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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1975년부터 2003년까지 30 년 동안의 치열했던 멕시코 마약 전쟁(부제 Mexico Drug War 1975-2003)을 다룬 “돈 윈슬로”의 <개의 힘 1,2(원제 The Power of the Dog / 황금가지 / 2012년 4월)을 받아들고서 범상치 않은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에서도 소개되는 데, “개의 힘”이란 구약성경 시편 22장 20절 구절인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원래는 다윗이 악의 세력 - 22장 앞구절에는 황소, 개, 악한 무리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 에 둘러싸여 더 이상 도망할 곳도 없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면서 하느님께 자신을 멀리하지 말고 구원해달라는 간구를 그린 시(詩)인 데, 먼 훗날 예수께서 처할 고난에 대한 예언으로도 해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성경 문맥으로 보면 “개의 힘” - 개의 세력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 은 이 책에서 30년 동안 전쟁을 치룬 멕시코 마약 조직을 “악(惡)의 세력”으로 비유하는 단어 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과연 1,2 권 합쳐 1,0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에 그려진 이 “악의 세력”의 실체는 어떨지 궁금함과 함께 책장을 펼쳐 들었다.

 

책은 첫장면(프롤로그)부터 1997년 멕시코 어느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 현장에서 시작한다. 남자 열 명, 여자 세 명, 아이 여섯 명 등 발견된 시신만 열 아홉 구에 이르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피가 흘러 나와 고인 피 웅덩이, 온통 피투성인 벽과 잔디밭 등 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현장은 시신이라면 지난 십 수 년 동안 마약 전쟁을 치루면서 숱하게 봐왔던 “아트 켈러”에게도 처음 본 그런 참혹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펼친 모종의 작전 때문에 이런 참상이 벌어졌다는 자책을 하는 아트는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와 아기 시신 위에 몸을 구부려 성호를 그린다 - 이 사건의 전후 사정은 2권 후반부 쯤에 등장한다 - . 그러면서 책은 끝날 기약이 없는 이 끔찍한 전쟁의 첫 출발점인 1975년 멕시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패배로 막을 내린 1975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CIA 출신 “아트 켈러”는 설립된 지 갓 3년 된 새내기 기관인 “마약단속국(DEA)"에 발탁된다. 아트는 어려서부터 헤로인이 이웃사람들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 직접 봐왔던 터라 “마약 전쟁”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 꽃밭을 불태우고 멕시코 마약왕 체포 작전에 참여하게 된 아트는 그곳에서 앞으로 30년간 자신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게 될 인물인 “미겔 앙헬 바레라”, 일명 “티오”라는 사내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티오는 공식적으로는 멕시코 주지사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이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주지사의 교섭 창구이자 마약 밀매인으로 이 작전을 움직이는 사람이기도 했다. 멕시코 마약왕이 이 작전으로 사살되자 힘의 공백을 틈타 멕시코 마약 시장을 장악한 티오는 미국으로 마약 공급량을 확대하고, 아트는 그런 티오와 그의 조카 “아단” 형제 - 아트와 잠깐 친구 사이기도 했다 - 를 예의 주시하면서 티오 세력의 마약 공급줄을 차단하기 위해 티오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미행을 하는 등 작전을 펼친다. 자신의 집에 도청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줄을 모르고 내부에 첩자가 있다고 생각한 티오 일당은 아트의 동료를 납치해 모진 고문을 하고, 아트는 자신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그만 그 동료 형사는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야 만다. 이때부터 아트의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고 동료를 살해한 주범들을 하나 둘씩 체포해 미국 법정에 세우고, 마약 중독자가 되어 버린 티오 또한 아트에 의해 체포되고 만다. 삼촌을 대신해 조직을 접수한 아단 형제는 그 세(勢)를 더욱 키워나가고, 역시나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아트와 밀고 밀리는 전쟁을 벌인다. 이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은 결국 아트가 처음 작전에 나선지 약 30 년 후 인 2003년에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 책, 처음에는 워낙 많은 등장인물 - 백 여 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을 각 세력별로 요약 소개하는 자료가 별지로 제작되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 들과 저마다의 각각의 사연들 때문에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었다. 여기에 입에 쉽게 달라붙지 않은 스페인어식 지명과 인명, 이 책을 통해 거의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 대부분인 멕시코 현대사 속 굵직굵직한 사건들 - 1985년 멕시코 대지진,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 마약 세력에 의해 자행된 멕시코 정치인들 암살 사건 등등 -도 책에 몰입하는 데 꽤나 방해가 되었던 요소들이었다. 그런데 책 페이지가 거듭되면서 차츰 이야기 맥락과 등장인물들에 익숙해지자 언제 그렇게 애를 먹었냐는 듯이 책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더니 1권 중반 이후부터는 책에 파고 들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처박게 만들었고, 결국 처음에는 영 부담스럽기만 했던 1, 2권 1,000 여 페이지 분량을 불과 이틀 여 만에 다 읽고야 말았다. 이 책의 어떤 점들이 밤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을까?

 

이 책은 마약 단속국 요원 아트 켈러와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인 “아단” 형제와의 30 년에 걸친 치열하고 잔혹한 전쟁을 큰 맥락으로 하되, 하나하나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이 그런 큰 맥락과 겉돌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고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오히려 큰 맥락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의 삶의 역정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 마약 중독자인 아버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아버지 친구들의 성적 노리개가 된 그녀는 타고난 미모 덕에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급 매춘 클럽 여사장에게 발탁되어 매춘부의 길에 나선다. 매춘부로 첫 데뷔하던 날 숫기 없는 청년 “칼란” - 이 친구 또한 주인공급의 비중 있는 인물로 노라와 함께 결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그녀가 마음에 든 막무가내 마피아 중간 간부가 억지를 부리는 바람에 파트너가 바뀌어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세월이 흘러 이제 클럽의 간판이 되어 버린 로라는 휴양 차 멕시코에 왔다가 멕시코 대지진을 겪게 되고, 지진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가 현장에서 같이 구조 활동을 벌이던 “후안” 신부를 만나 그와 수년간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후안 신부를 찾아온 “아단”의 정부(情婦)가 되는데, 후안 신부가 아단 조직에 의해 모종의 이유로 살해당하자, 복수를 위해 역시 신부를 통해 알게 된 아트와 손을 잡고 아단 조직의 무기 거래 정보를 건네준다. 숱한 우여곡절과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이 연속되고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는 시점에서 후안 신부의 죽음을 바로 곁에서 목도하고 신부가 유언으로 남긴 “하느님은 당신들을 용서할 것입니다”라는 말에 자신의 삶에 큰 회의를 느끼고 있던 칼란과 노라는 재회하게 된다. 이처럼 각 등장인물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비중 있게 다루고는, 30년 마약 전쟁에 그들이 어떻게 연루되고 또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즉 전쟁 속에서의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삶의 여정을 겪게 되는지를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해서 각자의 사연들과 처해진 상황에 따라 때로는 선으로, 때로는 악으로 달리 평가될 수 있는 캐릭터들의 입체성 또한 꽤나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모양과 색깔도 각각 다르지만 한데 어우러져 결합할 때 전혀 새로운 형태의 모형으로 완성되는 “블록 게임”과 같은 이 소설은 처음에는 각자 인물들의 사연들이 전체 이야기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겨지지만, 큰 줄기의 결말로 수렴되는 과정에 각자의 이야기들도 개연성과 설득력을 가지게 되고, 그런 설득력이 다시금 큰 줄기의 이야기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일종의 “상호작용”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이 책에는 30년 동안 벌어진 멕시코 마약 전쟁의 과정들을 빼곡하게 담고 있는데,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멕시코 현대사 속 실제 사건들과 작가가 구상해낸 허구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그 경계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책 속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은 실존 인물들과 실제 사건을 토대로 구성해 냈다고 하는데, 그런 실제 사건과 인물들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 넣고, 마치 홍콩 느와르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잔인하면서도 생생한 폭력 장면 묘사, 크고 작은 극적 전개와 반전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긴장감과 몰입도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해 내면서 독자들의 시선을 꽉 붙들어 맨 것은 올곧이 작가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식재료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재료들을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하고 적절히 조미료를 가미하는 요리사의 실력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달라지듯이 말이다. 이런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과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치밀하고 꼼꼼한 작가의 구성력이 바로 이 틀 여 동안 꼼짝없이 이 책에 빠져 들게 만든 이유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도 역시 “참 재미있다”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쓸데없는 말들만 잔뜩 늘어놓고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 책, 마약의 폐해나 마약 전쟁을 둘러 싼 정치적 음모, 부폐와 비리로 얼룩진 사회 고발이라는 주제 의식을 일부러 새김질하지 않아도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멋진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뭏튼 이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된 “돈 윈슬로”, 앞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리고 자주 만나게 될 것 같은 그런 이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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