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미국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이라는 에드거상, 셰이머스상, 앤서니상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작가이자 “스릴러의 제왕”으로 불린다는, 영미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이름일 작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을 작년에 <아들의 방>으로 처음 만나 본 적이 있었다. 직접 그의 작품을 읽어 보니 명성이 결코 허명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권으로는 그에 대한 낯설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아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어 아쉬웠었는데 이번에 그를 신작인 <용서할 수 없는(원제 Caught/비채/2012년 6월)>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아들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고, 500 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단숨에 읽고 난 후 어느새 나도 그의 “팬(Fan)"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빨간색 문을 열면 내 인생이 끝장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채팅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어린 소녀 “차이나”에게서 집으로 얼른 와달라는 전화를 받고는 급히 차를 몰아 차이나의 집으로 온 “댄 머서”은 차이나 집의 빨간색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불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주저주저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무엇인가로 입이 틀어 막힌 듯 불분명하고 멀게만 들리는 차이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을 벌컥 밀어젖히고 집안으로 들어서 찾아보지만 목소리만 들릴 뿐 - 그것도 전혀 차이나의 목소리 같지 않은 - 차이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때 카메라를 든 남자와마이크를 든 남자들과 함께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여자가 <NTC 뉴스>의 “웬디 타인스”라고 밝히며 왜 여기에 있냐고 물어온다. 그녀는 바로 소아성애자들을 함정에 빠지도록 만들어서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카메라 앞으로 끌어내는 여자다. 그러면서 실내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조명은 한층 더 밝아졌으며 카메라맨은 내 얼굴에 부딪칠 정도로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댄다. 여자의 말을 반박하려고 입을 몇 번 달싹 거렸지만 모든 게 이미 끝나버렸다. 이틀 후 그 장면이 방송을 탔고 온 세상이 그 장면을 지켜봤으며, 빨간색 문에 접근하면서 어렴풋이 알아차렸던 대로 댄 머서의 인생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한편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가정 주부 “마샤 맥웨이드”는 토요일 아침 고등학교 졸업반인 맏딸 “헤일리”를 깨우러 갔다가 말끔히 정돈되어 있는 빈 침대를 발견한다. 원래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이었는지 지라 별 생각 없이 돌아서서 나오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불안감)에 사로잡혀 헤일리의 빨래바구니를 뒤져봤지만 옷가지가 전혀 없었고 칫솔과 세면대, 샤워실에도 전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헤일리는 어젯밤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 “테드”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헤일리 친구들에게 부리나케 전화를 해보지만 아무도 헤일 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밝혀지고 지역 경찰서에 실종 사실을 알린다. 신고 후 48 시간이 지나고 FBI가 개입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흔적을 찾아내지 못하고 결국 시간은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이 지나가 버린다. 과연 빈민가의 아이들을 돕는 청년인 댄은 정말로 추악한 소아성애자일까? 석 달이 지나도록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헤일리는 살아있을까? 전혀 별개의 사건인 줄 알았던 두 사건은 댄의 죽음과 함께 헤일리의 핸드폰이 댄의 숙소에서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되고, 댄 때문에 해고된 여기자 웬디는 과거 댄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대학 동기들이 묘하게도 어떤 음모나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댄의 과거에 숨은 진실을 추적하게 된다. 사건은 후반부로 접어들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게 된다.

 

이 책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주인공의 스릴 넘치는 활약과 액션이라는 기존 영미 스릴러 소설들과는 달리 치밀한 플롯과 트릭, 이야기 전개에 따라 탐정 - 이 책에서는 여기자 “웬디”가 탐정 역할을 한다 - 에 의해 차츰차츰 그 베일을 드러내는 숨겨진 비밀들, 그리고 마지막 대단원의 결말과 함께 숨어 있는 반전이라는 “정통 추리 소설”에 가까운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추리소설로서 구성과 재미도 탄탄하지만 이 책에서 눈여겨 볼 점은 바로 이 책의 주제, 즉 작가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테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릴러 형식을 빌어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과 위기를 짚어내는 전작인 <아들의 방> 서평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미스터리 형식을 빌어 현대사회의 모순과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일본 추리 소설 장르인 “사회파 추리소설”의 느낌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들에게 당신이라면 이 책의 등장인물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또는 그들을 “비난” 할 수 있겠느냐며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물어본다. 즉 음주운전으로 자신의 가족을 죽인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며 용서를 구해 온다면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 비록 사고라고는 하지만 외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얼굴에 남은 흉측한 상처를 안겨준 사람들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사건에 누명을 씌우는 바람에 결국 인생이 끝장나버리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도피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추문을 뒤집어 씌운 사람이 용서를 구해온다고 해서 과연 용서할 수 있을지를 우리들에게 물어온다. 결코 답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질문들인데 책 속 주인공들도 어떤 이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이는 모든 걸 용서했다고 담담히 말하기도 하는 등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한다. 결국 그 해답은 각자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 정답은 없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작가는 아들을 성추행한 남자가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법망을 피해 무죄 선고를 받게 되자 그를 사적 처벌하는 남자를 과연 비난할 수 있을지, 학창시절 친구들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퇴학을 당했던 한 남자가 수 십 년 후 자신을 외면하는 친구들에게 복수를 하는 행동을 비난할 수 있을지, 한때는 사랑했었지만 이제는 범죄자의 오명을 쓰고 죽은 이혼한 남편에게 자신 가족의 행복을 위해 죄를 뒤집어씌우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지를 묻기도 한다. 이처럼 책 속 등장인물들의 각각의 사연들을 통한 수많은 물음과 함께 인터넷과 매스컴의 폐해, 소아 성추행, 청소년들의 비행, 조기 퇴직 문제, 결속력이 희미해진 가족 관계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 또한 우리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수많은 사건들과 상황들을 나열하다 보면 이야기가 개연성이 없고 겉돌게 느껴질 법도 한데, 전혀 별개의 사건처럼 여겨진 사건들을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얽어매어 하나의 이야기와 결말로 수렴해나가는 글솜씨가 왜 “할런 코벤”이 이야기꾼으로서 그렇게 갈채를 받는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탄탄하고 치밀하다. 여기에 그의 전매특허라고 하는 인물들에 대한 치밀한 심리묘사는 책을 읽어 가면서 화자(話者)의 시선과 심리에 저절로 동화(同化)되게 만들고,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수도 없이 물어보게 만든다.

 

다만 추리소설로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는데, 바로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사건의 얼개를 추리해 볼 이렇다 할 단서들, 즉 추리소설이 독자와 작가의 두뇌싸움이라는 고유의 전통에 걸맞게 사전에 독자가 결말을 예측해볼 수 있는 이렇다 할 사전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물론 작가가 스릴러 소설 전문 작가여서 어쩌면 이런 추리소설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을 수 도 있을 테고, 또는 작가는 충분히 단서를 제공했음에도 영리하지 않은 독자인 내가 미처 발견해내지 못한 것일 수 도 있겠지만 말이다. 전자라면 굳이 왜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냐고 비판한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을 테고 후자라면 그렇게 추리 소설들을 읽었음에도 단서 하나 제대로 못 발견한 나의 무지를 탓해야 할 것이다. 아무래도......후자일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지만^^

 

두 권 만으로 할런 코벤을 정의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스릴러 소설로서의 긴장감과 재미와 함께 묵직한 생각꺼리 또한 느껴볼 수 있는, 즉 재미와 주제 두 가지 모든 면에서 탁월한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할렌 코벤에 대한 낯설음은 이 책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책, 할런 코벤 전체 작품에서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팬이 되게 만든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끝으로 책을 통해 수차례 용서할 수 있겠냐고 물어온 작가는 과연 어떻게 답을 할까? 아마도 그 답은 책의 마지막 문장 - 어쩌면 작가는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위해 500 여 페이지에 가까운 글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그 답을 생략해야 할 것 같다^^ - 에 있을 것 같다. 아뭏튼 이 책, 시선을 확 끄는 첫 문장과 진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문장, 처음과 끝 문장이 참 인상적인 책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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