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븐
장정욱 지음 / 책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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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Time Machine)”을 소재로 한 SF 소설 감상글에서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시간으로 가보고 싶냐는 질문에 내가 읽은 책에서 작가는 우리 삶에서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라고 답한다. 행복했던 추억보다는 회한(悔恨)이 더 인상 깊고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며 혹시라도 타임머신을 통해 그런 과거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읽은 우리나라 SF 소설인 “장정욱”의 <프로젝트 헤븐(책나무/2012년 4월)>은 타임머신이 아닌 가상현실세계인 <프로젝트 헤븐>을 통해서 과거로 여행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도 가상 체험하게 되는 과거는 여주인공이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는 가장 불행했던 순간으로 설정한다. 다만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중첩(重疊)되는 영화 <매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세계관과 남녀 주인공의 이룰 수 없는 로맨스가 주(主) 내용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인 2027년, 경찰을 그만 두고 졸지에 백수가 되어 버린 “유찬”에게 메일이 한 통 날아온다. 바로 정부에서 시험 운영 중인 “프로젝트 헤븐”이라는 가상 체험 세계 테스터에 선정되었다는 메일이었다. 신청한 적이 없던 터라 어리둥절했지만 꼭 당첨되길 기원했지만 떨어져 버린 친구 “현서”의 부러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또는 하릴없이 빈둥대야만 하는 백수 생활에서 도피라도 하듯 “헤븐”에 접속한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테스터들은 저마다의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유찬 또한 어디론가의 시간대로 들어가는 데 이런 웬걸 자신의 과거가 아닌 테스터 중 한 명의 과거로 들어가 버린 것이 아닌가. 그 테스터는 헤븐의 개발 책임자의 조카였던 “이연”의 과거였다.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를 다쳐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던 그녀였던 지라 삼촌이 그런 조카를 위해 가상 세계에서나마 두발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행복을 주기 위해 그녀를 테스터로 임명한 것이다. 찬과 연이 마주한 과거는 이연이 가장 괴롭고 힘들었던, 즉 어머니가 연을 버리고 떠났던 7살 시절의 과거였다. 아픈 과거를 공유하게 된 탓일까? 연과 찬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결국 가상현실이 아닌 실제 현실에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설레는 마음에 약속장소에 나간 둘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서로를 기다렸음에도 만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수 시간이 지났음에도 만나지 못한 둘은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리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연의 과거로의 여행을 계속하게 된다. 한편 찬의 친구 현서는 “헤븐”을 해킹하는 과정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지만 헤븐의 해킹을 감시하던 “당국”에 의해 그의 사무실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고, 현서 또한 사라져 버린다. 이상한 것은 현서의 실종을 친구에게 알리지만 친구는 현서 존재 자체를 모르는 듯 현서가 누구냐고 되묻는 것이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현서가 남긴 글이 인터넷에 확산되어 버리면서 비로소 엄청난 진실이 밝혀지고, 세상은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과연 “프로젝트 헤븐”과 현서가 알아냈다는 또 하나의 가상현실 “노어(NOR)"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찬과 연의 로맨스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 여기서 더 소개하자면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만큼으로 줄이자.

 

책은 이처럼 가까운 미래에 가상현실 세계인 “프로젝트 헤븐“ 테스터에 참여하게 된 남자 주인공 “찬”이 뜻하지 않게 여주인공 “연”의 과거 여행에 참여하게 되고, 아픈 사연을 공유하면서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로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쯤이겠거니 했던 이야기가 “프로젝트 헤븐”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면서 일대 급진전하여 가상과 현실이 “헤븐”이라는 세계에서 중첩하게 되는 이야기로 발전하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애절한 로맨스로 막을 내린다. 이처럼 가상과 현실 세계라는 이중적인 세계의 접합은 앞서 말한 대로 영화 <매트릭스>와 여러 SF 소설의 단골 소재인지라 익숙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작가는 “에피메니데스 역설(Epimenides’ Paradox)” - “거짓말쟁이의 역설(Liar’s Paradox)” 이라고도 하며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을 말한다"는 명제로 참과 거짓이 무한 반복하게 되는 역설로 유명하다 - 을 연상시키는 ”A와 B, 모두 거짓일 때 비로소 참이 된다”는 역설로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참 특이하고 참신하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여주인공 연의 사연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과거가 사실은 우리의 기억으로 창조해낸 거짓된 과거일 수 있다는 의미 전달도 꽤나 색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200 페이지 밖에 되지 않은 단편 소설에 불과한 짧은 분량에 거대한 세계관을 담다 보니 가상세계인 “프로젝트 헤븐”과 “노어”의 구축 목적이나 배경이나 한정된 등장인물 등 많은 이야기들이 생략될 수 밖에 없어 좀 더 긴 호흡으로 장편의 이야기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야기를 너무 축약해서 담아낸 것 같아 아쉬움은 남지만 참신하고 독특한 이야기임에는 분명한 재미있는 SF 소설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은 어쩌면 이 책 자체가 아니라 이제 고등학교 3학년(1994년 생)에 불과한 “작가” 그 자체 -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했다고 한다 -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린” 친구가 쓴 작품 - 작가는 기분 나쁠 수 도 있겠지만 그 나이에 이런 성취를 보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은 중년 남성의 부러움 쯤으로 받아들여주기 바란다 ^^ - 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작가의 이력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후에 멍한 충격마저 느껴졌다. 몇 몇 청소년 작가들 작품 - 솔직히 감탄보다는 유치함을 더 많이 느꼈었다 - 읽어봤지만 그들 작품 중 가장 발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작가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작품 자체로만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살짝 부족해서 별점을 박하게 줄까 하다가 작가의 이력을 알게 되고는 놀라움과 감탄에 만점을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별점 하나는 앞으로 펼쳐 보일 작가의 미래 작품들을 위해 아껴둬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멋진 작품들을 선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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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대폭발 1 나남창작선
로재성 지음 / 나남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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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8일 “국립방재연구원”- 사실 이전까지는 이런 기관이 있었는지 존재조차 몰랐었다 - 에서 보도자료 한 건을 발표했고 인터넷 신문들이 이 자료로 도배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다. 보도 자료 내용은 바로 “백두산 화산 폭발” 모의실험 결과였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유해물질 확산 대기모형(ALOHA)’에 따라 실시한 모의실험 결과에 따르면 겨울에 백두산이 폭발한다면 8시간 만에 화산재가 울릉도를 뒤덮고 12시간 뒤에는 일본에 도달해 동북아의 항공운항이 마비된다는 관측이 나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2012년 2월 20일 KBS 교양 프로그램 <과학 카페; 236회 사이언스 이슈 “백두산 화산 대폭발”>편에서 이 내용을 다시 한번 다루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백두산 폭발 규모를 2010년 4월에 있었던 아이슬란드 화산폭발의 수십 배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이며, 특히 백두산 천지에 담긴 20억 톤의 물이 지하 마그마와 만나게 되면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런데 “백두산 폭발”이 그저 흥미 거리의 과학적 이슈였으면 좋겠지만 실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 예로 최근 몇 년 사이 백두산 주변에 지진이 급증하고 있는데, 특히 2002년을 기점으로 한해 수백 회 이상 발생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하며, 백두산 높이가 2002년 이후 마그마 웅덩이가 팽창해 약 10cm가 높아졌고, 2006년 10월 1일 러시아 인공위성은 백두산 표면 온도가 확연하게 높아졌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관측 결과를 토대로 남한 지질학자는 백두산이 2, 3년 이내에 폭발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양강도와 함경북도 주민들이 백두산 화산 폭발을 걱정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북한 당국이 빠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하니 남북한 모두 백두산 폭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백두산이 폭발하면 동북아에 재앙 온다”, 한국일보. 2012.5.4. 발췌). 어쩌면 “백두산 폭발”은 근시일 이내에 우리들에게 일어날 가장 실현 가능한 “대재앙(大災殃)”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실제 일어난다면 우리에게는 “종말론(終末論)”적인 끔찍한 재앙이지만 소설이나 영화 속 상상이라면 이보다 더 경이롭고 스펙터클 - 차마 “재미있는” 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 한 사건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백두산 폭발을 소재로 한 소설을 최근에 만났다. 우리나라 작가인 “로재성”의 <백두산 대폭발 1,2(나남/2012년 4월)>이 바로 그 책이다.

 

2016년 2월 8일 백두산 기슭 북서쪽 방향에 새롭게 건설한 인구 20 만명 규모의 도시 “보하이(渤海)” 시에서 제 8회 동계 아시안게임 개막식이 화려하게 열린다.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은 2년 뒤 열리는 한국의 평창 동계올림픽의 김을 빼고 백두산이 중국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날짜까지 변경하면서 개최하는 대회이지만 가장 큰 이슈는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백두산 화산 폭발 소문을 무마하기 위한 대회이기도 했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알 수 없는 이상 현상들이 연이어 일어난다. 백두산 인근 북한의 함경도와 량강도 일대에서수천 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의 동상들과 사진, 기념물들이 일제히 내륙으로 옮겨지는 하는 장면들이 미국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또한 백두산 폭발시 쏟아지는 용암과 화산재를 피해 스노모빌과 설상차를 이용해 죽음의 경주(競走)를 하는 이른바 “데스 카니발”을 위해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들이 보하이 시에 속속들이 모여 들고, 백두산이 폭발하는 예수가 재림(再臨)한다는 사이비 종교의 8천 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도 모여 든다. 이런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국의 대표적인 화산 전문가이자 백두산 폭발이 임박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임영민” 교수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백두산 폭발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와 몇몇 사람들이 연이어 살해된다. <한성일보> 열혈 여기자이자 한국 굴지의 대기업 백두개발 “황우반” 회장의 예비 약혼녀인 “오수지”는 기자생활 마지막 특종을 잡기 위해 임영민의 아들이자 대학 동창생이기도 한 “임준”과 함께 임영민의 죽음과 백두산 폭발의 진상을 캐기 시작한다. 또한 국정원 대북정보팀 또한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는 백두산 폭발을 대비하기 위해 보하이 시에 모여든 한국인 대피 계획을 세우고 임영민의 죽음을 수사하면서 북한의 계속되는 이상 징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남북한 공작원들과 이번 동계아시안게임과 백두산 폭발로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황우반 회장의 세력들, 백두산 일대에 대규모 투자를 한 중국 기업가 세력 등등 여러 세력들이 얽히고 설켜 물 밑에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오수지와 임준도 수차례 납치되었다가 풀려나는 등 생사를 넘나드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여러 사건들 끝에 2016년 2월 15일 동계 아시안 게임은 7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식이 열린다. 그런데 그 순간,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 거대한 구름이 하늘로 치솟고, 지진과 산사태로 인근 도시들이 쑥대밭이 되고 용암과 화산 쇄설물들이 백두산 자락을 타고 흘러 내려와 인근을 덮치게 된다. 여기에 지진으로 영변의 핵시설이 붕괴되면서 엄청난 방사성 물질들이 화산재와 함께 편서풍을 타고 백두산 인근 일대와 일본까지 덮치게 되고, 수풍댐이 붕괴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마을 또한 물에 잠기며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발생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진으로 인해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수많은 건물들과 아파트, 주택들이 무너져 내리고 소양감 댐마저 붕괴되면서 수도권 일대는 물바다가 되어 버린다. 백두산 폭발 전 남침(南侵)을 계획했던 북한 지도부는 김정은이 머물던 삼지연 별장에 화산재와 용암이 들이 닥쳐 실종되면서 흐지부지되지만 일부 특수부대의 준동으로 서울 일대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여기에 북한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조장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이 휴전선을 밀고 내려오면서 경기북부와 인천, 강화도, 서해 5도 일대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도 데스 카니발 경기는 예정대로 개최되고, 수많은 선수들이 용암과 화산재, 지진에 의해 죽으면서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유투브로 생중계되는 이 죽음의 질주에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하고, 도박 자금도 천문학적인 액수에 다다르게 된다. 한쪽에서는 수백만 명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재앙이겠지만 한쪽에서는 생사를 건 극한의 유희(遊戱)가 벌어지는 인세(人世)의 지옥(地獄)이 백두산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작가가 책 첫머리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우리나라 최고의 화산학자인 “윤성효” 교수 - 앞서 말한 2,3년 내 백두산 폭발 가능성을 전망한 학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두 번 읽고 고쳐 주셨다고 밝히고 있다 - 의 감수(監修)로 백두산 폭발 후 남북한, 중국, 일본에 불어 닥칠 대재앙의 모습을 대단히 현실감 있고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줄거리 소개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가상 도시 “발해” - 천 년 전 발해 멸망이 바로 백두산 화산폭발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하니 중의(重義)적인 의미가 내포된 설정인 듯 하다 - 가 백두산 폭발로 인해 쏟아지는 암석들과 화산재, 용암, 지진으로 쑥대밭이 되고, 백두산 동쪽인 북한 지역도 초토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들을 마치 재난 영화 한편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북한의 영변 핵시설이 지진에 의해 붕괴되면서 방사능 물질이 쏟아져 나와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고, 일본까지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마치 지난해 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로 대참사를 연상시켜 끔찍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처럼 한반도 일대를 종말론적 상황까지 처하게 만드는 백두산 대폭발이 얼마나 위험하고 공포스러운지를 작가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여느 기사나 교양 프로그램보다도 더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백두산 대폭발에 따른 대참사에 대한 묘사는 참 뛰어난 데 이야기(Story)는 많이 아쉽다. 작가는 과학적 팩트만을 늘어놓는 딱딱한 내용보다는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편소설이 쓰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데, 너무 많은 이야기와 비현실적인 전개와 결말이 결국 “과잉”이 되어 버린 셈이 되었다. 주인공인 오수지와 임준은 툭하면 납치되었다가 풀려나고 대재난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존한다. 여기에 임준의 아버지나 북한 화산학자 이수근은 이야기 전개에 따라 죽음과 생존을 반복해서 역시나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연쇄살인을 저지른 “킬러”는 두 주인공을 노리지만 어이없게 붙잡혀 버려 긴장감이나 스릴은 커녕 실소까지 자아내게 만든다. 등장인물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들도 마찬가지이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나 영변 핵시설 장면들은 책에서 묘사한 것처럼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이겠지만 그다지 그렇게 상세한 묘사나 설명이 필요 없는 역시나 “과잉”이고, 오수지의 약혼자이자 임준과 갈등관계를 형성하는 “황우반”의 음모나 임준과의 관계도 애매모호하게 이어지다가 막판에 이르러야 밝혀지는데 그다지 설득력이나 공감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재미를 주는 설정이라 할 수 있는 “데스 카니발”은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현실에서는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설정 -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대참사 현장에서 목숨을 건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연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될까? -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백두산 폭발을 둘러싼 남북한 공작원과 중국 첩보 조직의 암투, 백두산 폭발을 타개하기 위한 북한의 남침 계획이나 난민 작전, 대폭발 후 북한 권력층 내부 갈등과 특수부대에 의한 게릴라전, 중국과 남한, 미국의 군사적 대립 등등 백두산 폭발을 제외하고 이런 이야기들만으로도 책 한권 분량은 족히 나올 법한 참 흥미롭고 재미있을 이야기들인데, 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담으려다 보니 설정 하나 하나의 스릴과 재미를 살리지 못하고 그만 어정쩡한 이야기들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곁가지의 이야기와 등장인물은 삭제하고 재난 소설 특유의 재미와 감동, 즉 대재난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공포와 절망감, 그런 가운데에서 피어나는 휴먼 드라마적인 감동을 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장면 전환에 있어서도 분명한 구분이 되지 않는데, 시간대별, 장소대별로 표기 - 예를 들어 “2012년 2월 17일 PM 2:35, 함경북도 영변” 형식으로 말이다 - 를 했었으면 좀 더 현실감을 살리고, 시간과 장소 장면 전환에 있어서 명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공들여 쓴 작품을 올곧이 즐기지 못하고 평가 절하하는 것 같아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한 글이고, 다른 곳도 아닌 민족의 성산(聖山)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그 재난을 겪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남이 아닌 “우리”들이기에 좀 더 관심과 애정이 갈 수 밖에 없어서 쓴소리를 했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부탁드린다. 그리고 이야기 면에서 아쉽기는 하지만 백두산 대폭발로 야기되는 참상에 대한 묘사 만큼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사실감 넘치니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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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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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5일부터 29일까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WEF, 다포스 포럼)” 관련 기사를 읽다가 낯익은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이 포럼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된 5개 키워드 중 하나였다는 “디스토피아(Dystophia)"란 단어였다.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Utopia)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네이버 발췌)을 가리킨다는 이 단어가 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이 포럼의 주요 의제로 다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 사회의 위험과 모순이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들어 종말론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미래를 그리고 있는 SF 소설이나 영화들도 하나같이 어둡고 암울한 미래 일색인 것이. 이번에 읽은 ”줄리애나 배곳“의 판타지 소설 <퓨어 1,2(원제 Pure/민음사/2012년 4월)>도 이처럼 어둡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시대를 알 수 없는 어느 미래,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폭발이 일어난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간 후 하늘은 겹겹이 싸인 검은 구름으로 뒤덮였고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려 검은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겨났으며 공기는 재와 먼지로 탁해진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온전히 가지고 있지 않은 기형(奇形)이 되어 버린다. 강력한 열기와 방사능에 의해 가까이에 있었던 각종 사물들과 짐승들, 심지어 자신의 동생이나 자녀들과 신체체가 융합(融合)해 버렸기 때문이다. 비단 사람들 뿐만 아니라 동식물들도 오염된 물과 음식, 공기 때문에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게 된다. 생존자들은 이런 끔찍한 환경을 견디며 절망 뿐인 삶을 이어간다. 한편 이런 환경과 완벽하게 차단된 “돔(Doom)"에서 온전한 신체를 가졌기에 ”퓨어(Pure)"라 불리는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대폭발 후 절망하는 외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온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쪽지는 외부 생존자들에게 처음에는 화폐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후로 오랫동안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돔의 “바깥”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던 소녀 “프레시아”는 16세 생일을 얼마 앞두고 혁명군의 강제 징집을 피해 자신의 집의 낡은 캐비닛에서 숨어 살고 있다. 프레시아는 대폭발 당시 들고 있던 인형의 머리가 손에 융합되면서 인형 손이 되어 버렸다. 그 인형 손이 싫어 칼로 잘라 내려다가 결국 손에 상처만을 입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의 손을 조심스레 꿰매준다.

 

돔의 “안쪽” 세계에 살고 있는, 돔의 실력자의 아들인 18세 소년 “패트리지”는 일정 나이가 되면 시술받게 되는 “코딩”에 거부 반응이 생겨 아버지가 근무하는 의료센터에서 각종검사를 받다가 사무실 벽면에 걸려 있는 돔 설계도 원본을 보게 되고 설계도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사진을 찍게 된다. 그는 세계사 현장 수업날 방문하게 된 “유물 보관소”에서 대폭발 후 돔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돌아가신 걸로 알려진 어머니의 유품을 살펴 보다가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생일 카드에서 메시지를 발견하고는 어머니께서 “바깥” 세상에서 살아 계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찾아 나서기로 결심한다. 아버지 사무실에서 찍은 설계도 사진을 꼼꼼히 살펴본 그는 결국 환풍기를 통해 돔을 탈출해 “바깥”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혁명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프레시아는 자신이 살던 옛집을 찾아 거리를 방황하던 패트리지를 만나게 되고 그를 돕기 위해 비밀 모임에서 만났던 소년인 “브레드웰에게 데려간다. 패트리지의 옛 집이 위치했던 거리를 찾아 나선 세 명은 그 곳에서 패트리지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있던 할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알 수 없는 소리만 들은 채 인간 사냥꾼들의 추적을 피해 다른 건물 지하로 숨게 된다. 얼마 후 소란이 잠잠해지자 바깥 동정을 살피고 할머니를 다시 만나러 밖으로 나온 프레시아는 그만 근처를 수색하던 혁명군에 의해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가게 된다. 프레시아가 자신 때문에 잡혀갔다고 자책하는 패트리지와 프레시아 할아버지 부탁 때문에 그녀를 돕는다는 브래드웰, 이 두사람은 프레시아와 패트리지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과연 인류를 멸종 위기까지 몰고 온 대폭발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패트리지에게 남긴 어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는 어떤 의미일까?

 

1, 2권 7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책, 읽기가 꽤나 어려웠던 책이었음을 먼저 밝혀둬야겠다. 대폭발 이후 비참하고 끔찍한 상황들을 너무 사실적이고 세세하게 묘사해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형, 새, 자동차 모터, 콘크리트, 인형, 총, 칼 등 각종 사물과 융합된 사람들, 자신의 동생과 몸이 융합된 형, 자신의 아이와 융합된 어머니, 괴물로 변해 버린 사람들 등 “바깥”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끔찍한 모습 일색으로 변형되어 버리고, 그들은 오염된 땅과 물, 공기를 마시며 하루하루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책이 "YA(Young-Adult)" 판타지 소설이라고 들었는데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너무 어둡고 끔찍한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암울한 미래 분위기 때문인지 작가에게 <로드(The Road)>의 작가인 “코맥 매카시에 비견될 작가”라는 평가가 붙는다고 하는데, <로드>가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간접적인 배경 묘사로 자연스럽게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면 이 책은 너무 사실적이고 세세한 직접적인 묘사로 연출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문학적인 성취는 논외로 하고 말이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꽤나 탄탄하고 스릴과 재미, 모두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끔찍한 묘사들이 거북스럽기까지 했지만 남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패트리지”가 돔을 탈출하여 “바깥”의 소녀 “프레시아”를 만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자 어느새 그런 거북스러움도 익숙해져 버리고, 이야기도 슬슬 재미있어지면서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기 시작한다. 특히 어떤 이유로 혁명군에 끌려갔던 프레시아가 패트리지 일행과 합류해서 계속되는 위험을 헤쳐 나가며 패트리지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와 재회하고 마침내 모든 음모와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휘몰아치듯 긴급하게 전개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책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이야기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극과 함께 돔을 향한 반란이라는 희망이라는 상반된 두가지 결말, 모두를 내포한 채 막을 내린다. 그래서 3부작 시리즈의 후속편들에서는 그런 희망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절로 하게 만드는 그런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서도 이 책의 어둡고 잔혹한 이미지가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이처럼 이 책, “이야기” 자체보다도 이런 어둡고 끔찍한 이미지가 훨씬 여운이 남는 그런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올해 들어 읽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SF, 판타지 소설들 중에서 이야기의 호불호를 떠나서 이런 이미지만큼은 가장 강렬하고 인상 깊었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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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미우라 시온 지음, 오세웅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마호로역 다다 심부름집>, <고구레 빌라 연애 소동>으로 이제는 낯설지 않은 작가가 된 “미우라 시온”의 신작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원제 神去なあなあ日常/알에이치 코리아/2012년 4월)>을 받아들고서 제일 먼저 표지의 노란색 띠지에 눈길이 갔다. “너무 재미있어서 두 번 더 읽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다!”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평(評) - 어쩌면 작가보다 훨씬 더 유명하고 연배도 있으신 분이 이런 평을 해줬으니 작가로서는 영광이었을 것이다 - 이다 보니 관심이 절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작가의 전작들을 보면 가벼운 미소와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평할 만큼 극적인 재미는 없었는데,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발견한 재미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궁금함과 기대감에 서둘러 표지를 열어 읽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적당히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려고 생각했던 19세 청년인 “나(히라노 유키)”는 졸업식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담임에게서 청천 벽력같은 소리를 듣는다. 바로 내 취직자리를 잡아놨다는 것. 이미 부모님과는 이야기가 다 끝나 버렸는지 어머니는 갈아입을 옷이랑 소지품은 어딘지도 모를 “가무사리(神去)” 마을로 보냈다며 나에게 3만 엔을 “축하금”으로 쥐어 준다. 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임업 쪽에 취업한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내주는 “녹색 고용” 제도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접수시켜 진행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영문도 모른 채 속았다는 느낌으로 시작한 나의 연수생 생활은 시작부터 까마득하다. 신칸센, 전철, 시골 노선 열차를 갈아타며 골짜기와 강을 지나 주변 풍경이라고는 온통 삼나무 투성이의 숲 속 종착역에 내린 나를 마중 나온 남자(요키)는 휴대전화부터 달래더니 배터리를 빼내서는 통화권을 벗어나 필요 없다며 무성한 풀숲으로 집어던져 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곳에는 절대 있고 싶지 않아 다시 역사로 발길을 돌리지만 이미 막차는 끊겨 버렸고 하는 수 없이 남자를 따라 나서게 되었다. 역시나 더욱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한 시간가량을 달려 마을 회관 같은 “삼림조합 사무실” 건물 앞에서 내린 나는 그곳에서 각종 용어며 전기톱 다루기 등 임업에 대한 20여 일 간의 초기 연수를 마치고는 요키의 트럭을 타고 30여 분을 더 타고 들어가 산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가 100 명 정도의 작은 부락인 “가무사리 지구”에 도착한다. 이때부터 팔자에도 없는 임업에 본격적으로 종사하게 된다. 이 글은 파란만장까지는 아니지만 소소하면서도 즐거웠던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을 마음 내키는 대로 써 본 글이다. 그렇다고 내가 쓴 글을 누구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 그저 “일기(日記)”인 셈이다.

 

 

내가 주인공처럼 영문도 모른 채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심심산골에서 팔자에도 없는 “임업(林業)”에 강제로 종사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하루도 채 버티지 못하고 분통이 터져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런 도입부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다음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를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주인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에 견디지 못하고 가열(?)차게 탈출을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일대 소동과 해프닝을 그린 “코미디” 소설이거나 또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박한 심성에 동화되어 어느새 몸과 마음이 한 뼘 이상 자라는 잔잔한 재미와 감동의 “성장(成長)”소설 말이다. 역시 전작들을 통해서 “휴먼” 감동 스토리 전문 작가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은 “미우라 시온”식 특유의 소소하면서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담은 성장소설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 - 이런 짐작이 미우라 시온을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할 수 있었고, 그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기에 이 작품 읽는 내내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고, 읽고 나서도 격하지는 않지만 훈훈한 감동에 흐뭇한 기분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 전작들과는 다른 몇가지 “특별함”이 있었다.

 

 

먼저 주인공이 1년 사계절(四季節) 동안 체험하게 되는 깊은 산속에서의 임업 활동에 대해 대단히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그려낸 점을 들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면서는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취재를 했거나 또는 직접 임업에 종사한 경험을 토대로 쓴 줄 알았었다. 그런데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글을 보니 신문 인터뷰에서 외조부가 소설의 무대인 미에 현에서 임업에 종사해, 어렸을 때부터 100년 후에 팔릴 나무를 기르는 것은 어떤 일일까 생각하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고 한다. 모티브야 외조부에게서 따 왔겠지만 빽빽하고 짙푸른 나무 숲 속에서 작업을 하는 주인공과 동료들의 이미지를 사진이나 영화처럼 머릿 속에 그대로 그려볼 수 있을 정도로 하나하나 세세하고 생생한 묘사들은 그만큼 작가가 꽤나 공을 들여 조사하고 체험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기에 외딴 시골 마을 특유의 행사나 어투 -책 첫 시작에서 가무사리 마을의 대표적 말투로 “나아나아”를 예로 들고 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 들에 대한 묘사 또한 이 글의 리얼리티를 부각시키는데 꽤나 큰 역할을 한다.

 

두 번째는 이런 사실감 넘치는 묘사와는 별도로 “판타지” 소설과도 같은 신비로운 장면들을 배치한 점을 들 수 있겠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회사 사장의 어린 아들의 실종 사건이나 산을 휘감아 내려오는 짙은 안개 속에서의 이상한 체험, 이 소설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책 결말 부분 마을 전통 축제 행사인 “메도잡이” 장면에서의 체험 등은 가무사리 마을이 단순히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심심산골 마을이 아니라 어쩌면 현실과 전설이 공존하는 일종의 “별세계(別世界)”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게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한 재미가 바로 이런 점들에 있지 않을까?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휴먼 감동 스토리. 여기에 신비로운 이야기까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드들이 한껏 담겨 있는 이 작품을 그래서 그가 그렇게 격찬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 책, 전작의 감동 코드들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전혀 이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사실감과 신비로움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참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지금까지 만난 세 작품 모두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 미우라 시온, 앞으로도 계속 만날 것 같다는 내 예감은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 "히라노 유키"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 - 특히 그의 수줍은 로맨스가 어떻게 결실을 맺게 될지 가장 궁금하다 - 한데 후속편에 대한 별다른 정보가 없어 아쉬움은 남는다. 아마도 유키의 가무사리 마을에서의 삶은, 그의 로맨스는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마 이대로 가무사리 마을에 계속 살 것이다. 임업이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겠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는 마을에 있다 보면 내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확실하지 않다. 나오키와 결혼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결혼은 시기상조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여자들이 많은 요코하마가 갑자기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은 가무사리 마을에 대해,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산일에 대해 더많이 알고 싶다. 확실한 건 가무사리 마을은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변함없이 여기에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가무사리 마을 사람들은 "나아나아"라고 말하면서 산과 강과 나무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지낸다. 벌레. 새, 산짐승 그리고 신까지 가무사리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즐겁고 약간은 엉뚱하게.

 

혹시 그럴 마음이 생기면 가무사리 마을에 들러주기 바란다. 언제나 대환영이다. 대환영이라니? 이 기록은 다른 사람한테 안보여주기로 했는데 자꾸 깜빡한다 헤헤. 그런 다시 만날 때 까지! - p.326~327

 

 

왠지 이 마지막 글을 읽으니 유키를 만나로 가무사리 마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혹시 "유키"처럼 가무사리 마을에서 임업활동하면서 느긋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지는 않냐고? 에이 설마^^ 아무리 산골 생활이 좋다고 해도 난 그냥.......도시에서 지금처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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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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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에게 있어 서구 스릴러 소설 선택은 아무래도 비영어권(非英語圈)으로 넘어간 듯 하다. 내 독서 목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 추리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프리 디버”, “마이클 코넬리”, “할런 코벤”, “퍼트리샤 콘웰” 등 영미권 인기 스릴러 작가들의 작품들 한 두 권씩은 꼭 챙겨 봤었는데, 요즈음에는 그들 작품보다도 “스티그 라그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스웨덴)>,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독일)>,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노르웨이)> 등 비영어권 중북부 유럽 스릴러 소설들이 눈에 더 띄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비영어권, 특히 지난 몇 년 사이 해외에서 '스칸디나비아 느와르'라고 불리며 선풍을 일으키는 북유럽 스릴러 소설들이 국내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데, 그 이유가 분위기가 어둡고 플롯이 복잡하기 때문이며, 모 출판사 관계자는 “사건 자체가 흉악한 데다 등장인물의 과거 상처나 기억과 얽혀들고 사회성이 짙다”며 “쉽게 읽히는 영미권 작가들에게 익숙한 국내 독자들이 어렵고 따분하게 느낀다”고 말한다(“북유럽 스릴러 소설 왜 국내에선 안 뜰까”. 경향신문. 2012.3.4.). 그런데 관계자의 말 중 흉악하고 사회성 짙은 사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인명과 지명, 사회·문화적 정서 때문에 “어렵다”는 말까지는 인정하겠는데, “따분하다”는 말 만큼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세 권 모두 손에 땀을 쥐고 가슴 떨리게 만드는 최고의 스릴과 재미 때문에 따분함을 느낄 겨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스릴과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 저 세 작품 외에는 없지 않냐고 되물으실 분들도 있을 텐데,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선뜻 내놓을 만한 멋진 북유럽 스릴러 소설을 최근에 만났다. 이미 작년(2011년)에 <비스트(검은숲/2011년 8월)>로 국내에서 첫 인사를 했던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 공저의 최근 출간작 <쓰리 세컨즈(원제 Tre Sekunder/검은숲/2012년 3월)>가 바로 그 책이다.

 

스웨덴 스톡홀름 시(市) 베스트만나가탄 대로 79번가에 자리한 근사한 아파트 5층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사입구(射入口)는 하나인데 사출구(射出口)는 두 개인 이상한 총상을 머리에 입고 죽은 남자의 신원은 엉뚱하게도 이웃 덴마크 경찰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바로 덴마크 경찰이 마약 조직에 심어 놓은 끄나풀이었던 것이다. 이 살인 사건을 전화로 경찰에 제보한 익명의 남자는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던 “피에트 호프만”이었다. 그는 겉으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갖고 있는 행복한 집안의 가장이자 다국적 보안 회사 임원이지만, 속으로는 폴란드 마피아의 조직원으로 마약 밀거래를 전담하는 흉악한 범죄자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또 하나의 신분이 있었으니 살해당한 남자처럼 스웨덴 경찰 비밀정보원인 암호명 “파울라”라는 신분이다. 9년 째 해온 이 비밀스러운 임무를 드디어 끝내게 될 위험천만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진다. 바로 스웨덴 교도소 마약 시장을 장악하려는 조직이 그를 적임자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스웨덴 경찰청 비선(秘線) 라인에 마피아 음모를 알리고는 법무부 장관에게서 사후 자신의 신분과 안전을 보장받은 호프만은 계획대로 마약 은닉죄로 긴급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되고, 교도소 내 잠입해 있던 조직원들과 함께 기존 마약 조직을 제거하고 은밀히 반입해 온 마약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던 이 일이 급반전을 맞게 된다. 바로 비선 라인의 경찰 고위 관료들이 79번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수사하던 “에베트 그랜스” 경정이 호프만을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올리자 그만 자신들의 계획이 탄로날까봐 호프만을 지워버리기로 한 것이다. 호프만이 경찰 끄나풀(“스투카치”)인 줄 알게 된 교도소 내 조직원들은 그를 죽이려 달려들고, 독방(獨房)을 자청하여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호프만은 경찰 비선 라인에 연락을 취해보지만 그들은 호프만의 구명(求命)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를 일반 감방으로 내려 보내는, 즉 그를 죽이려는 수감자들에게 던져 놓으려고 한다. 호프만은 결국 그가 미리 준비해 놓은 최후의 계획을 시행한다. 제목이기도 한 너무나도 짧은 시간인 “3초”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2 권 800 여 페이지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분량의 이 책, 1 권 중반까지는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특히 책 첫 부문 마약을 집어넣은 콘돔을 삼켜서 운반하는 “인간 컨테이너”들이 구토로 뱉어내는 장면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욕지기까지 느껴져 금세 읽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그 현장에서 총에 맞아 죽은 경찰 정보 요원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노경찰인 “에베트 그랜스” 경정은 이 책이 “그랜스 형사 시리즈” - 첫 편이 앞에서 언급한 <비스트>이고 이 책은 다섯 번째라고 한다 - 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존재감이 미미 - 어느 여가수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듯 한데 어떤 사연이었는지 이렇다 할 자세한 설명은 없다 - 하게 느껴지고, 호프만이 교도소로 잠입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장면들, 즉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빌려 그 안에 마약과 작은 권총을 분해해서 담고, 교도소장에게 보내는 튜울립 화분에 마약을 숨겨 담으며, 교도소 인근 교회 종탑에 도청기를 장치하는 장면들의 의도가 명확하지 않아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드디어 호프만이 교도소에 입감(入監)되면서부터 이야기는 흐름이 급격하게 빨라진다. 순조로울 줄 알았던 호프만의 계획이 믿었던 경찰 고위층의 배신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그 어느 곳보다도 폐쇄된 공간인 교도소에서 그를 노리는 살인자들의 숨결이 내 뒷목에도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페이지를 넘길 수 록 호흡이 가빠지고 절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야기는 호프만이 교도관과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조직원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극을 벌이는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르고 비로소 그 의도를 모르겠던 호프만의 사전 준비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면서 긴장감과 스릴 또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결국 자신의 가족을 위해 죽음을 택하게 되는 호프만의 선택에 일견 가슴 아프다가도 나라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여기서 “3초”의 의미가 나온다. 호프만이 인질극을 벌이는 교도소와 저격수가 유일하게 총을 겨눌 수 있는 장소인 높은 위치인 교회 종탑까지의 거리는 1.5km, 종탑에서 발사한 총알이 호프만의 머리에 와 닿는 시간이 바로 “3초”였던 것이다. 결국 호프만의 죽음으로 긴장감이 일거에 해소하게 되는데, 이런 후일담을 다루기에는 2권의 남은 분량이 많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이다!

 

이때부터 1권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호프만 인질 사건을 진두지휘하고 저격 명령을 내렸던 그랜스 경정에게 호프만이 자신의 비밀이 담긴 자료를 보내오면서 그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다시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한다. 경정이 해결하기에는 법무부장관까지 연루된 이 사건의 크기와 무게가 너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권력에 의해 무산되고 영원한 비밀로 묻혀 버리는 결론이 났을 텐데 이 책은 통쾌함이 다 느껴질 정도로 철저하게 까발려지고 호프만을 죽음에 몰아넣은 경찰 비선 조직은 법의 심판대에 오른다. 특히 호프만이 투옥되었던 교도소에 고위 경찰을 위한 특별 감호소를 만들겠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날 정도로 가슴 시원한 장면이었다. 이렇게 두 번의 큰 흐름이 지나가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분량에 세 번째 반전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그런 충격은 아니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게 하는, 제목인 “3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결말로 이야기는 막을 내리고, 3번에 걸쳐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긴장감과 스릴에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아 책을 덮지 못하고 몇 번을 더 펼쳐 보다가 결국 진한 아쉬움과 함께 마지막 책장을 덮고야 말았다. 이 책, 이처럼 최고의 스릴과 재미를 맛볼 수 있었던 멋진 책이었다.

 

이처럼 스릴 만점의 이야기에 작가는 어디까지나 허구이고 사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있다. 작가는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통해서 이 작품에서의 허구와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데, 사건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경찰이 비밀 정보원을 운영하는 점이나 교도소가 마약 소굴이라는 점, 책 속에서 호프만이 마약을 교도소에 밀반입하는 방법 - 작가들이 실제 실험을 해서 증명했다고 한다 - 들은 “사실”이고 등장인물들과 교도소는 “허구”라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큰 허구는 앞서 말한대로 경찰 비밀 정보원을 이끌었던 비선 조직, 즉 법무부 장관과 치안총감, 총경 등 고위 권력층들이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대목일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했던 작가들이 왜 이런 비현실적인 결말을 써낸 것일까? 그건 북유럽 스릴러의 특징이라는 “사회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경찰이 범죄자를 비밀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그리고 더 중대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묵인하고 덮어주는 것이, 또한 그런 비밀 정보원 활용을 은폐하기 위해 그들의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그 해답이 결코 쉽지 않은 물음을 우리들에게 던진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서 스스로 이렇게 답을 내린다.

 

범죄자가 경찰수사를 돕는다니, 이런 빌어먹을 시스템이 또 어디 있습니까, 형사님. 정작 그 인간들이 벌인 범죄는 위장되고 묻혀버린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또 다른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이 거짓말을 하고, 정작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에게는 진실을 숨기고 있다니, 이런 젠장, 이게 민주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형사님?

 

여기에 그렇게 이용해 먹은 비밀 정보원들을 헌신짝처럼 버려 버리는, 작가 말대로 민주사회에서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고, 그런 일들의 전말이 권력에 의해 감춰져 버리고 또는 왜곡되고 있기에 작가는 비록 허구로나마 그들의 단죄(斷罪)하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 현실 세계의 사회 문제와 모순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 대표 작가인 “마쓰모토 세이초”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그런 작품이라고 하겠다.

 

스릴 넘치고 통쾌한 이야기와 반전, 극한의 리얼리티, 묵직한 주제 의식 등 스릴러 소설의 장점을 유감없이 보여준 이 책, 어느 독자의 평처럼 “걸작(Masterpiece)"이라는 표현이 딱 제격인 최고의 스릴러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이 작품 못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는 작가의 전작인 갖고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한 <비스트>를 내처 읽을 셈이다. 어느 글에서 서구 스릴러 소설 평가를 앞에서 언급한 <밀레니엄>과 <스노우맨>으로 기준 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제 이 책을 세 번째 기준으로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세 책 중 어느 책이 가장 재미있냐고 물어오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해도 선뜻 답하기 어려운 참 난감한 질문이다^^ 그냥 세 책 모두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느 책을 읽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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