 그의 “원맨쇼” - 원제인 “Solitaire”의 뜻이 “혼자서 하는 카드놀이” 라고 하는데 “원맨쇼”라는 의역 제목이 더 절묘하고 기가 막히다 - 라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리즈 1편에서는 그래도 경정(警正) - 군대랑 달리 경찰 계급은 영 낯설기만 한데 우리나라 “경정”급이면 경찰서 과장급으로 수사반장(경감급)보다 한 직급 위란다 - 으로서 부하 직원들을 닦달해 증거를 수집하고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제법 의젓한 형사의 면모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못된 성격 탓에 경찰서를 박차고 나와서는 영 변변한 모습 제대로 한번 보여주지 못하고 아내 눈치나 보며 사는 “찌질한” 모습 - 어쩌면 주인공 피터의 가장 큰 안티는 바로 “작가” 그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 마저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이렇게 상황이 영 “아니올시다” 라지만 전편에서의 괄괄하고 괴팍하기만 한 피터의 성격 어디 갈까 싶은데 이런 이런 곰 같기만 한 사내가 말문을 닫아버린 자폐증 소녀 앞에서는 그 불같던 피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 맥을 못 추고 쩔절매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자신이 쥐어준 펜으로 스케치북에 자신의 이름인 “다이아몬드” 형태의 마름모 도형을 그리는 나오미의 행동 - 사실은 피터의 이름이 아니라 다른 그림이었지만 -과 피터의 굵은 손가락을 움켜 잡는 나오미의 조막만한 손에 감격해 마지 않는 피터의 모습에 마치 내가 피터가 된 것 마냥 감동까지 느껴지게 만든다. 중반이후 나오미를 찾아 영국, 미국, 일본에까지 이르는 피터의 좌충우돌 활약상도 참 재미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나오미와 피터가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한, 가히 이 책에서 “백미(白眉)”라 할 만한 그런 이야기로 꼽고 싶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거구의 사내 피터의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나오미의 모습을, 특히 좋아서 얼굴 살짝 붉히며 입고리를 귀에 걸고 있을 피터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흐뭇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끔찍한 사건이나 복잡하기만 만 얼키고 설킨 플롯,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 없더라도 단순하더라도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정교하고 일관성 있는 플롯, 그리고 개성 만점의 캐릭터가 주는 재미가 여느 추리소설보다도 더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겨우 시리즈 중 두 권 밖에 만나보지 않았지만 “피터 다이아몬드”, 그동안 만나본, 또한 앞으로도 계속 만나게 될 수많은 추리소설 등장인물들 중에서 결코 흔하지 않을 참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라 앞으로도 자주 만나게 될 그런 예감이 든다. 총 10권에 이른다는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끝으로 사족 하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인 <마지막 형사>와 <다이아몬드 원맨쇼> 각자 이야기가 다르니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크게 상관없긴 한데 아직 이 시리즈를 접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시리즈 첫 권인 <마지막 형사>부터 읽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다이아몬드 원맨쇼>에서의 피터 모습에서 의외성의 재미를 올곧이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두 권 중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전 편을 읽어서 괴팍하기만 한 피터 다이아몬드을 알고 있었기에 어린 아이에게 쩔쩔매는 그의 모습에 의외성의 재미를 크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먼저 읽어본 독자들이라도 실망하지 마시기를. 오히려 정통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는 <마지막 형사>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런 이래저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 광고로 끝을 맺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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